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환경규제가 강한 국가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녹색 피난처'(green haven) 전략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나래 교수 연구팀과 미국 조지타운대 헤더 베리·재스미나 쇼빈 교수, 텍사스대 랜스 청 교수는 환경규제가 엄격한 국가일수록 전기자동차, 재생의류 등 녹색 친환경 제품의 생산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일반적으로 다국적 기업은 환경규제가 약한 나라에서 제조업 기반을 마련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규제가 느슨한 만큼 생산비용이 적게들고,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과 ESG 경영 강화, 글로벌 녹색제품 교역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이 '녹색 피난처' 전략을 구사하는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2002~2019년까지 5000여개 제품에 대한 수출·수입국의 '유엔 무역통계'(UN Comtrad)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같은 교역 패턴이 발견됐다고 했다.
즉 환경규제가 강화되면 전체 교역량이 줄어드는 전형적인 '오염 피난처' 현상이 나타나지만, 녹색 제품에 한해서는 오히려 교역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환경규제가 엄격한 곳일수록 녹색제품의 생산과 수출이 활발해져 공급망 규모가 최대 24% 확대된 것이 확인됐다.
친환경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 입장에서 생산비 감축보다 생산과 거래 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여겨져 규제가 강한 국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녹색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들이 환경규제가 낮은 국가를 피해 '녹색 피난처'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녹색 피난처' 현상은 스마트폰, 의류, 음식, 화장품, 가전제품, 자동차 등 소비자와 직접 연관이 있는 소비재 제품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는 환경규제가 강한 국가일수록 소비자들이 '가치소비'에 집중하고, 그만큼 녹색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나래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글로벌 공급망이 더 이상 비용 효율성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기업의 환경적 정당성이 전략적 선택을 좌우하는 주요 조건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강력한 환경정책은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녹색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경영 분야 학술지 '저널 오브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터디스'(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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