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을 반대하는 동덕여자대학교의 사태가 심상찮게 흘러가고 있다.
15일 현재 동덕여대 대부분의 건물은 대부분 폐쇄돼 있었고, 수업도 중단된 상태였다. 이날도 총학생회는 학교 정문에서 '남녀공학 논의 전면 철회' 및 '남자 유학생·학부생에 대한 협의'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백주년기념관을 비롯한 학교 주요 건물은 점거농성장으로 변했다. 벌써 5일째 이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동덕여대 점거농성과 시위가 촉발된 것은 '남녀공학 전환설'이 흘러나오면서부터다. 학교측에서 남녀공학 전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덕여대 총학생회 '나란'은 지난 7일 입장문을 내고 "동덕여대의 근간인 여성을 위협하는 공학 전환에 전적으로 반대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에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이 제시된 학교의 미래를 위해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논의가 발전되거나 결정된 것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동덕여대 학사통계에 따르면 한국어문화전공학과에 이미 6명의 남학생이 학부생으로 재학중이었다. 정부기관 공시에도 동덕여대 성비가 여자 99.9대 남자 0.1로 바뀌었다. 즉 재학생들 모르게 공학전환 논의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게 총학생회 측의 주장이다.
이에 동덕여대 학생들은 '공학 전환 반대 총력대응위원회'(총대위)를 결성하고, 학교 측에 맞대응하고 나섰다. 총대위는 공학 전환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학생들과 논의없이 비밀리에 진행한 점에 분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대위 측은 공학전환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측은 이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다보니 저항은 더 거칠어졌다.
지난 11일 본관 앞에는 '명예롭게 폐교하라'는 현수막과 함께 대학점퍼(과잠)를 벗어두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에 쓰인 과잠은 400벌을 넘어섰다. 숙명여대, 서울여대, 덕성여대 재학생들도 연대의 의미로 과잠을 벗어두고 가기도 했다. 백주년기념관 앞은 남녀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내용의 대자보와 붉은 스프레이 문구, '공학 전환 결사반대'라는 팻말이 붙은 근조화환들이 즐비했다. 본관 앞 고(故) 조용각 전 이사장의 흉상은 밀가루와 계란으로 범벅이 돼 있다.
이날 오후 5시. 학교 처장단은 총학생회와 약속한 장소에 나오지 않으면서 학생들은 본관을 비롯한 학교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건물들은 완전히 폐쇄됐다. 학생들은 책상까지 동원해 입구를 모두 막아버렸다. 총학생회 등 재학생 약 200명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학 전환 철회를 재차 촉구했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강의도 '올스톱'됐다. 학교 한 관계자는 "학생을 대동해야만 출입할 수 있고 그마저도 물건만 챙겨서 얼른 나와야한다"며 "시위 중인 학생을 제외한 교수, 교직원 모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시간 온라인 강의도 계속 훼방이 들어와서 진행을 못하고 동영상 강의를 올려도 이메일 폭격이 들어온다"며 "정신적 충격이 크다"고 호소했다.
'진로 취업·비교과 공동 박람회' 등 교내서 개최 예정이던 행사들도 모두 취소되거나 잠정 연기됐다. 행사를 준비하던 모 교수는 "위약금으로 인한 손해는 둘째치고 행사를 준비한 학생들이 행사를 개최하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비난을 받아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일부 기물파손도 발생했다.
하지만 더 큰 폭력에 노출된 쪽은 시위를 하던 학생들이었다. 남자 교수가 점거 시위 중인 학생들을 향해 유리문 밖에서 벽돌을 던졌다. 백주년기념관에서는 외부용역업체가 학생들을 향해 음료수 캔을 던지는 사건들도 일어났다. 지난 14일 오후 9시30분쯤 교내로 침입한 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학교 측 대응에 관해서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서로 면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총대위 측은 "총학생회와 총장과의 정확한 면담 날짜를 원한다"며 "하지만 학교 측에서 묵묵부답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학교 측은 먼저 수차례 학생들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총대위 측이 협상 조건을 계속 추가하며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명애 덕성여대 총장은 입장문을 내고 "(공학 전환이) 아직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학생들의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며 "진로 취업·비교과 공동 박람회 현장의 집기와 시설을 파손했고 본관 점거를 시작하며 직원을 감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실 건물을 무단 점거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온라인에 교직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테러를 가하고 있다"며 "이 같은 폭력 사태가 발생 중인 것을 매우 비통하게 생각한다. 대학은 이 사안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학교 측은 시위로 최대 54여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동덕여대는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피해 금액은 24억4434만원에서 54억4434만원으로 추정된다"며 "아직 법적으로 소송하는 방침은 논의되거나 결정된 바 없다"고 공지했다.
총대위 측은 "학생들은 집회, 수업거부 등 비폭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는데 총장은 학생들이 폭력시위를 한다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추운 날씨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폭력시위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하지 않은 채 돈에 취약한 학생들을 겁박하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는 인근 성신여대까지 확산되고 있다. 성신여대 총학은 학교 측이 2025학년도 입시에서 국제학부에 한해 남성 지원을 열어둔 점을 문제삼고 있다. 학생과 학교간 갈등이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반대 시위는 여대 전체로 번지며 장기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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