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글로벌 무대에서는 3개의 중요한 기후소송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현장은 미주(美洲)인권법원(IACHR)과 국제해양법법원(ILTOS),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ICJ)다. 이들 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송의 핵심 주제는 각국 정부가 기후변화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이 중 국제사법재판소는 내년 중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인데 그 결과가 유엔 회원국들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앞서 ILTOS는 지난달 말 바다에 흡수된 온실가스가 해양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각국 정부가 해양 환경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또 세계 최대 규모의 기후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IACHR이 연말쯤 판결을 내놓으면 20개 중남미 국가들이 자국법을 판결에 맞춰 연쇄적으로 개정하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정책을 겨냥한 소송전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 대법원은 최근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영국 정부의 정책이 부족하다며 12개월 안에 이를 수정하라고 명령했다. 또 유럽 최고법원인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고령자 인권을 침해했다고 결론 내고 소송을 제기한 여성단체에 8만유로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비슷한 맥락의 판결이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도 나왔다. 지난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은 정부의 탄소감축 계획치 17%가 충분하지 않다며 2020년까지 1990년대보다 25% 이상 줄이라고 명령했다. 이 판결에 따라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까지 석탄생산 공장 폐쇄, 2030년까지 석탄발전의 단계적 축소 등 조치를 내놓았다. 독일에서는 2020년 2월 젊은 환경활동가들이 독일의 탄소감축 목표치가 파리기후협약에 부합하지 않다며 독일 기후보호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독일 헌재는 이를 받아들며 위헌 판결을 내고 정부가 2022년 말까지 기후보호법을 개정하라고 명령했다. 독일 정부는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탄소중립 시기를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기고 1990년대 대비 탄소감축 목표도 종전의 55%에서 65%로 크게 올렸다.
이같은 소송전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정부의 현행 기후변화대응 정책이 파리기후협약에 부합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위헌 소송이 지난 2020년 4월 제기된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 변론이 올 4월에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청구인 측은 탄소중립기본법과 국가기본계획 등이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등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40%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 등을 고려하면 감축폭이 큰 편이라는 현실론을 내세웠다. 헌재가 향후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릴지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향방이 갈리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기후소송은 이처럼 정부 정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네덜란드 환경단체인 밀리유데펜시가 2019년 4월 글로벌 정유기업인 셸이 기후변화 대응을 회피하면서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헤이그 지방법원에 낸 소송이다. 역사적인 판결이 2021년 5월에 나왔다. 법원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셸의 이익보다 중요하다"며 셸이 2030년까지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줄이라고 명령했다. 이 판결은 법원이 민간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에 개입한 첫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미국에서도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 소송이 1000여건 이상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친환경 경영을 한다고 공시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그린워싱 이슈이다. 현재 주정부나 지방 정부들이 미국 석유기업들을 상대로 10여건 이상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예컨대 매샤추세츠주 법무장관은 한 글로법 석유기업이 기후리스크를 공시하지 않음으로써 투자자와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며 소 제기를 했다.
ESG 관련 소송은 환경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사회(S) 이슈에서도 법적공방이 이뤄지고 있다. 팬데믹 기간 중 미국에서는 주로 보건이 문제가 돼 4000건이 넘는 소송이 기업을 대상으로 제기됐다. 직장에서의 성 및 인종 차별도 자주 나오는 법적 분쟁 이슈다.
ESG 소송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무엇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향적 정책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기업에 대해서는 그린워싱을 억제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랜썸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보면 소송 제기나 패소 등 기업에 불리한 뉴스는 기업가치를 평균 0.41%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에너지 등 화석연료 기업은 소 제기가 있으면 기업가치가 0.57%, 그리고 패소하면 1.5% 하락했다.
ESG 소송은 앞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탄립중립을 법제화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법이 ESG에 개입할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더이코노미스트지는 "성공이 성공을 낳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2021년에 미국 이외 지역에서 제기된 기후소송의 승소율이 58%에 이르다보니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 등 ESG 단체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기후변화 대응 등에 정치권에 느리게 움직여온 결과 '싸움의 장'을 법원으로 옮겨가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법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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