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휴식이라는 설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어 매력적일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하고 변화한다. 아이들에게 방학의 의미는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방학이 뜻밖의 행운을 몰고 올 때도 있다. 방학이 다가올 때쯤, 엄마가 보내준 새 신발을 신고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자랑하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날도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아, 어서 와. 조금 늦었네."
"신발 끈 때문에 늦었어요. 할머니가 신발 끈을 이상하게 매어주잖아요. 이건 축구화거든요. 축구를 하려면 신발 끈을 조여야 하거든요. 제가 다시 매느라 늦었어요."
"오, 그래. 축구화 끈은 그렇게 묶는구나."
"축구화는 축구 할 때 신잖아요. 근데 일반 운동화랑 끈을 다르게 매거든요."
"그렇구나, 신발마다 끈을 다르게 매어야 하는구나."
아이의 모든 에너지가 신발을 향해 있었다. 걷는 모습도 달랐다. 발을 죽죽 내밀면서 축구공 차는 흉내를 내기도 하다가 발등을 살짝 들어 올려 신발 전체가 잘 보이도록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축구화 브랜드를 알아보지 못하는 나에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선수가 신는 축구화라고 자랑하며 우쭐거린다.
"제가 방과후 학교 축구부에 들어갔거든요." 산이는 축구화를 자랑하고 싶어 교실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며칠 후 교문에서 산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아이들이 뜸해진 틈을 타서 무언가 내밀며 보여주었다.
"엄마가 보내주신 실내화예요."
"어머, 눈부셔라. 산이 실내화 정말 곱다."
"엄마가 이거 신고 열심히 공부하면 저를 보러 온대요."
"오, 그래서 신발을 먼저 보내셨구나. 이 신발은 산이 엄마구나. 그치? 산이 엄마 반가워요. 산이는 학교생활을 참 잘하고 있어요."
실내화를 가만히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발을 통해 엄마의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았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산이는 엄마랑 공부하게 되어 신나겠다!"
"맞아요, 엄마는 짜증내는 걸 싫어해요. 엄마가 오면 우리말 잘하는 모습도 보여줄 거거든요."
엄마 소식이 온 날이면 산이의 발걸음이 다르다. 교문을 들어서는 산이의 신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산이의 부푼 공기를 한껏 마신다. '아, 엄마가 신발을 보냈구나.'
산이는 신발이 참 많다. 해외에서 엄마가 보내주는 신발들이다. 새 신발을 신은 날이면 산이는 내게 와서 자랑한다. 호랑이 디자인이 달린 샌들을 신고 왔을 때는 '백두산 전통 호랑이 모양'이라고 자랑했다.
"이 신발을 신으면 나도 왕이 된 것 같아요."
4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산이는 초록색 새 운동화를 신고 뛰다시피 성큼성큼 다가왔다.
"방학하면 엄마 만나러 가요. 엄마가 비행기 표도 다 예약해두었대요."
아이의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기분이 고양되고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방학만 되면 이 신발을 신고 엄마 보러 갈 거예요."
나는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엄마가 보내준 신발을 신고, 엄마에게 찾아가렴. 그 신발을 신고서 맘껏 달리렴.' 산이가 엄마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꿈에도 그리던 엄마와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