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표시 의무화한 '게임법 개정안' 국회 통과 직전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둘러싸고 게임업계와 게임이용자간의 갈등이 심상찮다. 자율규제를 고집하는 게임사와 확률을 공개하라는 게임이용자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게임산업의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확률표시를 의무화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이하 게임법 개정안)에 대해 이용자들은 환영하는 반면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강경 반대하며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지금껏 확률 공개를 업계 자율에 맡겨뒀더니 확률조작 논란 사태가 끊이질 않는다"며 한 게임사에 대해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확률표시를 의무화하도록 법을 개정해달라고 촉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3만명에 이른다.
이용자들의 이같은 집단행동에도 게임협회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5일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확률형 아이템 표시뿐 아니라 게임법 개정안에 담긴 조항이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로 작용한다"면서 "한국게임산업협회 입장은 변함없다"고 못박았다.
논란이 된 게임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으로, 개정안에는 △등급분류 절차 간소화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화 △해외게임사의 국내대리인 지정 △비영리게임 등급분류면제 △중소게임사 자금지원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여기서 쟁점이 된 부분은 '확률형 아이템 확률표시 의무화' 조항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특정 확률로 해당 아이템을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게임 아이템이다. 이용자가 뽑기 아이템을 구매해서 열면 유용한 무기나 도구 등을 무작위로 얻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이런 아이템의 확률 공개는 게임사 자율에 맡겨졌다. 게임사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을 통해 자율적으로 확률을 공개하면 됐다.
하지만 공개 범위가 매우 작고 게임사 자율에 맡기면서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최근 게임사들의 확률조작 논란이 잇달아 터지면서 게임법 개정안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개정안에는 이전에 없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의를 추가했다. 또 '기존 등급 및 게임물 내용 정보를 표시하여야 한다'는 조항에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및 종류별 공급 확률 정보를 표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러자 한국게임산업협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협회는 지난 15일 "산업진흥보다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항이 다수 추가돼 국내 게임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까 우려된다"며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연구하며 사업자들이 비밀로 관리하는 대표적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협회는 "현재 확률형 아이템은 '변동 확률' 구조로 돼 있어 이 확률이 이용자의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항상 변동되며, 개발자와 사업자도 확률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현재 확률형 아이템은 이용자별로 확률이 달라지도록 설계되고 있어 개발자들도 그 알고리즘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협회의 이런 주장에 게임이용자들은 "이용자들을 개돼지로 안다"며 공분했다.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던 협회가 이제와서 업계 자율을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한 게임 커뮤니티에서 이용자들은 "불신으로 인한 불매운동으로 이어져 결국 한국게임 산업에도 타격이 클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변동확률이라는 말이 곧 조작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투명한 확률 정보 공개가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실제로 최근 메이플스토리는 확률 조작 논란으로 게임이용자들의 격분을 사는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대대적인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메이플스토리 공지가 발단이 됐다. 메이플스토리는 지난 18일 '테스트 서버에서 아이템에 붙는 옵션이 동일한 확률로 부여되도록 수정된다'고 공지했다. 이는 여태까지 아이템 구성 확률이 같지 않았음을 의미하는데, 실제 수정된 테스트 서버에서 원하는 아이템이 쉽게 뽑히자 이용자들은 "그간 넥슨이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우롱했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에 강원기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19일 공식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몰랐다'는 태도로 나오자, 화가 난 이용자들이 불매운동까지 한 것이다. 메이플스토리 관련 커뮤니티에서 한 이용자는 "2년간 캐시 충전에 5억 가까이 썼다"며 캐시 충전 내역을 인증하기도 했다. 이 이용자는 "다시는 메이플에 돈을 안쓰겠다"며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지난 22일까지 456명의 회원이 불매운동에 참여했고, 이 회원들이 1월~2월 두달간 결제한 넥슨 캐시는 10억8212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임 이용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게임사의 해명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집단적 모금을 통해 오늘부터 넥슨 본사 주위를 도는 트럭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게임이용자들이 게임업체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벌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간 이용자들은 게임업계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2011년 셧다운제 때도, 2014년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하는 '신의진법' '손인춘법'이 등장했을 때 강력히 반발하며 이용자들은 업계 편에 섰다. 하지만 확률조작 의혹이 계속되자 "소비자를 기만하는 게임사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용자들은 한 게임 커뮤니티에서 "확률조작 사태를 겪으며 게임업계에 대한 신뢰를 다 잃었다"며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확률 공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게임학회도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학회는 지난 23일 성명서를 통해 자율규제의 한계를 꼬집으며 게임 아이템 확률 정보를 정확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학회는 "아이템 확률 정보의 신뢰성을 둘러싼 게임 이용자의 불신과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라며 "산업계에서 제시한 확률형 아이템 정보가 영업 비밀이라는 논리는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헌 의원도 "이미 자율규제로 공개하고 있는 아이템 획득 확률을 법에 명문화하자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특히 "강원랜드 슬롯머신도 당첨 확률과 환급률을 공개하는 판에 협회와 업계가 끝끝내 거부하고 다른 수단을 통해 법제화를 막는다면 우리 게임 산업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임법 개정안은 조만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박유민 기자 youmeaning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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