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가치와 실현 가능성에 주목해야
'공정성장'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 신조어를 처음 공식화했다. 그는 7월 1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자신의 첫 공약발표 기자회견에서 '공정성장'을 '제1공약'으로 표방하고 "공정성 확보로 성장의 토대를 재구축하는 전략"의 방향과 포부를 밝혔다.
공정성장은 '공정'과 '성장'이라는 두 단어가 결합된 말이다. 사실 이 두 단어는 결합하기 어색한 상호모순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성장'은 생산과 소득의 영역에 속한다. 또 성장은 불공정한 분배를 낳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공정의 기반 위에서 성장을 이루기란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반면 '공정'은 분배와 사회정의의 가치다. 공정을 강조하면 성장이 불가능하거나 제약되어 성장의 족쇄로 작용할 것이라고 인식했다.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공정'과 '성장'을 결합하는 정치적 언어감각은 주목할 만하다.
◇ '공정성장' 단지 표심전략일까
'공정성장'이 화두로 등장하게 된 직접적 배경은 선거다. 선거를 통해 모든 정책적 요구가 응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시하는 공약과 정책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현실과 역량을 적확하게 담아내어 실현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 첫째 배경은 극단화되고 있는 양극화의 현실이다.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일자리 문제, 비정규직 문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축과 자영업자의 위기 등을 동시에 해결할 해법은 그리 마땅치 않다. 하지만 '공정과 성장'이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붙잡는 전략과 정책만이 설득력을 지닌다.
둘째는 '공정'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공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의 요구는 거세다. 최근 KBS 세대인식 집중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에게 두드러지는 것은 공정에 대한 요구와 경제적 희망 포기다. 후보자의 공약이란 선거의 흐름과 역학관계 속에서 생산되고 변형된다. 이는 수면 위에 떠올랐던 '기본소득' 이슈에서 '공정성장' 공약발표로 발빠르게 이동해 기본소득 논란을 벗어나고 보다 광범위한 지지를 모으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셋째는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의 경제적 역량과 가능성이다. 공정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근본 동력은 공정에 대한 정책적 의지와 공정한 룰에 기반하면서도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다.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선진국 진입을 선포했다. 선진국 진입이란 다분히 국제적 경제 지표에 의한 것이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지닌 공정성장 잠재력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내외적 추세변화 흐름을 포착해 '공정성장'이란 전략을 내세운 점은 단지 표심얻기를 위한 선거 슬로건으로 평가하기 곤란하다. 국제적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를 담아 기민하게 경제전략의 키워드를 워딩하는 전문적 감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ESG가치와 일맥상통하는 '공정성장'
이 지사는 공정성장의 큰 그림과 이에 이르는 과정을 스케치했다. 먼저 전환적 성장 방안으로 "기후에너지부, 대통령직속 우주산업전략본부, 데이터전담부서 설치, 기초 및 첨단과학기술 투자확대 등으로 미래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아울러 "에너지·디지털 전환, 팬데믹 시대 바이오 산업 육성 등 미래산업에 필요한 인프라에 정부 주도의 대대적 투자로 신속한 사업 재편과 신성장동력사업을 지원·육성하겠다"고 언급했다.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우주산업전략본부를 언급한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전자는 전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기후위기의 현저한 조짐으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후자는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으로 한미미사일협정의 족쇄에서 벗어난 점과 우리나라 우주개발 기술의 수준에서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또한 공정성장 방안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불공정거래와 악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엄중한 징벌배상, 사회적 대타협을 말했다. 특히 모든 경제관계에 만연한 갑을관계를 시정하고 공정경쟁 질서를 확보하는 제반 정책들과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 경제적기본권 보장'을 언급했다.
이러한 '공정성장'의 얼굴은 최근 국제적으로 대두되는 ESG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ESG는 친환경, 사회적 책임경영,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기업의 목적이 단지 이윤추구만이 아니라 살기좋은 지구를 만들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가치 전환의 흐름이 도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언급한 '공정성장'이 ESG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정부가 ESG를 모든 기업에 요구하고 적극적인 단호한 조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 '공정성장'이라는 정치적 연금술
'공정'과 '성장'을 합친 '공정성장'이란 언어는 사뭇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공정을 강조하면 성장이 중단된다고 믿었고, 성장을 위해서는 공정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그릇된 신념이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다수를 희생시키고 소수가 부를 누리는 갈취적 경제 관행이 너무 오래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경제담론이 우리 사회에 만연했었다. 담론의 관점에서 해부하자면 성장담론은 소수를 위한 논리이자 권력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공정담론이 힘을 얻고 사회적 공감을 확산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양자를 조화시켜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사회적 장치다.
그간 단 한 번도 우리 사회에서 언급되거나 실험되지 않았던 '공정성장'이 과연 실제 정책으로 시도될 것인가?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 불공정 완화와 지속적 성장을 이룰 것인가? 그것은 시민들의 의지에 달려있다. 개념적으로 융화될 수 없는 '공정'과 '성장'이 화학적으로 결합되는 연금술의 기적을 만드는 동력 역시 시민에게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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