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 갈대밭을 지날 때면 한 친구와 그의 형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래전 친구 형이 사업을 하다가 파산했는데, 이후 그 형은 1년 이상 퇴촌 인근의 갈대숲에서 매일 낚시를 했다. 여름철에는 형과 동생이 아예 텐트를 치고 살았다. 그 형은 낚시대를 내리고 밤낮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낚시는 그에게 어떤 행위였을까? 단지 시간을 죽이는 소일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 형은 낚시를 접고 사회로 복귀했다. 낚시 행위가 그를 구원했다.
물고기를 잡아올리는 순간의 희열은 수렵채집으로 살았던 인류의 기억 속에 내재된 본능적인 기쁨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낚시를 즐긴다. 하지만 낚시는 단지 레저나 취미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이나 결정적인 순간, 운과 우연 등의 인생교훈으로 비유되기도 하고, 자기 성찰과 고요한 명상 행위로 묘사되기도 한다. 문학 작품에서는 낚시가 보다 깊고 풍부한 상징이나 은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 낚시로부터 추방당한 한스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초반부에 주인공 한스가 낚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나는 소설의 서사보다 낚시 행위를 거듭 언급하는 헤세의 의도가 궁금했다. 학교 성적이 뛰어난 한스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당시 엘리트학교인 신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교장 및 마을 사람들은 공공연한 기대감을 내비친다. 그는 가문의 영광과 마을의 명예를 빛내는 깃발을 든 기수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자신을 짓누르는 그런 힘들에 질식감을 느낀다. 어느 날 그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거기서 보낸 시간들을 회상한다.
"예전에 그는 반나절, 혹은 하루 온종일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하고, 노도 젖고 낚시도 했다. 아, 낚시질! 이제 그는 낚시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지난해에는 시험 준비 때문에 낚시질이 금지되었다. 낚시질! 그것은 오랜 학창시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추억거리였다."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한스는 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한다. "다시 낚시도 하러 갈 수 있었다." 그는 낚시대를 만들고 낚시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는 낚싯줄을 버들개지 너머로 물에 드리웠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푸른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는 물고기처럼 유유히 헤엄치기도 한다. 때로는 정원에 있는 붉은 잣나무 그늘 아래 누워있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날아다니는 나비를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한스가 누리는 자유와 여유는 이내 곧 박탈당한다. 마을목사와 그리스어를 공부해야 했고, 교장의 강요로 대수와 기하학을 매일 배워야 했다. 입학 후의 공부를 위해 선행학습이 강요되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개인 교사는 한스의 낚시와 수영 시간을 과외 시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낚시나 자유시간이 허용되었지만 한스는 매일 밤늦게까지 숙제를 해야 했다.
"한스는 두세 차례 낚시하러 갔다. 하지만 머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우두커니 강둑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한스는 강에서 낚시를 할 때만이 행복했고, 거기서 자유와 기쁨을 만끽했다. 낚시는 한스가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짧은 순간, 자연과 하나가 되는 자리를 지칭하는 것일 게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메커니즘은 한스의 낚시 행위에서 격하게 충돌한다. 그는 삶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신음한다. 낚시를 하며 안식하고 즐거워하던 한스의 평화가 오래 가지 못했듯이 소설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마침내 한스는 그가 사랑하던 강에서 죽은 물고기처럼 떠오른다. 한 번 생각해 보자. 한스는 어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공인물에 불과할까? 도시생활과 온갖 일들에 내몰려 강을 잃어버리고 낚시터로부터 멀어진 우리들이 오늘날의 한스가 아닌가. 우리 모두는 낚시터로부터 추방당했다. 아니 낚시하는 법조차 모른다.
◇ 낚싯줄을 내리는 숭고한 자리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도 낚시가 등장한다. 울프는 낚싯줄을 내리는 행위를 보다 상징적이고 심오하게 다룬다.
"그래서 저는 주제가 사소하든 거창하든 절대 망설이지 말고 온갖 종류의 책을 써달라고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어요. 여러분이 무슨 수를 쓰든 충분한 돈을 스스로 마련해서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고, 세상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책을 읽으며 몽상을 하고, 길모퉁이를 거닐며 생각의 낚싯줄을 강 속 깊이 드리울 수 있기를 바라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울프
여성작가가 거의 없던 시대에 그녀는 글을 썼고, 여성들에게 망설이지 말고 여행도 하고 글을 쓰는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낚싯줄을 내리라고 말한다. 그녀는 여성의 독립성과 자기 탐구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한다. 울프에게 있어 낚싯줄을 내리는 행위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한가한 행위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치열한 행위다. 그 작업은 삶의 제약과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숭고한 행위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그녀는 책도 읽고 고요히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생각의 낚싯줄을 강물 속으로 드리운다. 물그림자와 수초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며,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묵직한 생각 덩어리가 줄 끝에 걸려들 때, 신중하게 줄을 끌어당겨 물 밖으로 끄집어낸다.
"강과 물 속 생명체들은 현명한 사람들이 사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버린다." <완벽한 낚시꾼 The Compleat Angler>, 아이작 월턴
울프의 낚시는 강이나 호수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에서 이루어진다. 울프의 낚시 행위는 그녀의 글쓰기 과정과도 닮있다. 생각은 물속의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떠다니고, 울프는 그것을 붙잡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생각의 물고기가 서서히 움직이고 단어의 지느러미가 파닥거리면 그녀는 재빨리 그것을 낚아내어 글로 표현한다. 그것이 울프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방식이자, 그녀가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방법이었다.
한스의 낚시터와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전혀 다른 공간일까? 한스는 사회적 압박과 강요된 노동을 벗어나 홀로 낚시하고 사색도 하고 물놀이도 즐기는 자기만의 놀이터를 꿈꾸었다. 울프는 여성들이 독자적인 사유와 창작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열어젖히기 위해 기존의 가족 규범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작할 수 있는 독거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스의 강과 울프의 방은 홀로 있는 공간이자 사유의 자리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한스의 시간과 울프의 시간은 신체와 마음이 자유롭게 흐르는 시간이며, 둘의 자리는 정신적 자유가 있는 곳, 카야가 숨어 책을 읽던 '가재가 노래하는 곳'과도 같다.
강물에 떠내려간 한스는 이렇게 외쳤으리라. '나에게 강을 돌려다오, 내 낚시대를 되돌려다오.' 울프는 고요히 호소한다. '자기만의 방을 만드세요, 거기서 생각의 낚싯줄을 내리세요.' 낚시터로부터 추방당한 자신의 실존에 진정 분노하는 이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망설임 없이 자신만의 시공간과 낚싯줄을 되찾기 위해 삶의 지도를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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