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도 국가·개인 대상 소송 가능"
남방큰돌고래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호를 위해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제도를 도입하려는 논의가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제주도는 13일 도청 한라홀에서 김희현 정무부지사와 해양생태계 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해양생태계 보호방안 마련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어 '생태법인' 제도 도입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생태법인'은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대해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업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처럼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법인격을 부여받으면, 기업이 국가·개인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듯 동식물도 후견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주체가 된다.
이미 뉴질랜드는 지난 2017년 뉴질랜드 북쪽섬에 위치한 왕가우니 강에 법인격을 인정했고, 독일에서도 헌법에 생태계 법인격 인정을 위한 수정작업이 진행되는 등 서구권에서는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제주대학교 진희종 박사는 "멸종위기종 제주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생태법인 제도의 도입은 제주해양생태계의 건강성 유지는 물론, '사람과 자연의 행복'이라는 오영훈 도정의 제주공동체 가치와 목표에 직결되고 제주바다 자치주권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 박사는 "근대 법치주의 탄생 이후 법인의 대상과 내용은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다양해지고, 확장돼왔다"며 "자연의 존재물에 법인격을 부여하지 말라는 절대 원칙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생태법인은 국민 전체, 인류 전체의 이익, 나아가서 미래세대의 자연, 자연의 공공성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태법인의 구체적인 적용 대상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게 바로 멸종 위기에 놓인 제주 연안의 남방큰돌고래라고 강조했다.
남방큰돌고래는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열대·아열대 해역에 분포하는 중형 돌고래로 우리나라에는 현재 제주도 연안에서만 110∼120여마리가 서식한다.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돼있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박태현 강원대학교 교수는 '생태법인 법제 도입의 의의와 추진전략'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환경법의 체계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환경위기가 가속화하는 까닭은 현행 법체계가 자연을 생명의 원천으로 보지 않고 단지 인간의 효용성에 따라 자원·재산·자연자본으로 그 가치를 평가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위한 전략으로 헌법에 자연의 존재 권리 등을 인정한 에콰도르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 헌법에 자연과 자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만, 에콰도르의 모델을 따르기에는 경제발전양식이나 법체계의 조정 부담이 너무 크다"며 "적절한 후보를 찾아 법인격을 부여하는 선택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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