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군중은 폭력적이다?...한국인들은 달랐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12-20 11:34:41
  • -
  • +
  • 인쇄
군중은 충동적 야만적'이라는 이론 무색한 집회
연대와 나눔, 명랑성과 여성성이 넘쳐나는 집회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탄핵촉구하는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서울 여의도에 모인 응원봉을 든 시민들은 윤리적 대중이었다. 질서를 지켰다. 집회가 끝난 뒤 깔끔하게 청소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에 대해 해외언론에서는 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방화나 약탈, 폭동으로 이어지기 일쑤이고, 현장은 쓰레기장으로 변하는 자국의 시위 현장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시위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의 기부 릴레이도 이어졌다. 커피와 빵, 김밥같은 먹거리뿐 아니라 핫팩과 온갖 물품들이 기부를 통해 나눠졌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강, <소년이 온다>

군중은 익명성에 의해 비도덕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이성적 존재라기보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변덕이 심하고, 공격성과 파괴성이 심하다고 했다. 19세기의 귀스타브 르봉(Le Bon)의 '군중심리학'에서 정식화된 이런 논리를 아직도 믿는 이들이 적잖다. 그래서 권력자나 정치인은 군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든다. 역사적으로 르봉의 계시에 따라 군중 조작을 통해 히틀러와 뭇솔리니 등의 파시즘이 등장했다. 르봉은 군중심리의 흐름을 연극으로 비유한다. 연기하는 배우의 감정이 관객 전체로 확산되듯이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연출에 감정적으로 감염되고 동조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동조현상은 연못에서 파장이 번지듯 동심원을 그리며 확산되어 간다. 르봉은 이를 집단 최면과도 유사하다고 보았다.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문맥에서 발생한 이같은 스토리는 서울 여의도에 있던 한국 시민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 시민들은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전략적이다. 소셜서비스(SNS)로 실시간 소통하며, 신중한 판단과 결의를 가지고 거리로 몰려나온다. 그간의 대규모 시위와 항쟁의 경험을 통해 폭력이 전략적으로 손실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알아서 자제한다(누군가 극단적 행동을 선동하면 계엄세력이나 권력의 공작에 의한 것임을 간파한다). 21세기의 한국 시민들을 19세기식 군중이나 20세기초 파시즘에 감염되고 장악당한 대중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그런 식으로 조종당하고 통제당할 여지는 여전히 있다. 깊이 해부하면, 폭력은 오로지 국가만이 전유할 수 있으며 시민들은 언제나 비무장 비폭력적이어야 한다는 논리에 길들여진 차원도 없지 않다.

대중은 분자적으로 움직인다. 어느 방향으로 그 흐름이 이어질지 모르지만, 집단지성적 결집과 현명한 판단력까지 겸비하고 있다. 지도받는 대중이라는 도식이 기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분자적으로 움직이는 시민들이 서로 소통하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에는 소설가 한강이 군중에 대해 깊이 탐구한 흔적이 나타난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 인간이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통해 발현된 것이다." <소년이 온다>, 95쪽

한강은 군중의 윤리성 혹은 그 가능성을 믿는다. <소년이 온다>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다, 눈 먼 군중이 아니다. 어린 소년들과 청년들 그리고 시민군은 가장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거리로 나갔다.

지금 거리를 밝히고 있는 우리 시민들의 불꽃이 어둠과 폭력을 잠재우고 있다. 우리는 익명의 군중이 아니다. 우리는 시민이다. 우리는 조종당하지 않는다. 우리의 길은 우리가 만들고 연다. 깨어있는 각각의 시민들이 함께 모여 연대하고 죽임의 세력을 결박하고 멸절하는 생명의 흐름이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의 공간에는 총칼이 아니라 노래와 춤이라는 명랑한 기운이 일렁이고, 남성성과 군대의 살육 문화를 녹여버리는 맑은 목소리와 함성의 여성성이 가득하다.

우리의 필연적 승리는 윤리적 도덕적 승리에 기반하고 있다. 숭고한 민의(民意)가 바로 그것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EU·美 탄소규제 강화..."배터리·자동차, 정부지원 확대해야"

최근 전기차 '캐즘'(시장 침체) 현상이 지속되고, 유럽연합(EU), 미국 등 주요 교역대상국이 탄소관련 통상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정부가 폐배터리와 자

불황에 이웃사랑 발벗고 나선 재계...삼성·LG·SK '통큰' 기부행렬

비상계엄, 탄핵 등 불안정한 정치상황이 이어지는 2024년 연말을 맞아 기업들의 통큰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20일 삼성, LG, SK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대한항공, 페트병 업사이클링한 방수가방덮개 기부

대한항공이 지난 17일 서울 강서소방서에서 버려지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제작한 '업사이클링 안전 가방덮개' 500개를 기부했다고 18일 밝혔다.이번에 기

현대그린푸드 '식품부산물 자원화' 나선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식품기업 현대그린푸드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해 이마트, 삼성웰스토리, 삼성전자 등 10개 기업·기관들과 지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공개…상위 10% 포함된 韓기업은?

SK텔레콤과 하나금융 등 20여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지속가능성 평가에서 상위 10%에 포함됐다.S&P 글로벌이 16일(현지시간) 공개한 'DJSI 월드지수'에

네이버, 지역소멸·기후위기 대응 위해 IT기술 도입 협력

네이버가 한국농어촌공사와 손잡고 농어촌지역 기후위기 및 지역소멸 대응을 위해 다양한 IT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네이버와 한국농어촌공사는 경기

기후/환경

+

스키리조트 온난화로 소멸위기...국제스키연맹 '지속가능성 지침' 발표

지구온난화로 소멸위기에 처한 스키리조트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지침을 마련했다.19일(현지시간) 국제스키연맹(FIS)는 '스키 리조트를 위한

동물원에 침투한 조류독감...수십종 희귀동물 폐사 위기

조류독감이 동물원까지 침투하면서 사자, 호랑이, 치타 등 수십종의 희귀동물이 죽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이 멸종위기종에 '심각한 영향'을

네팔 전례없는 폭우피해..."산림벌채가 홍수 가중"

네팔의 급속한 도시화와 산림벌채가 2024년 홍수·산사태 피해를 가중시킨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9월말 네팔은 전례없는 폭우에 휩쓸렸다. 9월 27일

올해 세계 석탄사용량 87.7억톤…"사상 최고치 또 경신"

올해 전세계 석탄사용량이 87억7000만톤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전망이다.18일(현지시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

생물다양성 파괴로 매년 경제손실 25조弗..."보조금 중단해야"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 연간 최대 25조달러(약 3경624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지난 17일

나무가 사라진 美 시카고...학생들 성적도 떨어졌다

도시의 나무들이 사라지면 저소득층 학생들의 성적도 떨어진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17일(현지시간) 알베르토 가르시아 경제학 교수와 미셸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