심정지·호흡곤란 환자만 300명
"밀지마! 밀지마!"
23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압사사고 현장에 있었던 A씨는 당시 밀지말라고 소리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골목 인근 술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아래쪽 사람들이 밀지말라고 소리쳤다"며 "몇분 뒤 그 말들이 비명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참사가 발생한 장소는 이태원동 중심에 있는 해밀톤호텔 뒤편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이다. 해밀톤호텔 옆 좁은 내리막길로 길이는 40m, 폭은 4m 내외다. 성인 5∼6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좁은 곳에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1시간 반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당시 골목길에 갇혀있던 20대 남성 B씨는 "온통 비명과 아우성으로 가득한 골목길에서 벽만 잡고 서있었다"며 "정말 숨을 쉬기가 어려워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곳은 번화가와 대로변을 잇는 골목이다 보니 세계음식거리가 있는 위쪽에서 대로변으로 나오려는 사람들과 이태원역에서 나와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의 동선이 겹쳐 사람이 밀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지하철역은 인파들로 가득해 지하철 플랫폼에서 입구까지 나오는데만 시간이 한참 걸렸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당시 현장에 있었으나 참변을 피한 생존자들은 갑자기 누군가 넘어지면서 대열이 무너졌고 그 위로 사람들이 계속 깔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손 쓸 틈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빠져나가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소방과 결찰이 출동했지만 수많은 인파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는 차들 때문에 사고현장으로 신속하게 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소방차들은 라이트를 켜고 마이크로 비켜달라고 연신 소리쳤지만 수많은 차량들이 엉켜있어 100m 거리를 가는데만 몇분이 걸렸다. 그래서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고 현장에 가까스로 도착한 소방과 경찰도 구조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처음에 출동한 소방대원과 경찰들은 아래에 깔린 피해자들의 팔을 잡고 꺼내려했으나 워낙 많은 사람들에 깔려있다보니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과 경찰은 가까스로 인파를 뚫고 골목길 위쪽부터 시민들을 빼기 시작했고 구조가 시작된 후 심정지, 호흡곤란 환자가 300명 가까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구급대원이 턱없이 부족해 일반 시민들까지 가세했다. 당시 한 명의 피해자 옆으로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둘러쌓아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번갈아가면서 계속 CPR을 했다.
당시 현장은 사상자의 지인들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는 아수라장이었다. 골목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킨 탓에 핸드폰과 가방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어 사상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이나 전화도 터지지 않아 연락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 옆으로 일반 시민들이 발을 동동굴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고 2시간이 지난 오전 12시, 길거리에는 여전히 응급차로 병원에 이송되지 못한 환자들이 누워있었다. 그 시간동안 시민들은 CPR을 계속했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폴리스 라인 옆으로는 CPR도 하지 않은채 옷이나 긴 천으로 덮여져 아스팔트 도로에 그대로 눕혀져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시 경찰과 소방관은 다른 시민들에게 사고현장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이태원에서 벗어나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가게들은 크게 틀어져 있는 노래를 끄지 않았고 몇몇 시민들은 경찰의 당부에도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렀다. 심지어 응급차가 다니는 도로를 계속해서 건너고 사진을 찍고 문자를 보내는 이들로 가득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본격적인 사고 원인을 수사할 계획이다. 현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 최초 사고 경위가 불명확한 만큼 신고자나 목격자, 주변 업소 관계자의 진술 CCTV를 토대로 사고의 발단이 무엇인지 파악할 계획이다. 아울러 관할 지자체가 사전에 사고 예방 조치를 충실히 했는지도 따져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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