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도 가세하자 "안보에 구멍나면 어쩌나' 우려
유럽연합(EU)이 방위산업에 대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을 강화하자, 투자자들이 EU 방산업체들을 외면하면서 EU 안보에 구멍이 뚫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EU가 최근 녹색산업 분류체계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논의를 '소셜 택소노미'(Social Taxonomy) 논의로 확장시키면서 방산업체가 담배·도박 등을 다루는 산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기업'으로 분류됐고, 이는 안보상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지난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EU는 탄소중립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속가능금융'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지속가능금융 재원 조달책의 일환으로 EU와 국제표준화기구(ISO)는 금융권과 투자자가 금융지원 대상을 구분할 수 있도록 ESG 분류체계인 '택소노미'(Taxonomy)를 마련중이다.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못하면 자금조달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기업들에 구속력 있는 지침이 될 전망이다.
국제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들(SGR)에 따르면 각국 방산업체들은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6%를 차지한다. 또 SGR은 교토의정서 체결 당시 방산업체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 각국 정부가 자국 방산업체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을 보고할 의무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매년 부패지수를 발표하는 국제투명성기구(TI) 조사결과, 전세계 상위 134개 방산업체 가운데 12%만이 부패방지에 힘쓰고 있었다.
이에 EU는 지난 7월 소셜 택소노미 초안에서 방산업체를 담배·도박 산업과 함께 사회에 위해를 가하는 기업으로 분류했다. 금융권도 이같은 움직임에 합세했다. 노르웨이 최대 연기금 운용사 KLP는 핵무장과 연관이 있는 영국 방산업체 밥콕과 롤스로이스 등에 대한 1억4700만달러(약 1733억원) 규모의 주식을 매각했고, 독일 주립은행 바이에른LB는 매출액의 20% 이상이 방산 관련 수익인 업체들과 거래를 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럽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협회(ASD)는 반발하고 나섰다. 새로운 제도가 방위산업의 재원 확보를 위협하고, 나아가 EU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유럽 방산업체들의 시가총액도 떨어지고 있어 ASD는 유럽 집행위원회(EC)에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ASD 협회장 알레산드로 프로푸모(Alessandro Profumo)는 최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이 글로벌 차원의 여러 위협들에 대응하기 위해 강한 방위산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 "EU의 다른 정책들과 지속가능금융 계획이 일관되어야 한다"며 "국방은 지속가능성의 일부이다. 안보 없이는 지속가능성도 없다"고 밝혔다.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방위산업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롤스로이스는 KLP의 투자철회 조처에 대해 "영국왕립해군과는 원자력발전소의 설계·건설·정비에 관한 것과 핵잠수함의 추진 시스템 건으로 연관된 것이지 다른 무기 제조와 관련된 것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 방산업체 탈레스의 베르트랑 델케르(Bertrand Delcaire) IR(재무홍보)부서 대표는 "우리가 제공하는 솔루션 및 제품군 가운데 사이버 보안은 긍정적인 ESG 활동으로 분류되고, 전파탐지기, 수중음파탐지기, 군용통신시스템이 부정적인 ESG 활동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미국 증권연구소 버티컬 리서치 파트너스(Vertical Research Partners)의 분석가 로버트 스탤라드(Robert Stallard)는 "방산업체 분야 자체가 유럽 투자자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업체들이 아마존 열대우림에 나무를 심어도 리스트는 그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한꺼번에 모든 방위산업 관련주를 매각하기보다 세부적으로 기준을 조정해 중간지대를 찾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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