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온종일 주운 폐지 104kg이 7280원…반토막 난 '삶의 무게'

조인준 기자 / 기사승인 : 2023-01-13 09:27:34
  • -
  • +
  • 인쇄
1년전 1kg 142원 폐지값이 지금은 70원
폐지 줍는 어르신들 "한끼 밥값도 못벌어"
▲고물상 앞에 대놓은 김모씨 수레. 폐지 무게만 100㎏이 넘는다. ©newstree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고물상 앞. 오전 7시 무렵인데도 고물상 앞에는 이미 폐지와 고물이 가득 실린 수레들이 줄줄이 서 있다. 고물상은 오전 8시에 문을 열지만 한시라도 빨리 계산하고 동네를 한바퀴 더 돌려는 급한 마음에 이른 아침부터 고물상 앞에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고물상에 제일 먼저 도착한 김모씨(72)는 수레를 문 앞에 바짝 붙여놓고 근처 골목길로 들어갔다. 잠시 화장실이라도 가나 싶었는데 골목 어귀에 떨어진 폐지를 발견하고 줍기 위해서였다. "잔뜩 모아 오셨는데도 부족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폐지값이 많이 떨어져서 덩치만 컸지 실속은 없어"라며 "가만히 기다리는 것도 아까우니 이렇게 짜잘한 거라도 줍는 거지 뭐"라고 답했다. 그는 이후로도 고물상 문이 열릴 때까지 40여분을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골판지 박스와 양철 기름통 등을 더 주웠다.

이렇게 꾹꾹 쌓아올린 김씨의 폐지 무게는 104kg. 몸무게의 2배나 되는 폐지를 수레에 싣고 왔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고작 7280원이었다. 1년전만 해도 1kg당 142원하던 폐지 가격이 지금은 70원으로 절반 이상 떨어지면서 김씨의 수입도 절반으로 줄었다. 오히려 운좋게 주운 자전거 1대로 4200원을 벌었다. 김 씨가 하루종일 동네를 돌며 고물과 폐지를 주워 번 돈은 1만1500원이었다.

한때 밥벌이가 됐던 폐지값이 폭락하자, 고물상에서는 종종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박모씨(76)도 이날 "종이값이 왜 이러냐"며 고물상 주인에게 푸념을 늘어놨다.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5시부터 일산시장을 돌면서 폐지를 주웠는데 고생한 보람이 없었다. 박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1㎏에 120원~130원 해서 한 수레 모아오면 하루 밥값은 됐다"며 "그런데 지금은 밥값은 올랐는데 폐지값은 떨어지니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3년째 새벽마다 폐지를 주운 박모씨 ©newstree

폐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허전하다. 온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운 폐지값이 한끼 밥값도 안되기 때문이다. 

자원순환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12월 수도권 폐지 가격(골판지)은 1㎏당 평균 85원이다. 하지만 고물상에서 매입하는 폐지 가격은 이보다 조금 낮은 60~70원 정도다. 서울시에 있는 일부 고물상들은 1㎏당 40원에 매입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월 1kg당 142원 했던 때와 비교하면 거의 폭락 수준이다.

이처럼 폐지 가격이 폭락한 이유는 경기침체 영향으로 폐지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고물상을 통해 수거된 폐지는 제지 공장으로 옮겨져 재생용지로 만들어지거나 해외로 수출하게 된다. 그런데 전세계가 경기불황에 빠지면서 폐지 수요가 감소했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폐지 수출량은 2022년 3월 5만톤(t)에서 11월 2만2000톤(t)까지 감소했다. 연초에 비해 절반이나 줄어든 것이다.

이 때문에 전국 고물상과 제지공장에는 폐지 재고가 쌓여있다. 2022년 12월 기준 국내 제지공장의 폐지 재고량은 20톤(t)에 육박했다.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넘쳐나는 폐지를 보관하기 위해 경기 양주와 안성 등 전국 6곳에 공공 비축창고를 마련했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폐지 재고가 쌓이면서 폐지 가격은 더 떨어지고 있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폐지 수거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자기 몸보다 3배 큰 폐지를 모아 끌고오는 노인들 ©newstree

고물상을 하루에 6번 들른다는 이모씨(80)는 원래 폐지만 줍다가 얼마전부터 음료수 캔과 플라스틱 병도 줍기 시작했다. 알루미늄 캔은 1㎏당 1500원이나 되지만 모으기 어렵고 폐지처럼 차곡차곡 쌓기도 힘들어서 여태까지 줍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폐지 가격이 터무니없이 떨어지면서 음료수 병까지 줍고 있다. 이 씨는 "나이가 있으니 힘도 없어서 폐지만 조금씩 주웠는데 이젠 힘들어도 음료수 병까지 줍는다"면서 "배운 거 없는 노인네가 먹고 살려면 이것밖에 없으니…"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폐지 수집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은 전국에 1만5000여명이다. 이들은 하루 평균 11시간씩 수레를 끌고 12.3㎞를 이동하며 폐지를 줍는다. 그렇게 하루종일 움직여서 버는 돈은 평균 1만428원. 시급으로 환산하면 948원이다. 최저임금의 1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폐지 수집 노동시장에는 이 씨처럼 다른 수입원없이 온종일 폐지 수집에만 전념하는 노인,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거나 수급을 받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노인들이 있다. 대부분 저학력에 부양해줄 가족이 없고, 나이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건강이 나빠져도 폐지 줍기를 멈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안있으면 설날인데 좀 쉴 수 있으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씨는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쉬는 날이 어딨어요"라며 "오히려 설날 선물 덕분에 쓰레기가 많이 나오니까 부지런히 돌아요. 체력 좀 되는 사람들은 옆동네까지 원정가요, 거긴 주말에도 열거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우리은행,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해 '플로깅' 봉사활동

우리은행이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해 플로깅 봉사에 나섰다고 12일 밝혔다.우리은행의 직원 사회공헌 커뮤니티 'WOORI 가족봉사단' 은 지난 10일 인천 을

KB국민은행, 2027년까지 3만㎡ '바다숲' 조성한다

KB국민은행은 5월 10일 '바다식목일'을 맞아 오는 2027년까지 3만제곱미터(㎡)의 바다숲을 조성하는 'KB바다숲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12일 밝혔다.바다는

대한항공, 캐나다 2위 항공사 '웨스트젯' 지분 10% 인수

대한항공이 캐나다 2위 항공사 지분 10%를 인수하며,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대한항공은 9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캐나다 웨스트젯 항

현대百 등 4개 계열사 자사주 취득..."주주가치 제고 차원"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 등 계열사 4곳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약 3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추가 취득하기로 했다.현대백화점은

빙그레 대표이사에 ㈜제때 김광수 사장 내정

빙그레가 신임 대표이사에 ㈜제때의 김광수 대표이사를 내정했다고 9일 밝혔다.빙그레는 전창원 현 대표이사가 최근 개인적인 이유로 자진 사임 의사

LG화학, 협력사 탄소중립 지원 소매걷었다..."ESG경영 실천"

LG화학이 협력사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다.LG화학은 9일 '탄소중립 선도플랜트 구축 지원' 사업을 통해 우수 협력사인 우성케미칼의

기후/환경

+

'바나나 재배지' 기후변화로 3분의 2가 사라질 위기

2080년까지 기후위기로 바나나 재배지 가운데 3분의 2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자선단체 크리스천에이드가 12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

척박한 토양 늘어나고 있다...'물부족, 가뭄, 홍수' 초래

토양 악화로 물부족, 가뭄, 홍수 등 기후재난이 더욱 빈번해지고, 토양의 탄소저장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국제토양보존 촉구단체 세

EU, 車 탄소배출 규제완화 확정…"전기차 전환 지연 우려"

유럽연합(EU)이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유럽의회는 8일(현지시간)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5년~2027년까지 3년 평균 배출

4월 1.5℃ 또 무너졌다…역대 두번째 더운 4월로 기록

올 4월 전세계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1℃ 상승해 관측 사상 두번째로 더운 4월로 기록됐다.유럽연합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

美중부지역 '4일간 비가 내릴 가능성' 40% 높아졌다

기후변화로 인해 미국 중부지역에서 나흘간 연속적으로 비가 내일 가능성이 40% 더 높아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기후연구단체 세계기상특성(WWA)이 9

美 15개 주 '반기'...트럼프 '에너지 비상사태' 명령에 공동소송

미국의 15개 주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비상사태' 행정명령에 반대하며 9일(현지시간) 연방법원에 공동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행정명령이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