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풍향계] 'ESG공시' 늦춘다고 능사 아니다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4-07-22 0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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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제도 가운데 논의가 구체적인 진행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기업의 ESG 경영상황을 시장에 알리는 지속가능성 또는 기후공시다. 그동안 ESG는 지표가 들쭉날쭉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래서 공시 지표를 표준화하기 위한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됐고, 이제 실행단계에 들어선 상태다.

ESG 공시기준은 크게 글로벌 기준을 정하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와 '유럽연합(EU)' 그리고 '미국' 이 세 축을 중심으로 마련돼왔다. 2023년 6월에 발표된 ISSB 최종안은 일반 요구사항(S1)과 기후공시(S2)로 구성돼 있다. 이 안은 도입할지의 여부를 국가별로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돼 있지만, 원칙적으로 시행시기를 2025년으로 잡아놓고 있다. 다만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협력업체 등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인 스코프3 공시를 1년 늦출 수 있도록 했다. EU의 경우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2022년에 내놨는데 이 지침에 따른 ESG 공시는 2025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외국 기업은 2029년부터 공시하도록 했다. CSRD는 기업의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인 스코프1·2·3와 물, 생물다양성, 종업원, 공급망 내 근로자 등의 관련사항을 공시 대상으로 정했다.

미국에서 ESG 공시는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캘리포니아주 두 갈래로 논의돼왔다. 먼저 올 3월에 나온 SEC의 기후공시 최종안은 상장기업 규모에 따라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특징적인 점은 초안에 있었던 스코프3 공시를 빠졌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강한 반발을 고려한 조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입김이 강한 주 정부와 기업 등이 SEC안 도입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제기해 귀추가 주목된다. SEC에 앞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23년 10월에 기후공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연매출 10억달러가 넘는 기업이 스코프1·2·3 배출량을 모두 공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최근 개빈 뉴섬 주지사가 이 법안의 수정을 제안해 시행 시기가 2028년(스코프 1·2)과 2029년(스코프 3)으로 늦춰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 ESG 공시 제도가 잇따라 마련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관련 제도를 준비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당초 정부는 2025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공시에 시동을 건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를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 5월에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한국형' 공시기준 초안을 공표했다. 이 안에는 공시 시행 시기나 스코프3 공시의무화 여부, 공시 방식 등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지 않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와 KSSB는 4개월동안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입장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ESG 공시에 대한 국내 기업은 입장은 어떨까? 한마디로 '부담스러우니 최대한 늦추자'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가 자산 2조원 이상 12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58.4%의 기업이 공시의무화 시기를 2028~2030년으로 희망했다. 특히 스코프3 배출량 공시에 반대하는 의견이 56.0%나 됐으며 스코프1·2도 중대성을 판단해 자율적으로 공시하도록 하자고 응답한 비율이 66.4%에 달했다. 해외 제도와 견줘보면 상당히 '방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ESG 공시가 글로벌 무대에서 이제 대세가 됐다는 사실이다. ISSB안의 경우 영국, 일본, 캐나다, 브라질, 호주, 싱가포르 등 20여개국이 이미 이를 도입하기로 했거나 검토에 들어갔다. 이들 국가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5%를 차지하고 있어 ISSB안이 '글로벌 향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 기업들도 공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PwC의 조사결과, 일정에 맞춰 CSRD 공시를 하기 어렵다는 기업은 3%에 불과했고, 대다수 기업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퍼세포니의 조사에서도 미국 기업의 90% 이상이 SEC안에 근거해 기후 공시를 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KPMG의 조사에서도 기업들은 앞으로 1~2년 안에 적어도 한 가지의 공시 기준에 맞춰 ESG 공시를 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배출 공시도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MSCI의 넷제로 트랙커 보고서는 전세계 상장기업의 60%가 스코프1·2, 그리고 40% 이상이 스코프3 배출량을 공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넷제로를 선언한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스코프3 공시는 당연시돼가고 있다고 삼성증권은 진단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ESG 공시를 바라보는 한국 기업의 시선이 글로벌 추세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준비가 덜 돼 있는 탓도 크다. ESG 공시를 위한 거버넌스와 프로세스가 잘 구축돼 있지 않고 전사적 공감대가 부족한데다 데이터 수집 자체가 수작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한국의 기업들이 준비 부족을 이유로 많은 외국 기업들이 참여하는 ESG 공시를 지나치게 미룬다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EU를 비롯한 각국이 속속 스코프 3를 포함한 공시에 들어가게 되면 어차피 이들 국가의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들은 국내 일정에 관계없이 탄소 배출량 등을 공시해야 한다.

ESG 공시는 앞으로 재무 공시처럼 기업 경영의 '상수(常數)'가 될 것이다. 또 공시가 본격화되면 ESG를 잣대로 한 기업 경영 평가도 더 엄밀하게 이뤄질 것이다. 선진국 기업답게 글로벌 추세에 발맞춰 가는 기업의 진정성 있는 대응이 긴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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