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방음터널' 안전 사각지대
29일 오후 1시49분경.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을 달리던 차량들은 '펑'소리에 깜짝 놀랐다. 폐지 등 폐기물을 가득 실은 5톤 트럭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펑소리가 함께 조수석 밑에서 불이 나자, 트럭 운전자는 차량을 바깥 차로에 정차시키고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트럭이 정차한 곳은 안양에서 성남 방향의 갈현고가교로, 방음터널 3분의1 지점이었다.
트럭을 방음벽과 가까운 3차선에 정차시킨 것이 화근이었을까. 소화기로도 화재가 잡히지 않자, 운전자는 트럭을 두고 빠져나갔다. 트럭의 불길은 그대로 방음터널 벽에 옮겨붙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하필 방음벽 소재가 플라스틱이었다.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불은 2시간여만인 오후 4시12분에 잡혔다. 이 화재로 길이 830m의 방음터널 가운데 600m가 뼈대가 앙상하게 남은 채 잿더미가 됐다.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차량만 45대나 됐다.
인명 피해도 컸다. 5명이 사망하고 41명이 다쳤다. 사망자들은 불이 난 차로 반대방향인 성남에서 안양 방향으로 달리던 승용차 4대에서 발견돼 안타까움이 더했다.
무엇이 이토록 불길을 키웠던 것일까. 그 원인으로 방음벽 소재가 지목되고 있다. 불이 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은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 소재를 이용해 2017년 8월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PMMA는 폴리카보네이트(PC)에 비해 다소 저렴하지만, 인화점이 약 280도로, 약 450도인 PC보다 낮아 화재 위험성이 더 높다.
실제로 화재 현장에서는 터널 천장의 방음벽이 모두 녹아 불덩이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목격됐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궁이에 불을 지핀 꼴이었다. 이 플라스틱 때문에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유독가스가 터널을 가득 메웠다. 천장에서는 플라스틱 불덩어리가 뚝뚝 녹아 떨어졌다. 이 때문에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다. 플라스틱을 태운 검은연기는 수십미터 상공으로 쉴새없이 뿜어져 나왔다.
방음터널 안전관리에도 문제가 있었다. 방음터널은 소방법 및 국토안전관리원에 의해 터널로 분류되지 않다보니, 소방시설 설치를 하지 않아도 됐다. 갈현고가교 방음터널도 소화전은 물론이고 스크링쿨러 등 화재에 대비한 안전시설이 전무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비용효율성과 도로인근 주민의 편의를 위해 우후죽순 설치되고 있는 방음터널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용재 경민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30일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화재가 급속도로 퍼진 주원인은 방음터널 소재 때문"이라며 "아크릴 소재에 불이 붙을 경우 액체 형태로 녹아내리는데, 불이 쉽게 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 방음터널과 비슷한 소재로 만들어져 화재사고에 취약한 다른 사례가 있는지 묻자 이 교수는 "현재 전국에 걸쳐 설치돼 있는 슬래브 지붕이 같은 소재"라고 답했다.
현재 사고현장은 그대로 보존된 상태다. 화재로 소실된 차량 45대도 현장에 남아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원인과 피해규모를 조사할 예정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