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피해자가 남성? ...'설거지론' 확산이 우려되는 이유

이준성 기자 / 기사승인 : 2021-11-01 16:18:28
  • -
  • +
  • 인쇄
여성혐오를 우스갯소리로 희화화시키고 있어
여성비하 통해 상대적 박탈감 상쇄하려는 심리


최근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설거지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설거지론'은 결혼전 자유분방하게 연애를 즐기던 여자를 자신이 거둔 것을 '설거지'에 빗댄 것이므로 명백한 여성혐오 표현이다. 그러나 '설거지론'은 이전의 여혐 표현과 사뭇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이전의 여혐 표현들은 여성을 직접 겨냥해 비하하거나 공격했다. 하지만 '설거지론'은 말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뜻 들으면 '여성비하'나 '여성혐오'로 느껴지지 않는다. 말에 담긴 뜻을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은유적 표현이다. 남성을 대상화하면서 여성을 우회적으로 돌려까는 방식이다. 더구나 이를 우스갯소리로 희화화했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에 재학중인 S씨(3학년)는 "설거지론은 본질적으로 유부남이 '아내에게 잡혀산다'고 자조하고 미혼남성들이 놀리는 문화"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 재학중인 Y씨는 "설거지론은 혐오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누구를 혐오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든 것"이라며 "기존의 혐오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상당수의 젊은 남성들이 '설거지론'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성을 경쟁자로 적대시하는 것과 동시에 남성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존 가부장적 가족질서가 여성들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가정내 여성들의 입김이 세진 것에 대한 불만 표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 강호숙 박사는 "2030 남성들은 가부장 체제에서 성장했지만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가부장적인 권력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면서 "이 때문에 이들은 기성세대 남성들이 가졌던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남근 선망)가 있다"고 진단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우리나라 남성들은 아내나 여자친구를 갖는 것이 능력이라는 가부장적 인식을 아직 갖고 있다"면서 "이런 인식은 결혼과 연애가 개개인의 주체적인 결합이라기보다는 여성의 성을 트로피로 바라보는 남성중심적인 인식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김수정 충남대학교 여성젠더학 협동과정 교수는 "결국 여성혐오가 더 심화된 것"이라며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소위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결혼까지 성공한 남성들을 설거지 행위로 비하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여성혐오를 통해 자신의 불안한 사회경제적 처지에 대해 위안을 얻으려는 동기가 이전의 가부장제 사회 때보다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단순히 여성을 적대시하기보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자신의 박탈감을 여성혐오로 풀면서 '설거지론'이 등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MZ세대 여성들 사이에서 결혼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여전히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묶여있는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결혼해서 이득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들은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 2월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25세~39세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여성의 62.6%는 비혼에 긍정적인 반면 응답남성의 65.6%는 결혼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은 33%인데 비해 남성은 10.8%에 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설거지론'에 비유하는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결혼에 더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남성들이 '설거지론'으로 결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려는 의도라는 추측도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설거지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학생 A씨는 "본인들도 아내를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존중이나 사랑을 바라는지 모르겠다"며 "아내가 담당하는 가사노동과 육아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학생 B씨는 "설거지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여성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대상이나 의식주 해결을 위한 존재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직장인 C씨는 "화나는걸 넘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라며 "여성을 혐오하기 위해서 설거지론을 만들고 그거(설거지론)를 근거로 또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고 기막혀 했다.


전문가들은 제2의 설거지론을 막으려면 성평등 사회를 위해 다같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호숙 박사는 "지금의 20대 남성이 힘든 위치에 있는 것은 20대 여성의 탓이 아니다"면서 "지금의 사회구조는 기성세대 남성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이므로 20대 남성들은 같은 세대의 여성들이 아닌 기성세대 권력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 박사는 "여성과 남성은 서로 동반자 관계이지만 분명한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라며 "20대 남성들은 사회적 차별로 인한 피해를 자신이 아끼는 누나, 여동생이 입는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탄소배출' 투자기준으로 부상...'탄소 스마트투자' 시장 커진다

탄소배출 리스크를 투자판단의 핵심변수로 반영하는 '탄소 스마트투자'가 글로벌 자본시장의 새로운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17일(현지시간) 글로벌

현대차 기술인력 대거 승진·발탁...R&D본부장에 만프레드 하러

현대자동차의 제품경쟁력을 책임질 수장으로 정준철 부사장과 만프레드 하러 부사장이 각각 제조부문장과 R&D본부장 사장으로 승진됐다.현대자동

KT 신임 대표이사 박윤영 후보 확정...내년 주총에서 의결

KT 신임 대표로 박윤영 후보가 확정됐다.KT 이사회는 지난 16일 박윤영 후보를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확정했다. 이날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박윤영 전

'삼성가전' 전기료 공짜거나 할인...삼성전자 대상국가 확대

영국과 이탈리아 등에서 삼성전자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절전을 넘어 전기요금 할인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삼성전자는 이탈리아 최대 규

[ESG;스코어]서울 25개 자치구...탄소감축 1위는 '성동구' 꼴찌는?

서울 성동구가 지난해 온실가스를 2370톤 줄이며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은 감축 성과를 기록한 반면, 강남구는 388톤을 감축하는데 그치면서 꼴찌

대·중견 상장사 58.3% '협력사 ESG평가 계약시 반영'

국내 상장 대·중견기업 58.3%는 공급망 ESG 관리를 위해 협력사의 ESG 평가결과를 계약시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중소기업중앙회가 올 3분기까지

기후/환경

+

"재생에너지 가짜뉴스 검증"…팩트체크 플랫폼 '리팩트' 출범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정보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는 팩트체크 플랫폼 '리팩트'(RE:FACT)가 출범했다.에너지전환포럼과 기후미디어허브는 18일 서울 종로

기상예보 어쩌려고?...美 백악관 "대기연구센터 해체 예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부가 국립대기연구센터(NCAR)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다.17일(현지시간) 러셀 보우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자신의 X(

기상청 "내년 9월부터 재생에너지 맞춤형 '햇빛·바람' 정보 제공"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을 위해 기상청이 내년 9월부터 일사량과 풍속 예측정보까지 제공한다. 기상청은 '과학 기반의 기후위기 대응, 국민 안전을 지

'전력배출계수' 1년마다 공표된다...2023년도 '0.4173톤' 확정

2023년 전력배출계수는 1메가와트시(MWh)당 0.4173톤(tCO2eq)으로 공표됐다. 18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2월부터 '전력배출계수' 갱신 주기를 3년에서 1년으로

150개국 참여한 '국제메탄서약'...메탄규제 국가 달랑 3곳

지난 2022년 전세계 150개국이 2030년까지 메탄 배출을 30% 감축하는 '국제메탄서약'을 했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보인다.18일 본지

트럼프의 '청정에너지 보조금 삭감' 美감사국이 감사 착수

트럼프 행정부가 실시한 청정에너지 보조금 삭감이 적법했는지 감사를 받는다.미국 에너지부 감사국은 17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결정한 약 80억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