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떠오르는 금융상품으로 꼽혔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연계 기업대출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금융환경이 급변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ESG 대출상품이 갖는 태생적 한계로 수요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ESG 기업대출은 기존 대출과 달리, 금리와 한도에 ESG 지수를 적극 반영한다는 차이가 있다. 가령 해당 대출을 받은 기업은 탄소중립, 사내 성평등 수준개선 등 ESG 활동을 할 경우 대출이자 감면혜택을 받는다. 반면 해당 기업의 ESG 활동이 미진하면 불이익을 받게 된다.
구체적으로, 기존 대출은 기준금리를 기반으로 금리 및 규모가 책정된다. 여기에 신용등급이나 거래기간 등을 고려해 최종 금리가 결정된다. 반면 ESG 대출은 이에 더해 차입자가 특정 ESG 목표를 달성하는지에 따라 인출 수수료(스프레드) 할인 등 혜택이 붙는다. 다만 미국의 경우 기업 리볼빙 인출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미인출 금액에 지불하는 수수료 할인이 제공된다.
그런데 최근 ESG 대출의 수요가 줄고 있다. 특히 SSL 대출의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주요 ESG 대출 중 하나인 '지속가능성 연계대출'(SLL) 규모는 2021년 약 5000억달러를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올초부터 8월까지 ESG 대출의 전체 발행액은 1080억달러로,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70% 감소했다. 코로나19 이후 상승세가 꺾인 모습이다.
이를 두고 금융전문가들은 대출 시장변화와 ESG 대출의 태생적 한계를 원인으로 꼽았다.
ESG 대출의 대부분은 일부금액 약정인 리볼빙 시장에서 거래된다. 리볼빙이란 대출의 일부만 먼저 상환하고 나머지는 추후에 상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동안 ESG 대출은 기업이 대출금을 값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는 차환 시장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코로나19 기간동안 각국 중앙은행에서 통화량을 확대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대출 만기가 2024년 또는 2025년인 기업들의 차환 수효가 대폭 감소하면서 덩달아 ESG 대출도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여기에 ESG 대출은 주로 대기업이나 재무상태가 건전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이 기업들은 이미 대출기관에서 금리 등 각종 우대를 충분히 받고 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까다로운 조건을 감수하고 ESG 대출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ESG 대출을 받는다 해도 기존에 혜택을 많이 받기 때문에 추가적인 우대조치도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 은행들은 ESG 대출 규모를 키우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통계적으로 ESG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기업들은 재무 상태도 건전해 은행 부담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주주들 중 상당수가 기업 ESG를 지지하기 때문에 ESG 금융을 선호하는 기업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투자유치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은행들은 ESG 대출로 받은 수익을 기부하는 등 홍보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대출 계약시 ESG 목표를 공개하지 않아 기업의 ESG 부담을 줄여주는 상품도 등장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연 기업 지속가능성 촉진의 목적에 부합한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도 "단기적인 수익에 눈이 멀어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며 "ESG 대출이 그린워싱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투명한 공개는 필수"라고 지적했다.
실제 주요 대출기관 협회들은 투명성과 독립 평가를 포함한 ESG 대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역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고, 불투명한 시장에서는 대출자가 대출에 대한 ESG 목표를 항상 공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각국 금융당국과 정부는 ESG 규제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의 경우, 모든 대기업과 상장기업이 ESG 정보를 공시해여 하며, 유럽의회가 공시 투명성 향상을 위해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 표준을 채택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정부 주도로 ESG 평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상장기업의 기후 및 ESG 지표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10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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