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입자, 휴면상태 돌연변이 폐세포를 암으로 전환
자동차 매연과 폐암과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결과는 비흡연자가 어떻게 폐암이 발병하는지 그 원인을 규명한 것이다.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는 자동차 매연의 미세입자가 휴면상태인 돌연변이 폐 세포를 암세포로 변이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대기오염이 비흡연자에게 어떻게 폐암을 유발하는 것인지에 대한 원인을 규명한 것이다.
찰스 스완튼(Charles Swanton) 프랜시스크릭연구소 소속 교수이자 영국암연구소(Cancer Research UK) 수석 임상의는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전세계적으로 담배연기에 든 독성화학물질보다 대기오염에 노출된 사람의 수가 훨씬 많다"며 "대기오염으로 인한 폐암 위험은 흡연보다 낮지만 우리 모두가 숨쉬기를 통제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흡연은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영국에서는 실외 공기오염으로 인한 폐암 발병률이 약 10건 가운데 1건꼴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대기오염이 폐암과 전혀 관련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는 약 6000명의 사람들이 매년 폐암으로 사망한다. 2019년 미세먼지(PM2.5)에 노출된 폐암사망자는 전세계 약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오염이 암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근거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흡연이나 햇빛노출이 직접적으로 폐암과 피부암으로 이어지는 DNA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과 달리 대기오염은 이런 유전적 변화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대기오염물질이 EGFR이라는 돌연변이 유전자와 만나면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EGFR를 보유한 쥐가 오염물질 입자에 노출됐을 때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증가했다는 것이다. 오염물질이 가스레인지의 점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건강한 폐 조직에서도 볼 수 있는 이 돌연변이 유전자는 일생동안 DNA에 축적돼있는 일종의 작은 오류로, 보통 무해한 휴면 상태로 있다. 그러나 이 유전자는 PM2.5 입자에 노출되면 암으로 변할 수 있다. 연구팀이 환자 생체검사 때 채취한 건강한 폐 조직샘플을 분석한 결과 정상 폐 샘플 5개 중 1개 꼴로 EGFR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이는 거의 모든 사람이 폐암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돌연변이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누구나 대기오염에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 발병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연구팀은 암 발병 위험성이 PM2.5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방출된 염증성 단백질 인터루킨-1 베타(IL1B)에 의해 매개된다고 밝혔다. 쥐에게 단백질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오염물질 취약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발견은 2019년 스위스 제약기업 노바티스(Novartis)가 발표한 심장질환약물 임상실험 결과 IL1B 억제제를 복용한 피험자들의 폐암 발병률이 현저히 감소한 것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스완튼 교수는 "이번 연구가 새로운 폐암 예방약을 개발할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스완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오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종"이라며 "대기오염이 폐암과 관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의 메커니즘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간과돼 왔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인간의 건강을 다루려면 기후건강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며 기후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3년 대기오염으로 9살 딸 엘라를 잃은 로사문드 키시-데브라(Rosamund Kissi-Debrah)는 오염과 건강에 대한 '통합된 사고'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오염으로 매년 900만명이 조기사망하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공기를 맑게 하지 않는 한 더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릴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토니 목(Tony Mok) 홍콩중문대학 교수는 이번 연구를 두고 "오염과 폐암이 연관돼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지만 이제 이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졌다"며 대기오염 및 탄소배출의 원인이 되는 화석연료 소비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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