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시대 기업 생존 걸린 가장 '현실적인' 문제
지난 3일 진행된 대선후보 4자토론 이후 'RE100'이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후보를 향해 "RE100에 어떻게 대응할 거냐"고 묻자 윤 후보가 "그게 뭐죠?"라고 되묻는 장면이 나오면서다.
이날 토론에서 윤 후보가 이 후보의 일자리·성장 분야 주도권 토론 질문에 대해 이같이 되묻자, 이 후보는 "재생에너지 100% 사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윤 후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다. RE100은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이고, 윤 후보 말처럼 정말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 짚어보자.
◇ RE100은 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RE100은 '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줄임말로, 2050년까지 기업의 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CDP)가 함께 시작했다. 현재 RE100에는 애플, IBM, BMW 등 349개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중이고, 국내 기업은 SK 계열사와 아모레퍼시픽, LG에너지솔루션 등 14개사가 합세한 상태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같은 환경 서약에 참여한 데는 이유가 있다. RE100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거창한 명분에 앞서 기후위기가 기업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는 지독한 현실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2050년까지 전세계 기온상승을 1.5°C 이내로 억제하지 못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됐고, 결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장사를 하려해도 지구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에 따르면 기업의 RE100 이행에 결정적 역할을 한 요소로 '소비자들의 인식변화'가 꼽혔다. 포브스 설문조사 응답자의 66%가 "지속가능한 브랜드 사용"에 동의했으며, 81%는 "기업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인식변화를 더는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소비자는 곧 유권자다. 지난해 독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가 정권교체를 지지했고, 이 가운데 55%가 정책변화가 필요한 분야로 '환경보호·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순위로 꼽았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환경정책이 선거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유럽연합(EU) 차원에서의 환경규제가 점점 더 빡빡해지고 있다.
기업명 | 회원유형 | 가입연도 | 목표연도 |
고려아연 | 골드 | 2021 | 2050 |
LG에너지솔루션 | 골드 | 2021 | 2030 |
SK하이닉스 | 골드 | 2020 | 2050 |
SK텔레콤 | 골드 | 2020 | 2050 |
아모레퍼시픽 | 일반 | 2021 | 2030 |
KB금융 | 일반 | 2021 | 2040 |
한국수자원공사 | 일반 | 2021 | 2050 |
미래에셋증권 | 일반 | 2021 | 2025 |
SK아이이테크놀로지 | 일반 | 2021 | 2030 |
SK | 일반 | 2020 | 2040 |
SK머티리얼즈 | 일반 | 2020 | 2050 |
SK실트론 | 일반 | 2020 | 2040 |
SKC | 일반 | 2020 | 2050 |
롯데칠성음료 | 일반 | 2021 | 2040 |
◇ 돈줄 조이는 큰손들...기업들 '위기이자 기회'
최근 EU의 '탄소국경조정세'와 'EU 택소노미'가 이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세'는 기후위기를 불러온 생산·소비 방식에서 가장 많이 혜택을 본 기업에 대한 징벌적 관세다. 이 관세는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해 발빠르게 체제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를 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탄소배출을 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해 비대칭 규제를 함으로써 EU 기업들이 탈탄소 산업에 대한 우위를 점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EU 택소노미'는 투자자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다. EU 택소노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에 맞춰 지속가능한 산업을 구분해 금융권과 투자자가 금융지원 대상을 구분하도록 하는 녹색분류체계다. EU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못하면 자금조달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기업들에 구속력 있는 지침이 될 전망이다. 그러니까 EU 택소노미는 탄소세가 의도하는 바를 가속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날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는 EU 택소노미와 관련된 '원자력 논란'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공약으로 원전을 제시한 윤 후보는 'EU 택소노미'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EU 회원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지만 핵폐기물 등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원자력 그리고 화석연료의 하나인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시키는 것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EU는 4개월간의 조정기간을 통해 택소노미 최종안을 승인할 예정이다. 최종안이 원안대로 승인되면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소형모듈원자로(SMR) 연구개발 등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세계 곳곳의 원자력 발전소는 조기폐쇄를 면치 못할 수 있다. 이처럼 택소노미 포함 여부로 한 산업의 존폐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해외 공적연기금들은 투자문화의 질적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기업들을 꾸준히 압박하고 있다. 자산운용규모가 200억파운드(약 31조원)에 이르는 영국 국가퇴직연금신탁 네스트(Nest)는 지난해 12월 기후위기를 이유로 한국전력공사를 포함해 5개 기업에 투자한 자금 4000만파운드(약 630억원)를 회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서 3번째로 큰 연기금인 뉴욕주 일반 퇴직연금(New York State Common Retirement Fund)도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계획이 없는 기업의 주식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이같은 움직임은 글로벌 기업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mpany)에 따르면 기업의 지속가능성 전략은 환경에 대한 악영향을 최소화함으로써 비용절감과 더불어 기후변화 규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지속가능성 추구는 에너지·물 사용량 및 폐기량 절감으로 상당한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오며, 이는 영업이익의 최대 60%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탄소공동체'로 묶이는 기업들···편승못하면 도태
결국 글로벌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RE100에 속속 가입하면서 탈탄소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문제는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은 자체 사용전력뿐 아니라 협력사들의 사용전력까지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애플과 IBM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은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으로 부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들 회사에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들도 RE100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공급망으로 얽힌 가치사슬은 전세계 기업들을 '탄소공동체'로 묶고 있다.
올 1월 한국RE100협의체가 국내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RE100 활성화를 위한 기업 설문조사'에 따르면 RE100 가입 의향이 있는 기업은 전체의 64%로 나타났다. RE100 가입목적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7.2%가 기업의 'ESG경영'을 꼽았고, 21.7%가 탄소배출권 대응 목적이라고 답했다. 결국 RE100을 포함한 ESG경영 없이는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고, 규제에 시달리다 국제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들은 당장 RE100을 이행하기 어렵다. 기존 생산과 판매방식의 구조를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RE100을 비롯한 기후위기 대응은 기업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전환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현재 기업들에게 'RE100'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수출로 성장을 도모하는 국내 기업들은 더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