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오기전 가스 확보해야"…에너지위기
석탄화력발전 늘리기도…기후위기 악순환
재앙처럼 지구촌 곳곳을 덮친 살인적 폭염이 전세계를 다시 '에너지 전쟁'으로 몰아넣으면서 그간의 탄소감축 노력도 무위로 만들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득이나 에너지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폭염으로 전기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주요 국가들은 에너지 확보와 전기사용량 절감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 폭염으로 전기사용 급증…"겨울이 더 문제"
유럽과 미국의 폭염 상황은 좀체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영국 링컨셔의 코닝스비 영국공군기지의 기온은 40.3도까지 오르면서 영국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히드로 공항도 40.2도, 서리의 찰우드가 39.1도,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까지 35도 가까이 오르는 등 영국 전역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7월 평균 기온이 20~25에 불과해 에어컨 보급률이 5% 수준인 영국인들에겐 이번 폭염이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다. 응급환자가 급증하고, 도로가 녹아내리고, 철로가 휘고, 전선이 녹아 정전이 발생하는 일은 예사가 됐다.
영국뿐만 아니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아일랜드 등 유럽 전역이 모두 펄펄 끓고 있다. 포르투갈은 한때 기온이 47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도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의 최고 기온이 37.8°C까지 올라 89년만에 이전 최고기록(36.7°C)을 갈아치웠다. 뉴욕 인근에 있는 뉴저지주 뉴어크는 5일 연속 37.8°C를 넘어 1931년 이후 최장기 기록을 세웠다. 동부연안이 아닌 캔자스주,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와 같은 중서부 지방과 캘리포니아주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텍사스주, 테네시주도 뜨겁긴 마찬가지다.
일본도 6월부터 도쿄 기온이 35~36도를 넘나드는 등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열사병 환자가 속출했고, '열사병 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폭염은 어떻게 넘긴다고 하더라도 겨울이 오면 에너지 위기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유럽의 경우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현재 러시아는 EU의 반(反) 러시아 동맹, 그리고 대러 제재 등에 맞서 천연가스 공급을 크게 줄였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적하는 국가에게 에너지를 무기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록적 폭염으로 인해 여름부터 에너지 사용이 크게 늘면서 EU 국가들은 '히터없는 겨울'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 "최대한 확보하고 사용 절감하라"…에너지 전쟁 시작됐다
지난 5월 EU는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리파워EU'라는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수입원을 다각화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온 폭염으로 인해 이같은 정책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제대로 준비를 갖추기 전에 폭염으로 인해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당장 살기 위한 방안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뜻이다. 헝가리가 최근 러시아를 찾아가 가스 공급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제는 비단 유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EU 국가들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처 다변화에 나서고 있고, 이는 가스 가격 상승 가속화로 이어진다. 결국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가스와 에너지 확보라는 전화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에너지 확보 경쟁과 동시에 절감을 위한 정책도 펼치고 있다. 프랑스는 상점에서 에어컨을 가동할 경우 문을 열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750유로(약 100만원)를 부과한다. 이밖에도 △소매점 영업종료 직후 간판 소등 △공공시설 적정 실내온도 지정 △철도 및 공항 제외 오전 1~6시 전광판 광고 금지 등의 조처가 시행될 예정이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심야 시간대 신호등을 끄는 방안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제한 속도로 유명한 ‘아우토반’의 최고속도를 시속 130㎞로 제한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시장 평균보다 더 많은 전기와 가스를 쓴 가정에 페널티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 "우선 살아야"…기후위기 늦추려는 노력 허사되나
한편 이번 폭염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들을 수포로 돌리고 있다. 가스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석탄이라는 탄소배출이 많은 화석연료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최근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대기오염의 주범인 갈탄을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는 겨울철 전력난에 대비해 2020년 중단한 석탄 발전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도 3월 운영을 중단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리스의 국영 에너지 회사는 석탄 사용량 감소 이행 시점을 늦추려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때 이른 폭염을 겪은 뒤 석탄 발전량을 늘렸다.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인 중국도 충분한 전력공급 능력 확보를 위해 석탄 생산과 발전을 확대하는 추세다. 인도 역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면서 석탄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야기된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가 다시 탄소배출을 늘리는 악순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이젤 아넬 영국 레딩대학 기후과학 교수는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2050년대까지 2~3년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지구기온이 금세기 말까지 2도 이상 오르면 그 빈도가 더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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