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프라다도 Z세대 겨냥 제품 출시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관심이 많이 떨어졌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럭셔리 브랜드의 '메타버스' 공략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패션 브랜드들은 왜 메타버스 시장을 노리는 걸까?
지난 2021년 구찌는 세계 최대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Roblox)에 한정판 가방을 출시했었다. 출시 가격은 로블록스 가상화폐 가치로 5달러(약 6500원) 정도였으나 희소성이 커지면서 재판매 가격이 4115달러(약 543만원)까지 치솟아 화제가 됐다. 실제로 만질수도 없거니와 게임 속에서나 자랑할 수 있는 제품에 500만원이 넘는 돈을 소비했다는 얘기다.
영국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도 로블록스에서 특별한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제작이 불가능한 구름, 물, 나뭇잎 등을 소재로 한 가방을 출시하거나 실제 세계에서 판매중인 제품을 훨씬 저렴하게 팔기도 했다. 실제로 1500파운드(약 235만원)에 판매중이던 제품과 같은 모델명의 제품이 메타버스에서 8.99파운드(약 1만4000원)에 팔렸다.
이밖에도 발렌시아가, 프라다, 톰브라운 등이 10달러도 안 되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메타버스용 제품을 내놨다. 컨설팅업체 베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절반 이상이 메타버스나 대체불가토큰(NFT)을 실험하고 있거나 곧 출시할 예정인 것으로 분석됐다.
구찌의 경우 로블록스에 가상 매장과 정원, 카페 등으로 구성된 '구찌타운'을 열어 세계 최초로 가상세계 속 부동산을 영구 취득한 브랜드가 됐다.
이처럼 고가 전략으로 전 세계 명품시장을 호령해 온 럭셔리 브랜드가 메타버스 시장에선 '저가 전략'을 펼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첫번째 이유는 비싼 가격 탓에 떨어진 접근성이다. 하나 갖는 것조차 어려운 고가 브랜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세대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개인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명품 브랜드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해소하고자 저렴한 가격으로 잠재 고객인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를 공략하겠다는 셈이다.
특히 Z세대는 메타버스와 디지털 아바타에 친숙해 이같은 공략이 잘 맞아 떨어졌다. 실제로 로블록스가 지난해 미국 Z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명 중 3명꼴로 "디지털 패션에 기꺼이 돈을 쓸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메타버스 내에서 명품 브랜드를 경험해본다면 훗날 구매력이 생겼을 때 실제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계산이다.
두번째 이유는 메타버스 플랫폼과 소비자를 일종의 시험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가상 매장에 내놓는 제품은 디자인이나 출시 비용을 제외하면 생산·유통 과정에서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업체 입장에서는 디자인을 미리 가상 매장에 출시해 보고, 이용자 반응에 따라 이를 실물 시장에도 출시하는 식으로 플랫폼을 활용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청소년 패션 브랜드 '포에버21'은 기존 로블록스에 출시했던 가상 제품인 핑크색 비니를 실제 제품으로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런치메트릭스 최고 마케팅 책임자 앨리슨 브링은 "현실 세계에서 구찌 핸드백을 살 수 없지만 메타버스에서는 5달러로 살 수 있다"며 "이는 소비자와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관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메타버스 시장은 고급 패션 브랜드에게 있어 디자인을 먼저 선보일 수 있는 '간편한 패션쇼'이자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미국 매체 JP모건은 2030년이면 메타버스나 NFT를 통한 거래 비중이 전체 사치품 시장 매출의 1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일각에선 "메타버스에서 저렴하게 보급되는 상품이 명품 전체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며 명품 브랜드들의 메타버스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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