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기반 부실...재생원료 통계기반도 없어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골자로 하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초안이 올 11월 확정될 예정인 가운데 국내 플라스틱업계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재활용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내는 아직 정부 차원의 재생원료 통계기반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14일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초안에 신규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에 대한 내용이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밝혔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지난 2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열린 제2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2)에서 오는 11월까지 '법적 구속력' 있는 초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하면서 코앞에 직면했다.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생산량 비중은 전세계 4.1%에 달한다. 중국과 유럽연합(EU), 미국, 인도 다음으로 높기 때문에 관련 규제가 시행되면 국내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신규 생산량 감축을 대체할 수 있는 재활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올 2월 재활용 없이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에 대해 호주 비영리단체 민더루재단(Minderoo Foundation)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롯데케미칼(14위), 한화케미칼(27위), LG화학(28위), SK이노베이션(45위), 대한유화(69위) 등 국내 기업 5곳이 100대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플라스틱 부문이 유럽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포함될 공산도 크다. 재활용으로 석유기반 원료를 감축하지 않거나 공정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 탄소발자국이 높은 플라스틱 제품을 수출하게 되면 해당 국가에서 탄소세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오는 2026년까지 CBAM에 플라스틱 추가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이미 EU 회원국들은 탈플라스틱 정책에 따라 2025년 페트병 재생원료 비중을 25%, 2030년부터는 30% 이상 쓰기로 했기 때문에 규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영국은 재생 플라스틱 비중이 30% 미만인 포장재에 대해 1톤당 200파운드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플라스틱이 탄소세 부과대상에 포함되면 지난해 기준 대(對)EU 수출 가운데 20.1%에 해당하는 13억6672만유로(약 1조8800억원)를 차지했던 국내 화학공업과 플라스틱, 고무관련 제품들은 관세를 추가로 물어야 한다.
올 11월 마련되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초안을 바탕으로 오는 2024년 하반기 서울에서 열리는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에서 최종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유예기간이 2년 부여된다고 가정하면 2027년쯤 협약이 시행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생산과 사용은 제한을 받게 된다. 여기에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우리나라는 산업부문에서 탄소배출을 11.4% 저감해야 하는데, 이 가운데 석유화학산업 비중은 산업부문의 17%를 차지한다. 더구나 석유화학산업은 석유를 원료뿐 아니라 연료로도 사용한다. 따라서 에너지 집약적이면서도 원료지향적 산업인 플라스틱은 여타 부문에 비해 허들이 더 높다.
이처럼 수년내 국내·외 전방위적인 압박이 예상되면서 국내 플라스틱 업계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5월 '그린 프로미스 2030' 비전 하에 2030년까지 친환경 리사이클 소재 사업규모를 100만톤 이상으로 늘리는 동시에 원료부터 판매,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경제, 환경, 사회 분야에 미치는 영향과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롯데케미칼은 2021년 울산2공장에 약 1000억원을 투자해 국내 최초로 폐페트(PET)를 처리할 수 있는 해중합 공장을 4만5000톤 규모로 신설하고, 해중합 공장에서 생산된 재활용 원료인 BHET을 투입해 페트로 만드는 11만톤 규모의 생산설비를 2024년까지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수거된 폐페트의 원료화부터 제품생산에 이르는 자원순환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대규모 단일 공장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LG화학은 3100억원을 투입하는 충남 당진 석문산업단지에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생산시설을 지난달 30일 착공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생산시설을 구축해 연간 2만톤 규모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재활용 설비를 아무리 대규모로 갖춰도 정작 공장가동에 필요한 재생원료 수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2021년부터 바젤협약이 개정되면서 폐플라스틱 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됐고, 국제 규제환경에 따라 자국 내에서 재생원료 물량을 공급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면서 재생원료 가격도 치솟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순도가 높은 고품질의 재생원료를 대량으로 확보하기 힘들다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2021년 기준 롯데케미칼의 재생원료 사용량은 1만4850톤, LG화학은 14톤 수준이다. 재생원료 사용률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부가 집계하는 우리나라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은 연료로 쓰이는 '열적 재활용'과 분리배출된 폐기물의 '수거율'을 합산한 수치여서, 재생원료로 활용되는 실질적인 재활용률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환경부의 '플라스틱 국제협약 INC 준비 로드맵'에 따르면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나오면 그에 맞춰 국내 플라스틱 통계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이 때문에 규제가 확정되기 이전에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플라스틱 국제협약 협상동향 조사·연구' 보고서를 통해 "INC 협상은 국가별 대응보다는 유엔회원국 내 지역그룹 차원에서 대응하므로 사전에 지역그룹의 주요 입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서 "플라스틱 재활용의 가장 큰 문제는 재생원료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므로 대기업-중소기업 협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양순정 한국플라스틱산업협동조합 상무는 "우리나라는 석유자원이 전혀 없지만 노동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플라스틱 선진국이고, 석유화학이 수출 주력산업이기 때문에 이번 국제협약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플라스틱 수급에 있어 분리수거를 통해 유용자원화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에 폐기물 선별·분리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자동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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