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업계가 요구할 때는 무시하더니…" 불만도
국내 게임업계의 10년 넘은 외침에도 꿈쩍하지 않던 '강제적 셧다운제'가 해외 인기게임 하나때문에 사라지게 됐다. 업계에서는 일단 환영하고 있지만, 폐지 이유가 '해외 유명게임 접속불가 사태' 때문이라는 점에서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와 여성가족부(장관 정영애)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25일 열린 제15차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게임시간 선택제'로 일원화한다는 '셧다운제도 폐지 및 청소년의 건강한 게임 이용 환경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2011년 11월 시행된 강제적 셧다운제는 여성가족부가 발의한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 접속을 막는 제도다. 하지만 시행 이후 꾸준히 실효성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다. 2017년 11월 정책토론회에서는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으며 오히려 청소년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업계에서도 지속적으로 폐지를 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럼에도 여가부를 필두로 한 정부는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하에 업계와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 왔다. 그러다가 최근 발생한 '마인크래프트 청소년 이용 불가 사태'로 인해 폐지 논의가 시작됐고, 전격 없애기로 한 것이다.
'마인크래프트'는 스웨덴 개발사 '모장'에서 2009년 출시한 게임으로 담백한 그래픽과 높은 자유도로 전세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2조5000억원에 사들였다. 문제는 MS가 보안문제로 구버전 이용자를 올해까지 신버전으로 통합하기로 하면서 발생했다. 통합된 버전을 이용하기 위해선 MS 계정이 있어야 하는데 청소년은 MS 계정을 생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MS를 포함한 대부분 글로벌 사업자는 국내 셧다운제 도입 당시 글로벌 시스템을 한국의 규정에만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계정 생성을 성인만 가능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마인크래프트의 주 이용자인 미성년자들은 게임을 할 수 없게 됐다. 마인크래프트는 특유의 자유도와 단순한 그래픽 덕분에 오히려 청소년 교육 활용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실제 해외에서는 이를 이용한 교육이 진행되기도 했었다. 전세계적으로 아동들과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청소년 이용 불가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여가부는 "MS 정책 변경으로 인한 문제"라며 "MS에 한국 게임이용자를 더 세심하게 고려하도록 요청하겠다"라고 책임을 전가,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여가부와 문체부 등 관련부처들은 부랴부랴 셧다운제 폐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이날 폐지하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청소년들의 접속을 강제로 막는 것을 없애는 대신, 현재 나머지 시간대에 적용중인 '게임시간 선택제'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게임시간 선택제'는 만 18세 미만 청소년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의 요청 시 원하는 시간대로 게임 이용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제도다. 연매출 300억원 이상의 기업이 청소년에게 제공하는 인터넷 게임은 의무적으로 이를 도입해야 한다.
이로 인해 '마인크래프트 청소년 이용 불가 사태'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MS는 이미 '게임시간 선택제' 유사한 기능인 '엑스박스 패밀리 세팅앱'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앱은 부모가 자녀의 엑스박스 계정을 등록해 자녀의 게임 이용 시간과 콘텐츠 접근 권한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통해 조사한 결과 MS가 자녀의 이용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실무단에서 협의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게임업계의 숙원인 '셧다운제 폐지'는 이뤄졌다. 하지만 그 발단이 국내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해외 게임의 접속 불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게임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업계와 전문가, 이용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10년 넘게 듣는 시늉도 하지 않다가, 해외 게임 접속 불가로 파장이 커지자마자 바로 폐지를 결정한 것을 보고 허탈함만 남는다"며 "앞으로 게임업계 대표로 MS 관계자를 내세워야 할 판"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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