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에코디자인 규정(ESPR)을 채택했지만 전자제품에 이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기존 규제와의 충돌, 투명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 디지털산업협회 지속가능정책담당 라파엘 헨느킨느 국장은 3일 서울 마곡 코엑스에서 열린 '한-EU 에코디자인 협력 포럼'에서 "이미 ESPR은 채택됐고, 디스플레이 산업이 첫번째 제품군으로 적용된다"면서 "그러나 새로운 규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침과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하는데 내년 하반기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ESPR을 전자제품에 적용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자제품은 많은 부품이 사용되므로 공급망이 그만큼 복잡하고 규정을 적용해야 할 범위가 넓다. 게다가 이미 2009년부터 전자제품 등에 '에코디자인 지침'이 적용된 바 있다. 이 기존의 에코디자인 지침은 국가별로 자율이행되고 있고, 에너지효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ESPR은 제품의 에너지효율뿐 아니라 자원효율성, 내구성, 수리용이성, 재활용 용이성 등의 요건도 갖춰야 하는데다, EU 전 회원국에 구속력을 가지는 규제다.
헨느킨느 국장은 "서버 및 데이터 저장 장치, 컴퓨터 등 일부 제품은 2009년부터 시행된 기존 요구사항에 따라 2026년까지 12월까지 재검토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며 "기존 지침에서 새 규정으로 전환할 때 충돌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규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 회원국 전문가들과의 협의, 법률 초안 작성, 공청회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에코디자인 규정(ESPR)이 채택되면서 스마트폰에도 새로운 규제가 적용됐다. 헨느킨느 국장은 "스마트폰은 분해 용이성, 수리가능성 요건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는 스마트폰에 쓰이는 자원의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원 효율성'은 전자제품을 설계·생산·사용·폐기하는 전과정에서 에너지와 소재, 물, 희귀 금속, 화학물질 등의 자원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사, 케이블, 기판 등 불필요한 자원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별도 모듈 대신 하나의 칩으로 기능을 통합해야 한다. 또 소형화 및 경량화를 통해 탄소발자국 감축해야 한다.
이에 헨느킨느 국장은 "제품별 특성을 감안한 실질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유럽 전자제품 업계는 EU집행위가 여러 제품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면 제품 성능이나 안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재활용성을 높이려다 제품의 내구성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ESPR이 제품군 특성에 맞게 '맞춤형 접근'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재활용 플라스틱 등 재생원료 함량은 제품의 내구성, 안전성,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전자제품은 수십개 부품이 필요한만큼 공급망도 복잡하다. 최종 제품 생산자가 모든 공급망의 부품이나 소재에 대해 재생원료 함량을 확인하고 성능을 보장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트북PC 부품 중 배터리 셀은 한국이 공급하고, 메인보드는 대만과 중국 등에서 공급하고, 케이블은 중국과 베트남에서 공급하는 상황이므로, 신뢰가능한 검층체계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에코디자인 규정은 투명성 강화를 위해 '디지털제품여권(DPP)'과 '판매되지 않은 재고에 대한 정보공개 의무'가 뒤따르게 된다. 일부 제품군은 재고에 대한 파기금지도 검토되고 있다. 헨느킨느 국장은 "정보 공개의 책임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협회는 생산공장에서 폐기된 제품까지만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재고 제품이 물류창고·판매단계까지 이동한 이후까지 추적·공개하라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했다.
유럽 ESPR은 지난해 7월 법률이 발효된 이후, 올 4월 전자제품, 배터리, 섬유 제품 순서대로 적용되고 있다. EU 집행위가 7월 이내로 각 제품군별로 필요한 구체적인 기준과 요건을 명시한 세부규칙(위임 법률)을 확정하면 2027~2028년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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