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년간 ESG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기업 경영의 구조적 전환을 유도해왔다. 그 흐름을 이끈 세 가지 동인(driver)은 기술, 공시, 금융이다. 이 중 기술과 금융 사이의 소통을 매개하는 축이 바로 '공시'이며, '전략'은 이 모든 동인을 통합하는 설계자 역할을 한다.
재무제표 중심의 공시 시스템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약 100년간 발전해왔다. 이는 본질적으로 과거 결산 정보를 기반으로 한 체계다. 이후 새로운 금융 제도의 출현, 현금흐름의 중요성 확대, 무형자산과 ESG 요소 등 실질 가치 반영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회계 제도는 진보해왔지만, 여전히 '과거 중심 정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ESG가 기반을 다지면서 기존 공시시스템을 송두리째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 인권문제, 거버넌스와 같은 고위험 이슈들이 조직의 미래에 미치는 재무적·비재무적 영향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과거의 재무제표 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글로벌 ESG 공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GRI) 기준은 2000년에 첫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 지난 20여년간 ESG 공시의 대표적 프레임워크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투자자가 주된 정보 이용자가 된 현실 속에서, GRI의 비재무정보 기반 자율형 접근은 한계를 드러냈다. 비교가능한 재무정보 중심의 의무공시 요구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제재무보고기준(IFRS) 재단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공시 기준과 유럽의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이 2023년에 제정되면서, ESG 공시는 비재무 중심에서 재무 중심의 공시 체계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ISSB 기준은 국제증권관리감독기구(IOSCO)의 지지와 함께 영국, 캐나다, 일본, 브라질, 싱가포르 등 주요국이 채택했거나 의무화를 추진 중이며, 지속가능성 공시의 '글로벌 기준선(Global Baseline)'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도 2024년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를 통해 ISSB 기반의 공시 기준 초안을 공개했으며, 빠르면 2026 회계연도, 늦어도 2028 회계연도부터는 의무 공시가 시작될 전망이다.
유럽의 ESRS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규제 속도 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강력한 ESG 공시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2024 회계연도부터 ESRS에 따라 SAP, BASF, 에어리퀴드 등 약 360여개 선도기업들이 의무공시를 시행했으며, 이들 기업은 ESG 전략을 공시와 연결해 내재화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지속가능보고서 작성 수준을 넘어, ESG가 전략 실행과 재무 성과에 직결되는 경영 요소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SG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기술·공시·금융이라는 세 축은 꾸준히 작동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재무공시와 의무공시로의 전환 역시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지금은 ESG 전략을 다시 정의하고 재정렬할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ESG는 기술(Technology)을 통해 실행된다. 태양광·풍력 등 저탄소 에너지 기술,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후 회복력 인프라, 자원 순환 설비 등은 ESG의 핵심수단이다. 더불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기술은 탄소배출 모니터링, 공급망 추적, 인권 리스크 감지 등 ESG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보고할 수 있게 한다. ESG는 이제 '보고서 작성용'이 아니라 전략 실행과 경영 판단을 위한 실시간 의사결정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ESG 공시(Disclosure)는 100여년 만에 공시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 있다. 유럽연합의 ESRS는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며, 2028년부터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한국 등 비(EU) 기업도 의무적용 대상이다. ISSB 기준은 일반 요구사항(IFRS S1)과 기후 관련 공시(IFRS S2)로 구성되며, 한국은 이를 기반으로 한 KSSB 기준과 의무공시 로드맵을 올해 확정할 예정이다. 이는 재무제표와 지속가능성 공시의 통합공시(consolidated reporting)로 이어지고 있으며, ESG 공시는 단순한 CSR 보고를 넘어 전략–위험–성과를 연결하는 실질적인 경영 공시로 자리잡고 있다.
ESG 금융(Finance)은 자산 흐름과 자금 조달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글로벌 ESG 관련 자산은 2021년 18조4000억달러에서 2026년 33조9000억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글로벌 전체 운용자산(AUM)의 21.5%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의 그린택소노미는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정의해 그린워싱 방지와 자본 배분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한국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도입해 2030년까지 약 450조원(약 3090억달러)을 녹색금융에 투자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도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고탄소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금융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기술, 공시, 금융이라는 3대 동인은 ESG를 움직이는 축이다. 그러나 이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 세 가지를 설계하고 통합하는 전략(Strategy)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략은 ESG의 통합 지휘체계다. 기술은 어떤 수단을 언제 도입할지를 결정하는 전략이 있어야 실행된다. 공시는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투명하게 전달할지를 전략이 설계해야 하며, 금융은 어떤 사업이 '전환' 자격을 갖추는지를 판단하는 전략의 로직 위에서 작동한다.
전략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이 세 가지 동인을 연결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실행 경로를 설계하는 구조적 설계도다. 이러한 통합 설계가 없다면 ESG는 선언이나 보고에 그치고 만다. 기술, 금융, 정책, 시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지속가능한 전환의 엔진이 되기 위해서는 전략이 그 중심에 서야 한다.
이제 ESG는 뉴노멀 공시기준에 따라 공시와 성과에 연결된 전략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나름의 전략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구조화되지 않으면 ESG 공시와 연계되지 못하고 실효성을 잃는다. ESG 전략은 리스크와 기회에 대한 실질적 대응, 핵심성과지표(KPI), 이행 로드맵, 내부 통제 및 평가 가능성을 갖춘 실행 중심의 구조를 가져야 한다. 전략없는 ESG가 아니라, 구조화되지 않은 전략이 문제이며, 실효성 없는 전략을 바탕에 둔 ESG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글/ 손기원
대주회계법인 부대표 / ESG TF 리더
공인회계사·철학박사 / kiwon.son@kr.g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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