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와 옥수수는 규제품목에서 제외해 비판 직면
유럽연합(EU) 삼림벌채 규제안을 놓고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당초 EU는 이달말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에서 삼림벌채 규제법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이에 앞서 법안의 초안이 유출되면서 이같은 비판에 직면했다고 2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유출된 초안에는 기업들이 삼림벌채로 생산된 팜유와 대두를 수입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런데 제한 품목에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고무와 옥수수 등은 제외시켰다. 팜유와 대두 등은 소비 시장규모가 워낙 커서 삼림벌채 폐해가 심각하지만, 고무와 옥수수 등은 삼림벌채 비중이 극히 일부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EU의 이같은 결정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해당 법안의 근거로 삼고 있는 자료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법안은 대두, 쇠고기, 팜유, 목재를 포함한 8개 품목에 대한 삼림벌채의 위험성 평가연구를 근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상품거래 패턴을 측정한 기간이 달라지는 등 위원회의 자료에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센켄베르크 생물다양성 및 기후연구센터의 선임과학자 토마스 카스트너 박사는 "고무를 제외할 경우 법안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며 "해당 규제가 논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전의 EU 규제는 삼림벌채를 허용한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규제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번 법안은 이런 허점을 개선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여지도 있지만, 삼림벌채와 훼손방지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EU 계획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미흡함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게다가 EU는 숲의 정의를 좁게 한정해 남아메리카의 취약한 세라도 초원과 판타날 습지 등 독특한 생물다양성 지역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트디부아르의 NGO 마이티 어스(Mighty Earth)의 환경운동가인 아모를레이 투레는 최근 코코아로 유명한 서부 코트디부아르의 지두바예 마을에서 큰 고무농장을 발견했다. 그는 지난 2017년 코코아 재배농가와 정부가 코코아를 목적으로 삼림벌채를 하지 않기로 한 이후에 "고무로 인한 삼림벌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볼리비아 NGO인 콜 오브 더 포레스트(Call of the Forests) 설립자 지나 멘데스는 EU의 규제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볼리비아는 세계 5대 삼림벌채국이다. 경작지를 조성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숲을 불태우면서 지난 2019년 한해에만 최소 530만 헥타르(약 1300만 에이커)의 삼림이 파괴됐다.
멘데스는 EU 규제가 볼리비아의 토지 개간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마존에 대두 모라토리엄(벌채지역에서 생산되는 콩을 일시적으로 구매 중단하는 것)이 도입된 후 브라질 기업들이 볼리비아의 숲과 초원을 개간하기 시작했다"면서 "볼리비아에서는 브라질 기업들이 불도저로 숲을 부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카스트너 박사는 EU 규제가 더 많은 품목에 적용된다면 이런 역효과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물론 EU가 산림벌채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만 이리저리 옮기며 정작 삼림벌채는 줄이지 않는 상황을 피하려면 더욱 신중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델라라 부르크하트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은 파스칼 칸핀 유럽의회 환경위원장과 함께 생태계 보호 및 규제 범위 확대를 요청하며 법안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서한을 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는 숲에 대한 좁은 정의로 규제를 제한하는 것은 야생지역을 보호하지 못한다며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근 세계 각국의 활동가들도 브뤼셀에 와서 EU 규제당국에게 법안을 다시 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는 유출된 문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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