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까지 가세..."양봉인들 스스로 허들 높여야"
올초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집단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양봉농가 피해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본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고, 꿀벌을 살리기 위한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기사는 [꿀벌을 살리자 4편: 꿀벌이 감소하면...우리 식탁이 위험하다]에서 이어집니다>
기후변화로 국내 양봉산업의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사양꿀'이 기후변화와 맞물려 피해를 가중시키는 핵심적인 장애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기후재앙에 따른 식량위기가 대두되면서 국제적으로 꿀벌의 화분매개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인구의 고령화와 1인가구 증가로 고품질 기능식품 요구가 높아지면서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봉독 등 양봉산물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로열젤리 수입물량은 2016년 2만8000kg에서 2021년 4만3000kg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양봉산물의 생산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국내 밀원자원 면적은 1980년 47만8000㏊에서 2020년 14만6000㏊로 반세기도 안돼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꽃이 피는 기간도 들쭉날쭉해지고, 점점 짧아지면서 양봉업자들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개화시기를 따라 채밀할 수 있는 기간도 2007년 30일에서 2020년엔 16일로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꿀벌 입장에서는 단순히 먹이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밀원자원 면적과 개화기간이 감소하면 병해충이 창궐한다. 개화시기에 따라 이동양봉을 하는 양봉업자들은 주로 밀원자원이 풍부한 충남(50.6%)과 경남(17.8%)에 모여든다. 이미 포화된 활동반경에 밀원자원과 개화기간까지 줄어들면 꿀벌들은 더욱 밀집된 환경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기생충과 감염병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형성한다. 게다가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화 될수록 동남아시아에서 넘어온 꿀벌의 천적 등검은말벌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실제로 2011년 벌집당 13.8kg에 달했던 벌꿀 생산량은 2015년 12.1kg, 2021년 5.4kg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다. 이에 따라 양봉산업이 고사하기 전에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꿀벌에게 꽃꿀이 아닌 설탕물을 먹여얻은 '사양꿀' 때문에 산업 전반의 대응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기후변화에 사양꿀 '불난데 기름붓기'
꿀벌이 당분을 먹었다 뱉기를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벌꿀은 크게 '천연꿀'과 '사양꿀'로 나뉜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천연꿀에는 치아를 썩게 하고 당뇨병과 비만을 일으키는 '자당'(sucrose)은 전혀 없고, 심혈관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맥아당도 없다. 또 천연꿀은 설탕보다 흡수 속도가 느린 과당, 몸에 좋은 포도당과 미네랄, 아미노산, 비타민 등이 풍부하다. 반면 사양꿀에는 자당과 맥아당이 검출되는 등 천연꿀과 차이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사양꿀 판매는 불법이다. 천연꿀과 사양꿀을 구분하는 법은 탄소동위원소측정법을 이용하는 방법뿐이다. 구분이 어려운 점을 이용해 사양꿀을 천연꿀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업자들이 많다. 이는 꿀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떨어뜨려 결국 양봉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 또 사양꿀을 먹고 자란 꿀벌들은 면역력 저하와 영양부족으로 기후변화와 기생충 공격에도 취약하다. 이에 세계양봉연맹(Apimondia)는 양봉산업의 가장 큰 도전과제로 '기후변화'와 '사양꿀'을 꼽기도 했다.
이미 해외에서 "꿀벌보다 양심업자가 멸종위기"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국내에서도 "꿀은 부모 자식 간에도 속여 판다"고 말할 정도로 사양꿀의 둔갑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지난 2016년 사양꿀 판매를 합법화했다. 우리나라는 밀원의 종류와 개화시기가 5~6월에 편중돼 있는 특수한 환경이고, 꿀을 주식으로 삼지 않는 한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는 이유였다. 여기에 양봉농가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차라리 사양꿀 판매를 양지로 끌어올려 천연꿀과 사양꿀을 확실히 구분하도록 하고,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자는 취지였다.
문제는 국내 벌꿀 유통구조에서는 품질과 안전성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국내산 벌꿀의 80%가량이 직거래 형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다. 게다가 정부가 사양꿀을 장려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2014년 대비 2018년 천연꿀 생산량은 74.8% 감소한 반면 사양꿀 생산량은 34.1% 증가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양봉업자들은 천연꿀을 다 딴 뒤 꽃이 피지 않는 시기에 사양꿀까지 만들어 팔았다. 꿀벌들이 혹사를 당한 것이다.
결국 양봉시장에 사양꿀이 적극 도입되면서 한정된 밀원에 비해 사육규모가 비대해지고 말았다. 현재 국내 봉군밀도는 1제곱킬로미터(㎢) 당 15.3봉군으로 세계 1위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꿀벌은 천연꿀과 사양꿀을 생산하기 위해 2배로 혹사당하고 있다. 6개월까지도 살 수 있는 꿀벌의 수명은 15일~38일로 짧아졌다. 더구나 꽃꿀을 섭취하지 못한 꿀벌들은 면역력과 영양상태가 계속 악화됐다. 매년 20% 내외로 감소하던 봉군수는 올해 집단폐사 등으로 33%나 급감했다.
◇ 변화하는 정책·환경..."양봉인들도 바뀌어야"
양봉업자들은 꿀벌의 공익적 가치를 강조하며 정부에 밀원수 식재와 재해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양봉업자 역시 밀원이라는 공공재를 활용하고 있으면서 양봉인들 스스로 밀원을 식재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꿀벌 개체수가 너무 많아도 생태계 균형을 깨뜨리고, 화분매개 기능이 오히려 감소하면서 공익적 가치에 반하게 된다.
한상미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장은 "나무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이같은 추세라면 꿀벌들의 밀도는 관리되지 않은 채 또 늘어날 것"이라며 "꿀벌이 늘어나면 말벌들이 많아지고, 식물들도 꿀을 맺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생태계 전반이 균형을 이뤄야 꿀벌에게도 좋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걸 꿀벌에만 맞출 수는 없고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진흥청은 이같은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 오는 2023년부터 8년간 '꿀벌 보호를 위한 밀원수종 개발 및 생태계 보전'이라는 다부처 연구개발 사업을 주관한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밀원공급이 줄어들면서 양봉생태과를 구심점으로 산림청, 농림축산검역본부, 환경부 등이 나서 꿀벌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꿀벌의 공익적 가치를 단순한 농업에서의 화분매개 가치를 넘어 생태계 전반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정책과 연구부문에서 보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양봉인 스스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자정능력을 강화하고 적응하려는 노력도 따라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뉴질랜드에서 마누카꿀 양봉업자로 등록하려면 특정 봉군 규모에 걸맞는 밀원 채집 장소가 확보됐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단순 제출에 그치지 않고 외부에서 봉군과 밀원 규모를 실측한다. 실측은 정부가 아닌 뉴질랜드 양봉협회 차원에서 실시한다.
이렇게 양봉업자 스스로 허들을 높여 적정량의 밀원을 확보하게 되면 밀원수를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밀원의 소유권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는 일을 방지할 수 있고, 사양꿀에 대한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한상미 과장은 "분명한 것은 올해 꿀벌들의 집단 폐사가 전보다 더 심해졌고, 앞으로 더 심해질 여지들이 있다는 점"이라며 "앞으로 환경이 좋아질 여지가 없기 때문에 양봉인들 스스로 어떤 전환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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