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적자가 200조원에 달하는 한국전력공사가 전세계에서 가스발전 설비를 가장 많이 늘리고 있어, 화석연료 좌초자산 리스크가 더 증가해 적자의 고리를 끊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독일 비영리단체 우르게발트(Urgewald) 등 50개 이상의 단체가 발간한 보고서 '글로벌 석유·가스 퇴출 리스트'(GOGEL, Global Oil&Gas Exit List)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액화가스(LNG) 발전설비를 총 17.2기가와트(GW) 추가한다. 이 가운데 14.9GW는 국내 석탄발전 대체용이고, 나머지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스공사와 함께 가스발전소 사업으로 계획한 용량이다.
GOGEL은 매년 전세계 석유·가스 1666개 기업을 대상으로 상류 부문(탐사 및 채굴), 중류 부문(수송)과 발전 부문을 조사하고 관련 정보를 취합해 공개하는 데이터베이스다. GOGEL은 전세계 석유·가스 생산량의 95%를 차지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이는 전세계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고 조망할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한전이 올해 확충하려는 가스설비 규모는 단연 전세계 최대 규모다. 방글라데시 전력개발위원회(BPDB)는 16.9GW, 대만전력회사(Taipower)는 14.9GW, 베트남 전력공사(ENV)는 9.9GW, 중국화능집단공사(China Huaneng Group)는 9.5GW 규모다.
이에 기후솔루션은 한전이 기후 리스크가 취약해져 앞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전은 지난 13일 10분기만에 영업이익 2조원을 기록해 흑자전환했다고 발표했지만, 국제 가스가격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면서 올 4분기에는 다시 적자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전력거래소의 2023년 1분기 전력시장감시 분석보고에 따르면 한전의 역대 최대규모 적자는 화석연료 발전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관련이 깊다.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한전 적자, 검은 진범' 보고서에서도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불거진 석유·가스 에너지 파동에 한전의 적자사태가 촉발됐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지난 10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세계 화석연료 수요가 2030년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하면서 신규 화석연료 사업의 불안정성과 좌초자산 리스크를 경고한 바 있다.
기후솔루션 오동재 연구원은 "전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대두하며 에너지 시장이 재편되는 와중에 한전은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한전은 화석연료 발전에 대한 높은 의존이 더 큰 영업손실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계속 새로운 좌초자산에 투자하고 있다"며 "구식 사업모델을 뒤로 하고 신속히 에너지 전환에 신경써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한전 뿐 아니라 한국가스공사는 전세계에서 7번째로 LNG 수입량이 큰 회사로 지목됐다. 가스공사는 급등한 연료값에 지난 13일 전체 미수금이 15조5000억원을 넘으며 전례없는 재무위기를 맞았다.
우르게발트의 석유·가스 연구팀장 닐스 바취는 "한전을 비롯해 국가 전반적으로 화석연료 확대가 이어지는 것은 화석연료에서 탈피해 에너지 전환을 이루고자 하는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한국 정부는 탈화석연료하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가스 밸류체인에 투자를 늘리려는 한국 기업들도 좌초자산 리스크가 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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