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은 ZEB 의무화돼 있지만 구축은 '무방비'
우리나라가 '2050 탄소중립' 실현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탄소중립 목표와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에 본지는 각 지자체별로 온실가스 배출 실태와 이를 감축하기 위한 이행계획과 수단 등을 점검하기 위해 △건축물 에너지 △교통 및 운송수단 △친환경 교통정책 △재생에너지 지원 사업 △자원순환 △녹지확충 등을 중심으로 17개 지자체의 정책실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중앙정부가 연면적 1000㎡(약 302.5평) 이상 공공건축물에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을 의무화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세부정책을 수립한 지방자치단체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축물을 포함한 건설 부문의 탄소배출량은 4830만톤으로, 이는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약 7.4%에 해당한다. 공장이 거의 없는 서울은 건축물 탄소배출량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 2022년 기준 서울시의 건물 부문 배출량은 전체의 67.1%에 달했을 정도다. 이처럼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내뿜는 건물 부문에서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달성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2020년부터 연면적 1000㎡ 이상 공공건축물에 ZEB 인증을 의무화했고, 민간 신축건물에도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 적용해 2050년까지 모든 건축물이 ZEB 1등급 수준에 도달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ZEB는 고단열, 고기밀, 고효율 설비 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남은 수요를 충당해 자립률을 높이는 건축물을 뜻한다.
이에 일부 지자체는 공공건축물을 중심으로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충청남도는 지난 2023년 국토교통부 주관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사업'에 총 85개소의 사업비 371억원을 신청했는데 이 가운데 74개소가 선정되면서 국비 193억원 이상을 확보했다.
충청남도 건축디자인과 관계자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지난해 41개소가 선정된데 이어 올해도 13개소가 선정됐다"며 "늦어도 내년까지 '제3차 녹색건축물 조성계획을 완성하고, 향후 목조 건축물에 대한 정비작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2024년부터 연면적 500㎡ 이상 신축·증축·전면 대수선 건축물에 '녹색건축물 설계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 기준은 에너지 소비량, 온실가스 배출량, 신재생에너지 활용 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친환경 설계를 의무화하는 제도다.
일부 지자체들은 구축 건물의 에너지 성능개선까지 추진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의 단열재를 보강하고, 창호를 교체하고, 조명을 LED로 전환하는 것이 에너지 절감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사용승인 15년이 경과한 민간 건축물을 대상으로 단열과 창호, 조명 등 고효율 기자재 교체에 대해 최대 20억원까지 융자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 친환경건물과 관계자는 "민간에서 오히려 건물에너지효율화 사업에 대한 호응도가 높은 편"이라며 "신축건물에 대해 ZEB 기준을 준수하도록 한느 것 못지않게 구축건물의 단열 성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인천시는 공공건물을 중심으로 에너지 진단과 고효율 설비개선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울산·대전·경상남도 등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1500만원 규모의 에너지 진단비 및 시설 개선비를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 에너지사업팀 관계자는 "경기도는 '원스톱 지원'을 통해 에너지 진단을 무료로 하고 있고, 사업장에서 고효율 설비로 교체시 50%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며 "사업 공고를 올리면 5분안에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의 의무기준만 수동적으로 따를 뿐, 자체적인 정책수립은 하지 않고 있다. 전라북도는 ZEB 관련 자체 예산이나 독립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없다. 경상북도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재정투자 계획과 실행 방안을 포함하고 있지만, ZEB에 특화된 자체적인 독립 지원 프로그램이나 예산은 아직 미비하다.
특히 전라북도는 건축물 부문 감축 정책에서 공공기관 중심의 캠페인성 조치에 그치고 있다. 일부 조례에서 에너지 효율화 방향을 명시했지만 민간 건축물 대상의 실질적인 지원이나 예산 배정은 전무하다. 2024년 개정된 '전북특별자치도 에너지 기본 조례'는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적정 실내온도 유지, 전력 피크 시간 조명 소등 등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라북도 건축디자인과 관계자는 "복권기금에서 50% 지원받는 저소득층 리모델링 사업이나, 농림부와 함께 진행하는 농촌취약계층 지원사업과 같이 국비로 진행하는 사업은 있지만 도비만으로 진행하는 지원사업은 없다"고 말했다.
건물 부문은 산업이나 수송처럼 구조전환에 수십년이 걸리는 분야가 아니라, 비교적 빠르고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에 전세계 도시들은 구축건물에 대한 지원책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신축과 구축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지원정책이야말로 지역 탄소중립 전략의 실질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선언적 감축 목표에서 벗어나 각 지자체가 독자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 나갈 때, 건축물 부문은 한국형 탄소중립의 '전환점'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