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홀하면 '탄소 무역장벽'에 큰 타격 우려
"확실히 작년과는 다른 분위기다. 작년에는 회사의 모든 사안의 우선순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었는데 올해는 '비용절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A사 ESG위원회 위원)
"경영 시계가 불투명하고, 정부도 이전 정부와 달리 적극적이지 않다고 느껴져 우리도 그렇지만 다른 기업들도 ESG와 관련해 눈치를 보고 있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단기적으로 비용이 늘어나는 사안들이다 보니…"(B사 ESG경영위원장)
2020~2021년 강하게 불었던 기업들의 ESG경영 바람이 올들어 주춤한 모습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전쟁 그리고 현 정부의 소극적인 모습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ESG경영을 외쳤던 기업 중 상당수가 올들어 관련 투자 등에 망설이고 있다. 이런 모습은 중견·중소기업, 그리고 수출보다 내수를 위주로 하는 기업들에게서 두드러지고 있다. 유통업체인 C사의 임원은 "사내에서 일단은 현재 위기를 넘겨야 ESG든 지속가능경영이든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데 굳이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 ESG를 한다고 비용을 늘릴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에게 'ESG=비용'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20년 이후 국내외 할 것 없이 ESG가 큰 트렌드일 때는 마지 못해 너도나도 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ESG를 부르짖었지만, 올들어 국내외에서 관련 트렌드가 꺾이자 많은 기업들이 '우선 멈춤' 버튼을 누른 것이다.
우선 현 정부의 무관심이 큰 이유로 꼽힌다.
기업들,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단기적으로 비용이 늘어나는 의사결정을 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서스틴베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ESG위원회를 설치한 기업 중 65%가 연 4회 미만으로 회의를 개최했다. 대세에 따라 위원회를 설치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업계에서는 올해의 경우 이보다 활동이 더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부가 지원과 제도개선을 통해 기업들을 독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오히려 공공기관 평가에서 '사회적가치 창출' 비중을 낮추는 등 ESG 트렌드에 역행하고 있다. 에너지믹스 역시 원자력과 천연가스로 대체한다면서 ESG의 중요한 요소인 환경부문의 핵심 중 하나인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소극적이다.
D사 환경팀장은 "RE100, 탄소중립, ESG경영은 기업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며 "정부의 인프라 구축과 지원, 민관 합동 투자 등이 절실한데 이번 정부는 아직 그런 부분에 대한 방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많은 기업들 정부와 인프라를 핑계로 손을 놓아버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무관심과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 곡물과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경제위기 등이 겹치면서 ESG경영이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렵다고 ESG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소홀히 할 경우 추후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국가 차원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40% 줄이기로 국제 사회에 약속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25일부터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 시행됐다. 다시말해 상황이 어떻든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줄여야 하고, 기업들도 당연히 동참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주요국가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내걸고 새로운 무역장벽을 쌓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수출과 판매를 위해서라도 ESG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점차 '공급망 관리'가 이슈가 되는만큼, 수출업체뿐만 아니라 부품 등을 제공하는 협력사들에게도 '온실가스 감축'은 당면 과제다. 만약 이를 간과할 경우 완성품 업체에서는 수출을 위해 해당 납품업체로부터의 공급을 끊어야 하는 상황까지 닥칠 수 있다.
임현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기업의 환경적 책임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며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녹색경영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그 수준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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