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방조한 대기오염은 개인권·건강권 침해
유럽연합(EU) 내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가 시민들이 '대기오염'을 유발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5일(현지시간) 율리아네 코코트 유럽사법재판소 특별법무관은 성명을 통해 "유럽연합법이 명시한 대기질보호 허용한계치를 위반할 경우 국가배상을 청구할 자격이 주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유럽사법재판소의 성명은 프랑스 베르사유 항소행정법원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현재 베르사유 법원은 한 시민이 프랑스 정부를 대상으로 2100만유로(약 28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항소심을 맡고 있다. 그는 파리의 대기오염이 본인의 건강을 해쳤고, 이는 프랑스 정부가 EU가 제시한 대기오염 허용한계치를 지키지 않은 까닭이라고 항소이유를 밝혔다.
이에 베르사유 법원은 개인이 이같은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이 가능한지 유럽사법재판소 특별법무관에게 법률해석을 요청했다. 특별법무관의 법률해석은 대개 유럽사법재판소 판결 직전 발표된다. 재판소의 법률해석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구속력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재판소는 법무관 법률해석과 유사한 내용으로 판결을 내린다.
법률해석을 맡은 코코트 특별법무관은 유럽연합법에 명시된 국가배상책임원칙에 따라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에 대해 개인의 국가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기오염물질 허용한계치와 국가가 대기질 개선을 위한 책임을 진다는 EU 지침은 개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개인권의 주요 취지는 인간의 건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부터 프랑스 정부는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간 이산화질소 허용한계치를 초과해왔다.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은 지난 2021년 대기오염을 적정수준으로 저감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마크롱 행정부에 과태료 1000만유로(약 134억원)를 부과하기도 했다. 코코트 특별법무관은 "고농도 오염지역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주민들 대부분 소득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아 사법적 보호가 특별히 더 요구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건강과 대기질 사이 직접적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을 경우, 그리고 인과관계가 밝혀졌다 하더라도 정부가 충실한 대기질 개선계획을 이행하고 있었고, 정책 효과가 발현되기 이전 과도기 상황에서 건강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국가는 책임을 면할 수 있다. 개선계획의 충실성 여부는 해당 국가의 법원이 직접 검증할 일"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변호사들로 구성된 국제환경단체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th)의 이르미나 코티우크 변호사는 "이번 해석을 통해 집권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인 경로가 있음이 확인됐다. 건강하고 깨끗한 공기를 위한 법적공방에서 중요한 돌파구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EU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대기질 가이드라인에 맞춰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상향된 오염물질 한계치를 제시할 전망이다. WHO는 대기오염으로 해마다 700만명의 조기사망자가 발생한다며 초미세먼지의 연간 평균 노출한도를 10마이크로그램에서 5마이크로그램으로 절반을 낮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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