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 시추사업 퇴출 목소리...'서부해안해양보호법' 재조명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상에서 발생한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가 선박의 닻이 해저 송유관을 건드리면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닻이 아니더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던 예고된 재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가 일어난 송유관의 소유주 앰플리파이에너지의 마틴 윌셔 최고경영자(CEO)는 4일(현지시간) 선박의 닻이 송유관을 가격한 것이 기름유출의 "뚜렷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이 사고로 지난 1일 밤부터 오렌지카운티 헌팅턴비치 앞바다에서 최소 12만6000갤런(약 57만6962리터)의 원유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송유관은 로스앤젤레스(LA) 남쪽의 롱비치 항구에서 연안의 석유 굴착장치 엘리(Elly)까지 약 27km에 걸쳐 이어진다. 이번 사고로 롱비치 항구에서 남동쪽으로 약 22km 떨어진 헌팅턴비치에서 라구나비치에 이르는 해상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33.7km2 규모의 기름띠가 형성됐다. 또 90여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72만8434m2 면적의 '탤버트 습지'가 완전히 파괴됐다.
환경운동가들은 기름을 뒤집어 쓴 조류들은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주지만 가장 큰 피해는 고래와 해달 등 포유류가 입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표면에 묻은 기름은 닦아낼 수만 있다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되지만 바다에 계속 머물면서 기름에 오염된 먹이를 섭취하는 포유류의 경우 더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종국에는 유독성 화학물질이 바닷물에 녹아들면서 먹이사슬의 기반이 되는 플랑크톤이 직격탄을 맞게 되고, 생태계 전반에 큰 위기가 닥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닻이 문제일 수 있다는 마틴의 이번 성명에 대해 "송유관 관리소홀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송유관의 설계수명은 대개 25년인데 비해 해당 송유관은 벌써 40년 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에너지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주처럼 지진활동이 활발한 곳에서 압력 게이지를 통해 송유관 상황을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면 기름이 눈에 보이기 전에 회사 차원에서 결함을 미리 발견했을 것이라며 송유관 관리실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촉구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기름이 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9년 산타바바라 해안 56km가 기름에 뒤덮인 사고를 계기로 환경오염 반대 시위가 일어나 '환경의 날'(4월 22일)이 제정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이런 움직임들에 힘입어 1980년대 이래 신규 연안 시추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캘리포니아에서 연안 시추 사업을 완전히 퇴출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월 연안 시추 사업을 영구적으로 퇴출하기 위해 관련 법안 '서부해안해양보호법'을 발의한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파인스타인 의원은 4일 성명을 발표해 "캘리포니아 주민 70%가 연안 시추에 반대한 바 있다"며 "이번 사고로 법안 통과의 필요성이 재확인됐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지역경제는 관광과 휴양 낚시, 상업용 어획 등에 의존하기 때문에 깨끗한 해안 관리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생물다양성센터(CBD)의 해양 프로그램 담당자 사카시타 미요코는 연안 시추 플랫폼과 송유관을 '시한폭탄'에 비유하며 "석유산업 업체들은 안전한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형사고발과 범칙금이 이어진다 해도 기름은 계속 새어나갈 것"이라며 "유일한 해결책은 업장 폐쇄에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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