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열리는 부산 벡스코에 참가한 옵저버들 사이에서 더딘 협상 진행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28일 INC-5가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단 한 문장도 법률 초안 작성 그룹에 보내지지 않을 정도로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협상장 내 옵저버들 사이에서는 INC-5가 강력한 협약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특히 '욕조에 물이 넘치면 수도꼭지부터 잠가야 한다'는 말처럼 핵심인 플라스틱 생산규제에 대한 논의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INC-5에 옵저버로 참여한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다이어트플라스틱의 티자 마피라 이사는 "재사용·리필은 생산규제 논의의 핵심이지만, 이틀전에 시작된 논의에서도 아무것도 진전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마피라 이사에 따르면 플라스틱 오염을 유발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은 일회용품이고, 재사용·리필이 이에 대한 최적의 솔루션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는 15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음료제품 재질에 유리병을 주로 쓰고, 이를 소비자들이 소매점에 다시 반환하면 음료업체가 이를 수거해 세척한 뒤 재사용·리필하는 체계가 자리잡혀 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원료 단가가 싸지면서 일회용 페트로 대체됐고, 인도네시아는 현재 극심한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이번 INC-5는 △제품디자인⋅유해화학물질⋅플라스틱 생산 △폐기물관리·정의로운 전환 △재정·기술이전 △국가계획·건강·인식교육 4개 그룹으로 나뉘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재사용·리필은 일회용품을 대체하고 수거체계를 개선하는 작업을 필요로 해 전체 그룹에 해당되는 핵심 의제라는 것.
마피라 이사는 "최종적으로 기후변화협약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처럼 재사용량에 대한 국가별 목표치가 설정돼야 하지만, 시간이 매우 촉박해보인다"고 우려했다.
이밖에도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플라스틱 오염종식을 목표로 하는 이유는 결국 인체 건강을 지키기 위함인데, 생산단계에서 유해물질을 규제하는 논의도 거의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국제오염물질제거네트워크(IPEN)의 베티 왈런드 행정사무관은 "전세계에 퍼진 미세플라스틱이 이제는 태반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제품 적용단계에서 문제가 없더라도 플라스틱 폐기물과 섞였을 때 심각한 유해물질로 변화하는 경우도 있다"며 "플라스틱 오염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생산단계에서부터 특정 화학물질들의 사용을 규제해 식료품의 영양정보처럼 라벨을 부착하는 등 조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INC-5는 각국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전세계적인 합의보다는 국가별 자발적 조처를 통한 자율성에 맡기자는 논의로 기울고 있다. 이에 왈런드 사무관은 "지난 3일간 아무런 유의미한 진전이 없더니 오히려 후퇴하는 모양새"라며 "국가별 조처가 아닌 글로별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로 계속해서 진전이 없으면 협약일정이 지연되면서 예정된 폐막일인 오는 12월 1일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협약의 주요 이해관계자 가운데 생계부담을 안고 참여한 원주민이나 비공식 폐기물 수거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초래한다. 숙박이나 비행기편을 연장할 수 없는 형편의 옵저버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 마리안 레더스마 필리핀 제로웨이스트 캠페이너는 "협상에 참여하는 것도 개발도상국 옵저버와 대표단에는 상당한 비용 부담이며, 일용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옵저버들에게는 이러한 부담이 더욱 크다"며 "다만 협상이 시간 내 완료되는 것을 목표로 강력한 플라스틱 협약을 도출하는 것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며 각국이 보다 진취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부산=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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