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상] 늦기전에 자신의 낚싯줄을 내리자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08-01 11:16:52
  • -
  • +
  • 인쇄


양수리 갈대밭을 지날 때면 한 친구와 그의 형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래전 친구 형이 사업을 하다가 파산했는데, 이후 그 형은 1년 이상 퇴촌 인근의 갈대숲에서 매일 낚시를 했다. 여름철에는 형과 동생이 아예 텐트를 치고 살았다. 그 형은 낚시대를 내리고 밤낮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낚시는 그에게 어떤 행위였을까? 단지 시간을 죽이는 소일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 형은 낚시를 접고 사회로 복귀했다. 낚시 행위가 그를 구원했다.

물고기를 잡아올리는 순간의 희열은 수렵채집으로 살았던 인류의 기억 속에 내재된 본능적인 기쁨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낚시를 즐긴다. 하지만 낚시는 단지 레저나 취미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이나 결정적인 순간, 운과 우연 등의 인생교훈으로 비유되기도 하고, 자기 성찰과 고요한 명상 행위로 묘사되기도 한다. 문학 작품에서는 낚시가 보다 깊고 풍부한 상징이나 은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 낚시로부터 추방당한 한스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초반부에 주인공 한스가 낚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나는 소설의 서사보다 낚시 행위를 거듭 언급하는 헤세의 의도가 궁금했다. 학교 성적이 뛰어난 한스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당시 엘리트학교인 신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교장 및 마을 사람들은 공공연한 기대감을 내비친다. 그는 가문의 영광과 마을의 명예를 빛내는 깃발을 든 기수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자신을 짓누르는 그런 힘들에 질식감을 느낀다. 어느 날 그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거기서 보낸 시간들을 회상한다.

"예전에 그는 반나절, 혹은 하루 온종일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하고, 노도 젖고 낚시도 했다. 아, 낚시질! 이제 그는 낚시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지난해에는 시험 준비 때문에 낚시질이 금지되었다. 낚시질! 그것은 오랜 학창시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추억거리였다."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한스는 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한다. "다시 낚시도 하러 갈 수 있었다." 그는 낚시대를 만들고 낚시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는 낚싯줄을 버들개지 너머로 물에 드리웠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푸른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는 물고기처럼 유유히 헤엄치기도 한다. 때로는 정원에 있는 붉은 잣나무 그늘 아래 누워있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날아다니는 나비를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한스가 누리는 자유와 여유는 이내 곧 박탈당한다. 마을목사와 그리스어를 공부해야 했고, 교장의 강요로 대수와 기하학을 매일 배워야 했다. 입학 후의 공부를 위해 선행학습이 강요되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개인 교사는 한스의 낚시와 수영 시간을 과외 시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낚시나 자유시간이 허용되었지만 한스는 매일 밤늦게까지 숙제를 해야 했다.

"한스는 두세 차례 낚시하러 갔다. 하지만 머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우두커니 강둑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한스는 강에서 낚시를 할 때만이 행복했고, 거기서 자유와 기쁨을 만끽했다. 낚시는 한스가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짧은 순간, 자연과 하나가 되는 자리를 지칭하는 것일 게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메커니즘은 한스의 낚시 행위에서 격하게 충돌한다. 그는 삶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신음한다. 낚시를 하며 안식하고 즐거워하던 한스의 평화가 오래 가지 못했듯이 소설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마침내 한스는 그가 사랑하던 강에서 죽은 물고기처럼 떠오른다. 한 번 생각해 보자. 한스는 어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공인물에 불과할까? 도시생활과 온갖 일들에 내몰려 강을 잃어버리고 낚시터로부터 멀어진 우리들이 오늘날의 한스가 아닌가. 우리 모두는 낚시터로부터 추방당했다. 아니 낚시하는 법조차 모른다.

◇ 낚싯줄을 내리는 숭고한 자리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도 낚시가 등장한다. 울프는 낚싯줄을 내리는 행위를 보다 상징적이고 심오하게 다룬다.

"그래서 저는 주제가 사소하든 거창하든 절대 망설이지 말고 온갖 종류의 책을 써달라고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어요. 여러분이 무슨 수를 쓰든 충분한 돈을 스스로 마련해서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고, 세상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책을 읽으며 몽상을 하고, 길모퉁이를 거닐며 생각의 낚싯줄을 강 속 깊이 드리울 수 있기를 바라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울프

여성작가가 거의 없던 시대에 그녀는 글을 썼고, 여성들에게 망설이지 말고 여행도 하고 글을 쓰는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낚싯줄을 내리라고 말한다. 그녀는 여성의 독립성과 자기 탐구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한다. 울프에게 있어 낚싯줄을 내리는 행위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한가한 행위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치열한 행위다. 그 작업은 삶의 제약과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숭고한 행위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그녀는 책도 읽고 고요히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생각의 낚싯줄을 강물 속으로 드리운다. 물그림자와 수초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며,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묵직한 생각 덩어리가 줄 끝에 걸려들 때, 신중하게 줄을 끌어당겨 물 밖으로 끄집어낸다.

"강과 물 속 생명체들은 현명한 사람들이 사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버린다." <완벽한 낚시꾼 The Compleat Angler>, 아이작 월턴

울프의 낚시는 강이나 호수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에서 이루어진다. 울프의 낚시 행위는 그녀의 글쓰기 과정과도 닮있다. 생각은 물속의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떠다니고, 울프는 그것을 붙잡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생각의 물고기가 서서히 움직이고 단어의 지느러미가 파닥거리면 그녀는 재빨리 그것을 낚아내어 글로 표현한다. 그것이 울프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방식이자, 그녀가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방법이었다.

한스의 낚시터와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전혀 다른 공간일까? 한스는 사회적 압박과 강요된 노동을 벗어나 홀로 낚시하고 사색도 하고 물놀이도 즐기는 자기만의 놀이터를 꿈꾸었다. 울프는 여성들이 독자적인 사유와 창작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열어젖히기 위해 기존의 가족 규범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작할 수 있는 독거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스의 강과 울프의 방은 홀로 있는 공간이자 사유의 자리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한스의 시간과 울프의 시간은 신체와 마음이 자유롭게 흐르는 시간이며, 둘의 자리는 정신적 자유가 있는 곳, 카야가 숨어 책을 읽던 '가재가 노래하는 곳'과도 같다.

강물에 떠내려간 한스는 이렇게 외쳤으리라. '나에게 강을 돌려다오, 내 낚시대를 되돌려다오.' 울프는 고요히 호소한다. '자기만의 방을 만드세요, 거기서 생각의 낚싯줄을 내리세요.' 낚시터로부터 추방당한 자신의 실존에 진정 분노하는 이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망설임 없이 자신만의 시공간과 낚싯줄을 되찾기 위해 삶의 지도를 바꿀 것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LG전자 신임 CEO에 류재철 사장...가전R&D서 잔뼈 굵은 경영자

LG전자 조주완 최고경영자(CEO)가 용퇴하고 신임 CEO에 류재철 HS사업본부장(사장)이 선임됐다.LG전자는 2026년 임원인사에서 생활가전 글로벌 1위를 이끈

네이버 인수 하루만에...두나무 업비트 '540억' 해킹사고

네이버가 두나무 인수결정을 한지 하루만에 두나무가 운영하는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서 445억원 규모의 해킹사고가 터졌다.업비트는 27일 오전 두

LG U+, 임원 승진인사 단행...부사장 3명, 전무 1명, 상무 7명

LG유플러스가 27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부사장 승진 3명, 전무 승진 1명, 상무 신규 선임 7명에 대한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이번 인사는 중·장기 성

"보이스피싱 막겠다"...LG U+와 KB국민은행, 예방체계 구축한다

KB국민은행과 LG유플러스가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KB국민은행과 LG유플러스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금융과 통신데이터를 결합한 인

아름다운가게, 사회혁신가 '뷰티풀펠로우' 15기 선발

아름다운가게가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사회의 지속가능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회혁신리더 뷰티풀펠로우 15기를 선발했다

두나무 품은 네이버 "K-핀테크로 글로벌 간다...5년간 10조 투자"

두나무를 인수한 네이버가 앞으로 인공지능(AI)과 웹3간 융합이라는 글로벌 기술 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K-핀테크 서비스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

기후/환경

+

[날씨] 아직 11월인데...눈 '펑펑' 내리는 강원도

27일 강원도에 눈이 많이 내리면서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졌다.기상청은 이날 낮 12시를 기해 화천·양구군평지·강원남부산지·강원중부산

호주 화석연료 배출 전년比 2.2% 감소...재생에너지 덕분

호주가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커지면서 화석연료 배출량이 줄어들었다.26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의 올해 화석연료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은

[날씨] 겨울 알리는 '요란한 비'...내일부터 기온 '뚝'

27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린 후 기온이 뚝 떨어지겠다.이날 예상 강수량은 수도권과 강원 내륙·산지, 충남

열대우림 벌목만 금지?...매장된 화석연료 '3170억톤 탄소폭탄'

전세계 열대우림 아래에 막대한 화석연료가 매장돼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26일(현지시간) 환경전문매체 몽가베이(Mongabay)에 따르면, 국제환경단체 '리

英 보호구역 84%서 '플라스틱 너들' 검출..."생태계 전반에 침투"

영국 자연보호구역 곳곳에서 플라스틱 너들(nurdle)이 발견됐다.26일(현지시간) 환경단체 피드라(Fidra)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전역의 '특별과학보호

플라스틱 문제 일으키는 '조화'...인천가족공원서 반입 금지될듯

인천가족공원에 플라스틱 조화(造花) 반입을 자제하도록 하는 조례 제정이 추진된다.26일 인천시의회에 따르면 전날 산업경제위원회를 통과한 '인천시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