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후 양극화'가 극명하게 나타난 한해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면서 물난리를 겪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극단적인 폭염과 가뭄에 신음하는 지역들도 있었다. 지구촌 곳곳이 기후재앙으로 바람 잘 날이 없는 한해였다.
1월 미국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은 20일간 이어졌고, 여름에는 동일한 지역에 반복해서 태풍이 강타하면서 피해규모를 키웠다. 해양열파로 바닷물 온도가 식지 않으면서 태풍이나 허리케인은 짧은 시간에 더 강력한 힘을 얻어 세력을 키웠다. 가뭄은 산불을 키웠고, 대홍수를 낳았으며, 폭염을 더 길게 이어지게 했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되먹임 현상'을 초래하면서 기후재앙의 피해를 더욱 키웠다.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올해 지구의 여름철 평균기온은 25.7℃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기후전문가들은 지구의 기후시스템 전반이 불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기상이변은 이제 더 이상 '이례적인 재난'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상시적 위험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본지가 올해 역대급 피해를 낳았던 전세계 기후재난 8대 뉴스'를 간추려 봤다.
◇ 가뭄이 낳은 대재앙 '산불'
산불은 매년 발생하지만 올해 산불은 오랜 가뭄과 폭염으로 인해 피해규모가 역대급으로 컸다는 점에서 특이할만하다. 연초 미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오랜 가뭄이 빚어낸 결과이고, 유럽에서 발생한 산불은 폭염이 초래한 산불이다.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폭염이 가뭄과 산불로, 가뭄이 산불과 폭염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하나의 기후패턴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1] LA 초대형 산불 20일간 '활활'
1월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일대에서는 '팰리세이즈'를 비롯해 이튼, 허스트, 휴즈 등 10여곳에서 동시다발로 산불이 발생했다. 때마침 거센 강풍까지 몰아치면서 산불 피해지역은 더 커졌다. 이 산불은 20일가량 이어지면서 주택 1만8000채 이상을 태웠다.
오랜 가뭄으로 호수에 물까지 말라바려서, 소방헬기는 불을 끄기 위해 바닷물까지 퍼부어야 했다. 또 진화인력이 부족해 교도소 수감자까지 동원해 총력전을 펼쳤지만 불길을 잡기에 역부족이었다. 전년도 폭염으로 잡초와 토양이 극도로 건조해진 상황에서, '악마의 바람'이라 불리는 최대 순간풍속 44m/s의 계절풍 '샌타 애나'(Santa Ana)까지 몰아치면서 불길을 키웠기 때문이다.
이 산불로 소실된 면적은 233평방킬로미터(㎢)에 달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80배에 달하는 땅이 잿더미가 된 것이다. 경제적 손실은 2500억달러(약 358조47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2] 63만 헥타르 불타버린 유럽
7~8월 유럽에서 발생한 산불은 63만 헥타르(ha)의 숲을 태웠다. 이는 지난해 유럽 산불 피해규모보다 3배가 넘는다.
7월에는 독일과 그리스,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산불로 2만ha가 잿더미가 됐고, 8월 초에는 프랑스 남부에서 1만6000ha 산림이 불탔다. 같은달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2주 만에 59만8800ha가 불타버렸다. 이 산불은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산불의 피해가 커진 원인은 40℃가 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진 탓이다. 5월부터 이어진 더위와 가뭄은 숲과 토양을 메마르게 만들면서 7~8월 산불의 거대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유럽 전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만 1290만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이 산불을 두고 '폭염이 만들어낸 재난'으로 평가했다.
◇ 이상고온이 낳은 대재앙 '극한호우'
올해도 지구촌은 불판처럼 뜨거웠다. 인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권은 4월부터 이미 체감온도 50℃를 넘나드는 이상고온 현상이 펼쳐졌고,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도 6월부터 최고 46℃까지 온도가 치솟는 등 더위가 이어졌다. 특히 튀르키예는 7월 역사상 처음으로 기온이 50.5℃에 달하면서 '살인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이같은 폭염은 육지뿐 아니라 바다까지 달구면서 극한호우를 낳았고, 태풍과 허리케인을 수퍼급으로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동일한 장소에 강력한 폭풍우가 반복해서 강타하는 기현상까지 보였다. 이는 열대폭풍이 뜨거운 바닷물에 힘입어 짧은 시간에 세력이 강력하게 커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3] 히말라야 빙하까지 녹았다···파키스탄 '대홍수'
폭염은 산불뿐 아니라 홍수까지 초래했다. 비가 집중되는 몬순 시기인 7월, 파키스탄 일부 지역의 기온이 48.5℃까지 치솟았다. 이례적인 고온으로 히말라야, 힌두쿠시, 카라코람 산맥 등 해발 1200m에 이르는 고산 지대 7200여개 빙하가 빠르게 녹았고, 집중호우와 맞물리며 대규모 홍수로 이어졌다.
녹은 빙하가 만들어낸 급류는 산사태를 동반하며 마을을 덮쳤다. 수백만 명이 거주하던 지역이 순식간에 물에 잠겼고, 1000여명 이상이 숨졌다. 도로와 교량, 농경지 등 기반시설 피해도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이 홍수는 계절에 따른 호우 피해를 넘어, 폭염과 빙하 융해, 홍수가 하나의 연쇄로 이어진 기후재난 사례로 꼽힌다. 기온 상승이 강수 패턴뿐 아니라 고산 지역의 안정성까지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4] 순식간에 9m 차오른 강물…美 텍사스 돌발홍수
7월 미국 텍사스에서는 '가뭄 끝 폭우'가 참사로 이어졌다. 오랜 가뭄에 시달리던 텍사스 중부에 시간당 최대 100mm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나 가뭄으로 딱딱하게 굳은 토양은 빗물을 흡수하지 못했다.
바닥을 드러내던 과달루페강은 불과 90분 만에 수위가 9m까지 치솟았고, 강물은 범람해 저지대 캠핑장과 야영지를 덮쳤다. 캠프에 참가한 학생 750여명이 급류에 휩쓸렸으며, 홍수로 인해 80여 명이 사망, 41명이 실종됐다.
이 폭우는 해양열대화로 뜨거워진 멕시코만에서 공급된 대량의 습기와 멕시코를 강타한 열대성 폭풍이 끌어올린 습한 공기가 겹치면서 발생한 국지성 호우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한번에 내리는 비의 양'이 커지면서, 돌발 홍수 위험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5]동남아 홍수와 산사태로 쑥대밭
12월초 우기로 접어든 동남아시아에 역대급 폭우가 내려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했다. 태국의 남부 일부 지역에는 300년만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고, 인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지역 3개 주에서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했고, 스리랑카에서도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했다.
최근 사이클론 '세냐르'가 이례적으로 믈라카 해협의 적도 바로 위쪽에서 형성돼 인도네시아 등지에 큰 피해를 입혔다. 보통 사이클론은 인도네시아 등이 있는 적도 인근에서는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기상당국은 "최근 5년동안 사이클론 빈도가 늘고 있다"며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면 인도네시아가 인도양과 태평양 양쪽에서 발생하는 사이클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우의 원인이 기후변화와 함께 난개발과 부실한 재난방지 시스템에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사이클론(열대성 저기압)이 몬순(monsoon) 우기와 맞물려 발생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 갈수록 독해지는 태풍
태풍과 허리케인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원인은 해양열파로 지목된다. 태평양과 대서양 등 해수면 온도가 예년보다 높아지면서 짧은 시간에 강력한 태풍이 형성되면서 피해규모를 키우고 있다. 이는 아시아와 미 대륙 등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서부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기의 현상' 역시 해양폭염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해양온난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지구에 흡수된 과잉열의 약 90% 이상이 해양에 저장되고 있으며, 극지방을 제외한 연평균 해수면 온도는 20.8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6] 동남아 잇단 수퍼태풍에 초토화
동남아시아와 중국은 올해 태풍의 단골장소였다. 우리나라 상공에 고기압이 겹겹이 쌓이면서 한반도로 접근하지 못한 태풍이 동남아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9월에 발생한 제18호 태풍 '라가사'는 시속 230㎞에 달하는 바람은 필리핀과 대만 그리고 홍콩과 중국 남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필리핀에는 11월초 최대풍속 190㎞/h에 달하는 태풍 '갈매기'가 관통하면서 또 피해를 입었다. '갈매기'가 강타한지 나흘만에 최대풍속 230㎞/h 슈퍼태풍 '풍웡'이 또 필리핀에 상륙하면서 엎친데 덮친격이 됐다.
11월말에는 사이클론 '세냐르'와 '디트와'가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스리랑카를 휩쓸면서 기록적인 폭우를 퍼부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홍수와 산사태로 400명이 사망했고, 태국 남부에서는 강 수위가 3m 이상 상승하며 300만명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스리랑카에서도 300명이 숨지며,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온난화 영향으로 해수온이 높아지면서 태풍이 대량의 수증기와 에너지를 흡수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고, 한번 태풍이 만들어질 조건이 형성되면 연이어 태풍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7] 섬나라 휩쓴 '멜리사'···역대급 허리케인
10월말 최대풍속 290㎞/h 초강력 허리케인 '멜리사'는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열대저기압이 4일만에 5등급 괴물 허리케인으로 돌변한 이유는 대서양 수온이 평년보다 3℃ 이상 높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멜리사는 자메이카와 아이티, 쿠바 등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자메이카에서는 2만5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쿠바에서는 73만5000명이 대피했다. 강풍은 모든 시설을 부숴버렸다. 전신주와 나무는 뿌리 채 뽑혔고, 지붕은 모두 뜯겨나갔다. 강풍이 몰고온 폭우와 파도는 해안지역을 삼켜버렸다.
자메이카의 주택가는 지붕만 남긴 채 물바다가 됐고 전봇대가 줄줄이 쓰러지면서 도시 77%에 해당하는 지역에 정전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심각한 지역은 병원, 의회, 교회 등 기반 시설의 90%가 붕괴됐다.
최근 몇 년간 대서양에서 비슷한 급의 폭풍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해양온난화가 허리케인 패턴을 바꾸고 있다고 과학계는 보고 있다.
[8] '대기의 강'이 덮친 美 워싱턴
12월 미국 워싱턴주는 수해를 겪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진 폭우로 서부지역 곳곳에 최대 250mm 이상의 비가 쏟아졌고, 그 영향으로 강과 하천이 범람하며 도시와 주거지가 침수됐다.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약 90㎞ 떨어진 벌링턴시에서는 게이지슬로강이 범람해 저지대 거주민 7만8000명이 대피했다.
소셜서비스(SNS)에는 이례적인 수준의 호우로 물난리가 난 도심 모습이 영상과 사진으로 올라왔다. 강변의 한 주택이 물살을 이겨내지 못하고 통째로 강에 떠내려가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폭우의 원인은 '대기의 강'(Atmospheric River)으로,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대량의 수증기를 머금은 대기가 태평양을 건너며, 좁은 지역에 집중적인 비를 쏟아낸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올해만 두 차례 이상 반복됐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 2월에도 미국 북부에 대기의 강이 흐르면서 서쪽에는 폭우, 동쪽에는 폭설이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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