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책임 확대해 재생원료 선순환 구축해야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라벨을 떼고 용기를 헹구는 등 소비자가 아무리 분리배출을 열심히 해도 생활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10%대로 플라스틱 오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관리나 추적이 이뤄지지 않아 제품의 원료로 다시 자원화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비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돼 있어, 결국 생산자가 수거책임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생산자에 대한 플라스틱 폐기물의 수거책임을 지우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다. 스웨덴·독일 등 선진국에서 먼저 시행한 이 제도는 생산자가 사용 후 배출되는 폐기물의 재활용까지 환경개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생산자가 제품의 설계, 포장재의 선택 등에서 결정권이 가장 큰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EPR제도가 시행중임에도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 실적은 처참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비로소 식품용기 재활용 기준이 마련되면서 투명페트병이 다시 투명페트병 생산을 위한 재생원료로 만들어진 양은 3400톤으로, 한해 출고·수입량의 1% 수준이다. 생활계 플라스틱 전체로 보면 연료로 태워지지 않고 실제 제품에 투입된 '물질 재활용' 비중은 2020년 기준 18%에 그쳤다. 이마저도 제대로된 통계기반이 없어 추정치에 불과하며, 점차 원료의 질이 떨어지는 '다운그레이딩' 재활용이 대부분이다. 이는 원래 쓰임새대로 지속적으로 재활용하도록 '순환경제'로 나아가고 있는 국제적 흐름에도 위배되고 있다.
◇느슨한 '생산자책임' 규제···재활용률은 '서류상 실적'
이처럼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실적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현재 시행중인 EPR 제도가 너무 느슨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일례로 독일의 EPR은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재활용 의무량을 정하고, 의무량에 대한 회수 및 재활용체계 구축 비용을 전적으로 생산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의무량에 포함되지 않아 지자체가 처리해야 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해서도 별도의 '플라스틱세'를 생산자에 부과해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EPR 제도는 대상 품목을 재활용하는 민간재활용업체들에 생산자가 지원금 형식의 '재활용 분담금'을 건네고, 이들의 실적을 사오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독일과 달리 의무량 외 폐기물에 대해 생산자가 별도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지자체가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결국 지자체는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소비자와 지자체가 생산자의 책임을 나눠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위반시 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독일은 재활용 실적을 신고하지 않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할 경우 생산자에 최대 10만유로(약 1억44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우리나라는 10분의 1도 안되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된다. 의무량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에도 미이행량에 대해 재활용 분담금의 115%~130% 수준의 부과금을 내면 그만이다.
게다가 민간재활용업체들이 수거한 EPR 대상 품목이 실제로 다시 EPR 대상 품목으로 재활용됐는지도 알 수 없다. 일례로 페트병에 대한 재활용 실적은 페트병이 잘게 부숴진 '칩'(펠릿)의 무게로 계산하는데, 환경부는 재질의 판별을 위한 현장감사를 1년에 2차례 실시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이 시점에만 페트병 칩을 내놓고, 실제로는 같은 페트 재질이지만 EPR 대상 품목이 아닌 LP판, 엑스레이 필름 등의 칩을 섞는다. 국내 생산자들은 이렇게 부풀려진 실적으로 재활용 의무율을 달성하고 있기에 실질적인 재활용은 서류상에만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재질별로 빠짐없이···선별 고도화해 선순환 구축해야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때 재활용 강국 1, 2위를 다투던 우리나라는 독일과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20년 독일의 플라스틱 물질 재활용률은 47%에 달했다. 이처럼 EPR제도의 원래 취지에 맞게 생산자 책임을 강조한 주요국들은 재생원료 수급이 쉬워지면서 제품을 만들 때 재생원료 의무사용량을 확대해도 물량이 딸리지 않는다.
재생원료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수출기업들이 재생원료 의무사용량을 맞추지 못하면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부터 모든 플라스틱 용기에 재생원료 의무사용 비중을 30% 이상으로 정했기 때문에 수출기업들은 이 비중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재생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민달기 가천대학교 토목환경과 명예교수는 "페트병, 어망, 수산물 양식용 부표 등 품목별로 재활용 의무가 부과되고 있다"며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폐기물도 많기 때문에 'PET, PS, PP' 등 재질별로 재활용 의무를 빠짐없이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하면 폐플라스틱 수거량이 크게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제품을 최대한 단일재질로 만들어 재활용 용이성을 높이도록 유도하는데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민 교수는 특히 양질의 재생원료를 확보하려면 선별수거시스템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플라스틱을 소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독일은 재활용 가치가 있는 물질을 최대한 회수하기 위해 폐기물 전처리시설을 많이 운영한다"며 "우리나라는 광학선별기 등 첨단시설을 갖춘 공공선별장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5~15인 규모의 민간기업들이 첨단설비없이 선별하기 때문에 선별률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별수거 시스템을 고도화하는데 재정을 투입해서 양질의 재생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자가 책임지고 해결해야"···직접 나서는 기업들
제도와 상관없이 자사가 판매한 폐플라스틱을 직접 수거하는 기업들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생수기업 산수음료는 2020년부터 정기배송 방식으로 생수를 판매하고, 빈 생수병을 직접 수거하고 있다. 산수음료 김지훈 대표는 "플라스틱 용기는 생산자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우리 회사는 소비자가 사용한 플라스틱 용기를 수거해서 원료로 다시 환원하고 이를 다시 재사용하는 자원순환 시스템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오프라인에서만 진행하던 공병수거를 최근 온라인으로 확대했다. 화장품 공병을 10개 모아 온라인몰에서 신청하면 무상으로 수거해준다. 수거한 용기는 아모레퍼시픽과 자체 계약된 재활용 업체가 체계적으로 분리선별한다. 재활용이 용이한 재질은 물리적 재활용, 재활용이 어려운 품목은 열에너지 회수 방식으로 처리한다. 아모레퍼시픽은 2025년까지 자사 제품 재활용 적용 비율을 5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수퍼빈은 폐플라스틱의 수거부터 재생원료로 재가공까지 자원순환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에 설치된 순환자원 회수기 '네프론'에 페트병을 투입하면 인공지능(AI) 기술로 오염여부를 판단해 수거하고, 실시간으로 중앙서버에 데이터가 집계된다. 이렇게 회수된 페트병은 소재로 가공되기 위해 '아이엠팩토리'로 보내진다. 추가 선별 과정을 거쳐 이물질을 걸러낸 뒤 펠릿 형태로 최종 소재화된다.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는 "일부 업체에서 페트병을 파쇄해 더 많은 양을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하는데, 페트병이 파쇄되면 소재의 통일성을 보장할 수 없게 돼 순도가 떨어진다"며 "순도가 떨어지면 재생원료로 가공되는 비중이나 소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순환경제도 성립할 수 없어 그만큼 '수거'를 제대로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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