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에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에 대한 1심 재판 결과가 지난 9월 23일에 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위반한 이 회사 대표와 총괄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15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최대 형량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아리셀 화재 사고는 예측 불가능했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였다고 안전불감증을 질타했다.
1심 재판부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일차적으로는 아리셀 경영진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었다. 하지만 판결문을 정독해보면 아리셀을 넘어선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 눈길을 끈다. 재판부는 기업가가 평소에는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에 온 힘을 쏟으면서도 근로자들의 안전·보건에는 비용을 최소화해 이윤을 극대화해오다가 막상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족과 합의해 선처를 받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학습효과로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에 몰두하는 경영을 하게 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결국 이런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경고이다. 1심 판결에서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번 판결은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주고 있다. 근로자의 안전을 외면하는 맹목적인 이익 극대화는 용인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우리는 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라고 배웠고 이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같은 사조의 뿌리는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시카고학파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리드먼은 지난 1970년 9월 13일자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글에서 "경영진의 책임은 사회의 기본규칙을 따르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기업이 고용 창출, 차별 해소, 오염 회피 같은 사회적 책임을 심각하게 고려하라고 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전파하는 것과 같다며 '색깔론'을 갖다대기도 했다. 기업의 목적은 주인인 주주를 위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이 '프리드먼 독트린'은 자본주의 사조의 한 축으로 확산했고 1970년 종반부터 풍미한 신자유주의의 바탕이 됐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신자유주의는 퇴조했고, 프리드먼의 견해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도 본격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프리드먼 이론의 '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의 후배들에 의해 나왔다는 사실이다. 시카고 대학의 진잘레스 교수는 프리드먼 독트린 5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논문집에서 금융위기 이후 프리드먼의 견해가 점자 인기를 잃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익 극대화가 기업의 목적이며 기업은 어떤 사회적 책임도 없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은 완전경쟁시장에만 유효하다고 한발 물러났다. 이 말은 독과점 기업이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이익 극대화론'이 적용되지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진잘레스 교수의 대안은 이렇다. 기업은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효용인 사회 후생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다른 논문에서 기업은 주주를 위해서도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후생 극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주가 반드시 돈만 신경 쓰는 것은 아니며 기후변화 등 윤리적, 사회적 관심사도 가지도 있는 일반인인 만큼 이를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리드먼과는 상당히 맥락이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프리드먼 독트린'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은 기업이 주주만이 아닌 구성원, 고객, 지역사회,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해를 존중하는 경영을 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이다. 이 주장도 폭넓게 제기돼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의 1973년 '다보스 선언'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선언에서 WEF는 경영진의 목적은 사회는 물론 고객, 주주, 근로자에게 봉사하고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조화시키는 것임을 천명했다.
이후 유사한 논의가 이어져 오다가 2019년 8월에 미국 재계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더 주목을 받게 됐다. 한국 재계도 2022년에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발전하겠다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내놓아 이 움직임에 화답했다. 이처럼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경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타당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나는 기업이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면 장기적으로 주주의 이익도 증가한다는 생각(도구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규범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아리셀 화재 참사에 대한 판결을 되짚어보면, 기업의 이익 극대화는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를 존중하고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하는 전제 조건에서 정당화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이익과 사회적 공동선(善)을 조화시키는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게 기업의 역할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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