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녹으면서 낙석, 산사태 위험 커져
유럽을 휘감은 폭염이 알프스의 만년설까지 녹이고 있다. 여름 성수기를 맞아야 할 알프스는 '개점휴업' 상태가 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의 국경인 알프스 산맥은 해발 수천미터가 넘어 사계절 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알프스 만년설은 대부분 사라지고 꼭대기를 가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알프스의 눈밭을 집어삼켜버린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눈이 쌓여있던 곳들은 대부분 흙바닥으로 변했다.
최근 스위스 기상청은 알프스산맥 상공의 빙점 고도가 5184m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1995년 7월 20일 관측했던 종전 기록인 5117m보다 70m 이상 높아진 것이다. 빙점이 올라간다는 것은 0도 이하를 유지할 수 있는 상공의 높이가 더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향은 산봉우리 기온에도 고스란히 미쳤다. 고산지대 기온이 예년보다 일찍 상승하면서 만년설을 녹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등산로는 폐쇄되고 스키장도 문을 닫고 있다. 스위스 남부 체르마트 부근의 해발 4478m의 마터호른 봉우리에서 스키장 리프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터호른 체르마트 베르크반넨은 지난달 29일부터 여름 스키장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또 마터호른과 몽블랑 봉우리 일대 등산로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부터 폐쇄됐다.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에 걸쳐있는 해발 4809m 봉우리로, 전세계 산악인들에게 인기있는 등산로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고 빙하까지 녹으면서 안전했던 등산로는 모두 위험구간으로 변했다. 빙하가 꽁꽁 얼었을 때는 바위같은 산악지형을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지만, 빙하 밑으로 빙하녹은 물이 많이 흐를수록 단단하게 고정할 곳도 없고 산사태와 눈사태 위험도 커진다. 실제로 지난 3일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산맥 최고봉 마르몰라다(Marmolada) 정상(3343m)에서 빙하 덩어리와 바윗덩이가 한꺼번에 떨어져 탐방객 1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알프스 산악가이드들은 '유럽의 지붕'으로 일컬어지는 스위스의 융프라우(Jungfrau) 봉우리 투어도 추천하지 않는 분위기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가이드들이 융프라우 투어를 추천하지 않는 것이 100년만이라고 했다. 가이드들은 마터호른 봉우리로 올라가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방면 노선도 등반자제를 권고했다.
피에르 마테이(Pierre Mathey) 스위스산악가이드협회장은 "현재 알프스는 마터호른(Matterhorn)과 몽블랑(Mont Blanc)을 포함해 12개 봉우리에 경고가 내려졌다"고 밝혔다. 빙하가 녹는 현상이 예년보다 훨씬 빨라지면서 보통 8월에 시작되는 휴업이 지금은 6월말에 시작해 7월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빙하가 사라지는 곳은 알프스뿐만이 아니다. 히말라야 산맥도 이미 40%의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 쓰나미가 발생해 인근지역을 덮쳤다. 지난해 8월 그린란드에서도 3일 연속 비가 내리면서 약 70만톤의 해빙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전문가들은 그린란드의 얼음이 모두 녹을 경우 지구 해수면이 약 6m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일련의 해빙현상은 모두 기후변화가 원인인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안드레아스 린스바우어(Andreas Linsbauer) 스위스 취리히대학 빙하학자는 "지난 겨울 유난히 적은 강설량으로 빙하를 보호할 눈이 줄어든 것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극심한 여름폭염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올초 사하라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도 눈을 더욱 빠르게 녹게 만들고 있고, 5월부터 시작된 유럽 폭염이 고산지대 기온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마일린 자크마트(Mylene Jacquemart) 스위스 ETH취리히대학 빙하산악위험연구원은 빙하 아래에서 여과되는 해빙수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위험성을 가중시킨다"며 보이지 않는 추가위협이 될 것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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