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마트와 하인즈 등 다수의 미국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 기후정책에 발맞춰 홈페이지에서 기후변화나 친환경과 관련된 내용을 삭제하거나 숨기는 '그린허싱'이 확산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 최대 유통기업인 월마트는 홈페이지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깊이 헌신하고 있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지난해 7월 월마트는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다.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피해는 더욱 악화될 것이며, 그 결과는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러나 이 문구는 지난해 12월 '운영 배출량을 줄이고, 공급망의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공급업체를 참여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그러면서 당시 월마트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65% 줄이겠다'는 감축 목표를 사실상 철회했다.
케찹과 머스타드로 유명한 식품제조기업 크래프트 하인즈는 올 1월 홈페이지에서 게재돼 있던 '2030년까지 배출량 50% 감축' 목표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고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내외부 도전에 직면했다'는 문구를 게재했다. 이에 대해 하인즈는 "최신 ESG 보고서에 따라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한 것"이라며 "탄소제로 목표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항공사 아메리칸항공도 지난해 7월 기후변화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저탄소 전환은 긴급한 의제,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문구를 게재했다가 11월에 삭제했다. 이에 대해 아메리칸항공 측은 "내용을 바꾼 것은 기후변화 대응 포기가 아니라 최신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기반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이라며 "우리의 지속가능성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완성차 브랜드 포드는 지난해 여름 영국 홈페이지 상단에 노출했던 '기후변화 행동 목표'라는 문구를 하단으로 옮겼으며,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자사 지속가능성 홈페이지에 '기후변화에 앞장서고, 과감한 기후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내용을 게재했다가 최근 삭제했다.
영국 그린피스 공동 사무총장 아리바 하미드는 "기업들이 홈페이지에서 기후관련 언급을 지우고 희석하는 것은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라며 "소비자와 직원들은 기후변화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고 있는지 우려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미국 비영리단체 관계자는 FT와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 웹사이트 내 기후변화 관련 페이지를 전면 삭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적자예산을 명분으로 10만명의 연방공무원을 해고하는 것뿐 아니라 국제협력 관련기금을 하나둘씩 끊기 시작했다. 이에 비영리단체 사이에서 기후관련 프로젝트에 보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일부 단체들은 기후변화 프로젝트를 다른 명칭으로 바꾸거나 기후 대신 물, 식량 등으로 주제를 수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내부 관계자는 "USAID가 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결정하기 전에 이미 프로젝트를 재브랜딩할 필요성이 대두됐다"며 "기후변화라는 표현은 지금 황소 앞에 붉은 천을 들이미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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