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질환·도시오염물질 추적도 가능
꿀벌로 도시의 미생물 분포를 추적하고, 이 정보를 공중보건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뉴욕 탠던 이공과대학교 엘리자베스 에나프 조교수 연구팀은 벌꿀, 꿀벌의 신체, 벌집 바닥에 쌓인 찌꺼기를 통해 도시 미생물 생태계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국제연합(UN)은 도시 거주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2050년에 이르면 전세계 인구의 68%가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박테리아, 곰팡이류, 바이러스 등 도시 내 미생물 분포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생물은 동식물과 상호작용하면서 도시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고, 토양·대기·수질 등 비생물적 환경에 의해서도 분포가 달라지므로 시민들의 건강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기 때문이다.
다만 이같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연구팀은 벌집당 개체수가 최대 8만여마리까지 늘어나고, 각각의 개체가 벌집을 중심으로 꽃꿀과 꽃가루를 채취하기 위해 반경 1.5km를 오가며 다양한 미생물 정보를 축적하는 꿀벌을 연구에 활용하기로 했다.
연구팀은 뉴욕, 도쿄, 베네치아, 멜버른, 시드니 등 전세계 5개 도시에서 시료를 채취했다. 꿀벌은 비행중 다양한 생물 및 비생물적 요소와 상호작용하고, 그 흔적을 벌집으로 옮겨온다. 각각의 도시에서 모은 시료는 꿀벌, 벌꿀, 벌집 내부 찌꺼기, 벌집 파편을 포함한다.
연구팀이 이 시료들을 분석한 결과, 미생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각각의 도시마다 서로 다른 '생태적 지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례로 멜버른에서 채취한 시료에서는 유칼립투스 나무의 DNA가 검출된 반면, 베네치아에서는 부패한 목재에서 발견되는 진균과 대추야자 DNA가 검출됐다.
도쿄에서는 연꽃과 야생대두 DNA 그리고 간장 발효 효소가 검출됐다. 이밖에도 도쿄에서는 고양이 벼룩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리케치아 병원체가 검출됐다.
연구팀은 이처럼 도시 벌집 활용기술을 발전시키면 바이러스성 질환이나 병원체를 추적해 공중보건을 관리하고, 도시공해를 측정하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ESG경영 차원에서 꿀벌 60만마리를 관리하는 람보르기니는 벌들이 모아온 꽃꿀, 꽃가루, 물을 수집해 살충제, 중금속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도심내 오염물질을 감지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표본이 적어 더 많은 정보가 축적될 필요가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벌집 시료는 베네치아 1개, 멜버른 2개, 시드니 2개, 뉴욕 3개, 도쿄 12개 수준으로 표본 수가 저조하다. 이번에 검출된 미생물 정보가 도시 전반의 미생물 환경의 단면이라기보다 각각의 벌집에 대한 특성이 더 많이 반영된 정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나프 조교수는 "병원체 추적에 곧장 이같은 방식을 적용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면서 "사람에게 이로운 미생물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번 연구 목적은 병원균 감시에 있다기 보다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미생물 생태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아 우리 입장에서 큰 의미가 없는 미생물일지라도 우리와 함께 도시에 사는 다른 생물종에게는 매우 중요한 미생물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결과는 3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환경 미생물군집'(Environmental Microbiome)에 온라인으로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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