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이렇게 똑똑하다고?...얼굴과 숫자까지 식별

김나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7-19 10: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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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까지 지녔다...PTSD 증상도 발현돼
라스 치트카 교수 "지각있는 존재로 확신"


벌은 사람 얼굴을 인식하고 숫자까지 식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했다.

영국 퀸메리대학교 감각행동생태학 라스 치트카(Lars Chittka) 교수는 19일 발간하는 신작 '벌의 마음'(The Mind of a Bee)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30년간 꿀벌 연구에 매진해온 치트카 교수는 꿀벌의 감각 및 인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다.

치트카 교수에 따르면 벌은 매우 지능이 높다. 암컷 일벌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벌은 감정을 지녔으며 계획과 상상이 가능하고 자신을 다른 벌과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치트카 교수는 저서를 통해 벌은 인간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간단한 도구 사용법과 추상적인 개념까지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치트카 교수는 "벌들은 감정과 비슷한 상태를 느낄 수 있다"며 "벌들에게 어느 정도의 의식적 자각이 있다는 암시적 증거가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벌이 식물의 수분을 도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유용한 존재임과 동시에 지각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벌의 생존을 보장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치트카 교수는 벌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도록 훈련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벌에게 흑백으로 된 사람의 얼굴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고, 그 가운데 정해진 하나를 고르면 설탕을 보상받는다는 사실이 학습되도록 설계됐다. 이후 실험에 참여한 벌들은 실제로 다양한 얼굴 사진 가운데 연구자들이 의도했던 얼굴을 찾아냈다. 그는 "12~24회의 훈련만 거치면 벌들이 이같은 얼굴인식 과제를 능숙히 수행한다"고 말했다.

또 벌들은 숫자도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개의 똑같은 지형지물을 지나 먹이공급원으로 날아가도록 훈련된 실험에서 연구진들은 벌이 목표지점으로 안정적으로 날아간 것을 확인한 뒤 동일한 거리 내 지형지물 수를 늘리거나 줄였다. 그 결과 지형지물 수가 늘어나 서로 가까이 붙어있게 됐을 때 벌은 이전보다 더 일찍 착륙하는 경향이 있었고, 반대로 지형지물이 더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더 늦게 착륙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벌들은 특정 지형지물을 식별하지 못하고 그 개수를 식별하며, 이를 인식해 자신의 이동거리 및 착륙지점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벌들은 사물이 어떻게 보이거나 느껴질지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어두워서 형체가 보이지 않는 구체도 시각적으로 식별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같다' 또는 '다르다'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까지 이해했다.

일부 벌은 다른 벌보다 더 강한 호기심과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치트카 교수는 "집단 혹은 실험한 다른 모든 개체보다 수행 능력이 뛰어난 '천재 벌'을 발견했다"며 "군체 내에서 한 개체만 훈련시켜도 그 기술이 모든 벌에게 빠르게 퍼진다"고 밝혔다. 벌들은 다른 벌이 성공적으로 작업하는 과정을 볼 때 학습이 가장 잘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치트카 교수가 의도적으로 군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양식을 '시범벌'에게 훈련시키자, '관찰벌'은 단순히 시범개체를 모방하지 않고 과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술을 향상시켰다. 이는 벌이 행동의 바람직한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도'나 '인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벌의 머릿속에 '생각의 형태'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시도가 아니라 '원하는 결과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 모델링이 벌들의 사고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게 치트카 교수의 설명이다.

치트카 교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벌에게 지적능력과 더불어 감정의 유무를 실험했다. 해당 실험에서 벌은 꽃에 착륙했을 때 모형 게거미(crab spider)의 공격을 받았다. 이후 벌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전반적으로 꽃에 내려앉길 매우 주저하게 됐고, 착륙 전 모든 꽃을 광범위하게 검사했다. 그리고 꽃에 거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도 착륙하기를 거부했다.

벌들은 공격을 받은지 며칠이 지난 후에도 이런 불안행동을 계속했고, 때로는 유령을 보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치트카 교수는 "벌들은 긴장상태 및 포식위협 없이 완벽하게 좋은 꽃조차 거부하는 기이한 심리적 효과를 보여주었다"며 "이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과 동일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험을 뒤집어 벌들에게 약간의 먹이를 주고 모호한 자극, 가령 벌들이 착지할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꽃에 어떻게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보상을 주게 되면 벌들이 보다 거리낌 없이 모호한 자극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이같은 연구결과를 두고 동물지각에 관한 프로젝트를 이끄는 조나단 버치(Jonathan Birch)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박사는 "꿀벌이 지각능력을 지녔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지만, 곤충의 지각 및 감정능력에 관한 연구는 최근에서야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버치 박사에 따르면 벌이 보여주는 정교한 인지수준은 감정을 느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는 "지각은 감정 능력과 연관돼 있다"며 "이 연구는 벌에게 이러한 감정과 같은 상태가 있다는 증거"라고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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