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비하 통해 상대적 박탈감 상쇄하려는 심리
최근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설거지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설거지론'은 결혼전 자유분방하게 연애를 즐기던 여자를 자신이 거둔 것을 '설거지'에 빗댄 것이므로 명백한 여성혐오 표현이다. 그러나 '설거지론'은 이전의 여혐 표현과 사뭇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이전의 여혐 표현들은 여성을 직접 겨냥해 비하하거나 공격했다. 하지만 '설거지론'은 말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뜻 들으면 '여성비하'나 '여성혐오'로 느껴지지 않는다. 말에 담긴 뜻을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은유적 표현이다. 남성을 대상화하면서 여성을 우회적으로 돌려까는 방식이다. 더구나 이를 우스갯소리로 희화화했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에 재학중인 S씨(3학년)는 "설거지론은 본질적으로 유부남이 '아내에게 잡혀산다'고 자조하고 미혼남성들이 놀리는 문화"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 재학중인 Y씨는 "설거지론은 혐오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누구를 혐오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든 것"이라며 "기존의 혐오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상당수의 젊은 남성들이 '설거지론'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성을 경쟁자로 적대시하는 것과 동시에 남성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존 가부장적 가족질서가 여성들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가정내 여성들의 입김이 세진 것에 대한 불만 표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 강호숙 박사는 "2030 남성들은 가부장 체제에서 성장했지만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가부장적인 권력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면서 "이 때문에 이들은 기성세대 남성들이 가졌던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남근 선망)가 있다"고 진단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우리나라 남성들은 아내나 여자친구를 갖는 것이 능력이라는 가부장적 인식을 아직 갖고 있다"면서 "이런 인식은 결혼과 연애가 개개인의 주체적인 결합이라기보다는 여성의 성을 트로피로 바라보는 남성중심적인 인식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김수정 충남대학교 여성젠더학 협동과정 교수는 "결국 여성혐오가 더 심화된 것"이라며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소위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결혼까지 성공한 남성들을 설거지 행위로 비하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여성혐오를 통해 자신의 불안한 사회경제적 처지에 대해 위안을 얻으려는 동기가 이전의 가부장제 사회 때보다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단순히 여성을 적대시하기보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자신의 박탈감을 여성혐오로 풀면서 '설거지론'이 등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MZ세대 여성들 사이에서 결혼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여전히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묶여있는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결혼해서 이득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들은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 2월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25세~39세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여성의 62.6%는 비혼에 긍정적인 반면 응답남성의 65.6%는 결혼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은 33%인데 비해 남성은 10.8%에 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설거지론'에 비유하는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결혼에 더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남성들이 '설거지론'으로 결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려는 의도라는 추측도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설거지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학생 A씨는 "본인들도 아내를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존중이나 사랑을 바라는지 모르겠다"며 "아내가 담당하는 가사노동과 육아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학생 B씨는 "설거지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여성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대상이나 의식주 해결을 위한 존재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직장인 C씨는 "화나는걸 넘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라며 "여성을 혐오하기 위해서 설거지론을 만들고 그거(설거지론)를 근거로 또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고 기막혀 했다.
전문가들은 제2의 설거지론을 막으려면 성평등 사회를 위해 다같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호숙 박사는 "지금의 20대 남성이 힘든 위치에 있는 것은 20대 여성의 탓이 아니다"면서 "지금의 사회구조는 기성세대 남성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이므로 20대 남성들은 같은 세대의 여성들이 아닌 기성세대 권력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 박사는 "여성과 남성은 서로 동반자 관계이지만 분명한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라며 "20대 남성들은 사회적 차별로 인한 피해를 자신이 아끼는 누나, 여동생이 입는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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