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옷감이나 플라스틱 등에 쓰이는 '고분자'(polymer) 소재의 적합성을 판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4배 이상 빠르게 앞당기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신소재 개발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8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물리학과 김재업 교수팀은 1주일정도 소요되던 고분자 계산을 하루만에 끝낼 수 있는 'AI 고분자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기술은 오픈소스 프로그램으로도 공개돼 고분자 시뮬레이션 발전에 이바지할 전망이다.
고분자 소재는 의류나 플라스틱 제품 등 우리 일상에서 흔히 사용된다. 새로운 고분자 소재를 합성했을 때 개발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해 물성을 알아낸다. 다만 다량의 시료와 여러 번의 분석이 필요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분자의 복잡한 사슬구조를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는 '랑주뱅 장이론 시뮬레이션'(Langevin Field Theoretic Simulation·L-FTS)이 개발됐지만, 이마저도 계산량이 너무 많아 고성능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써도 시뮬레이션 한번에 며칠씩 소요됐다.
김재업 교수팀은 AI기술로 알려진 딥러닝(Deep Learning) 기계학습을 활용해 L-FTS의 단점을 극복했다. L-FTS를 수행하려면 고분자가 힘을 받아도 부피가 줄지 않는 '비압축성' 지점을 찾는 작업을 수십만번 이상 수행해야 한다. 또 예측치와 실제 결과치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해당 예측 작업을 50회가량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김재업 교수팀의 이번 'AI 고분자 시뮬레이션 기술'로 50회씩 반복하던 예측 작업을 2~4회로 줄일 수 있어 기존보다 6배 이상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인공신경망 훈련을 위한 데이터 준비와 훈련에 드는 시간을 포함해도 기존 대비 최소 4배 이상 속도가 향상됐다.
제1저자인 용대성 고등과학원(KIAS)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작은 고분자계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수행됐던 '장이론 시뮬레이션'을 대면적 박막이나 복잡한 형상이 예상되는 고분자에도 사용할 길이 열렸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특히 '기계학습 기반의 시뮬레이션 방법의 한계로 지적됐던 낮은 정확도를 극복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최근 수치적 계산과 시뮬레이션을 빠르게 수행하기 위한 AI 분야의 기계학습을 이용한 해법이 많이 제안됐지만, 대부분 정확도가 낮고 AI 훈련에 많은 시간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김재업 교수는 "이번 기술은 심층인공신경망이 예측한 답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예측치와 정답의 차이를 다시 계산해 새로운 입력값을 부여해 더 정밀한 예측이 가능하다"며 "이 덕분에 몇번의 예측으로 원하는 수치적 정밀도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기존의 편미분 방정식이나 밀도 범함수 이론(DFT)의 해를 얻는 문제 등의 다양한 문제에 이 기술을 적용해볼 수 있어 여러 분야로 응용될 것"이라고 전망햇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기초연구실사업(BRL), 세종과학펠로우십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연구 성과는 고분자 연구 권위지인 '매크로몰레큘스'(Macromolecules)에 출판됐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