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전력시장 넘어선 국가전반 위기
올해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재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화석연료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전기요금을 억누르고 있으면 한전은 채권 발행으로 이 비용을 충당할 것이고, 이로 인해 '한전채 블랙홀'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6일 기후솔루션은 '기후위기에서 경제위기로: 한국전력 적자 및 채권 발행 영향과 대응' 보고서를 통해 한전의 적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전성을 이같이 예고했다.
지난 2년간 누적적자가 50조원에 달한 한전은 채권발행을 지속해왔다. 2022년 31조원이 발행된 한전채는 채권발행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9%에서 2022년 29%로 급증했다. 한전이 짧은 기간에 한정된 자금공급을 독점하자 일반회사채 발행량은 2021년 60조원에서 2022년 42조원으로 30% 감소해 기업 자금조달을 위축시켰다.
이처럼 한전이 단기에 채권발행을 늘리면서 채권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이자 지난 2022년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발언으로 촉발된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건에 이어 금융시장의 위기요인으로 부상했다. '한전채 블랙홀'로 인한 금융시장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금융당국은 한전에 채권 발행 축소를 요구했다. 이에 한전은 2023년 회사채 발행규모를 12조원으로 줄여 채권 발행시장의 비중을 29%에서 9%로 낮췄다.
그러나 '한전채 블랙홀' 현상이 올해 재발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자회사 중간배당, 지분매각 등을 통해 사채 발행한도를 91조원에서 104조원으로 늘려 올해 최대 30조원의 채권발행이 가능하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채권액은 20조원가량인데, 적자 상태인 한전이 또다시 채권 발행을 통해 이를 막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한전발 금융불안은 채권시장뿐 아니라 단기사채, 기업어음 시장까지 번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회사채 발행에 제약을 받고 있는 한전은 단기사채와 기업어음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단기사채 시장에서 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2%에서 2022년 15%로 급증했고, 2023년에는 12%를 차지했다. 기업어음 시장에서 한전의 비중은 2021년과 2022년 8% 수준에서 2023년 11%로 늘었다. 한전이 채권시장뿐 아니라 사채와 어음시장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한전의 전력생산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전은 공급전력의 60%가량을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대란으로 한전의 원료비는 석탄 10조원, 천연가스 20조원 등 한해 30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런데 전기요금에 이 원가를 반영시켜 올리지 않으면서 역마진 구조를 초래했고, 이는 적자폭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한전의 전력생산 구조를 재생에너지 등으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22년 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우리나라 총배출량의 4분의 1에 달하는 1억6000만톤에 달했다. ESG금융공시가 제도화되는 시점이어서, 앞으로 한전은 이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글로벌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이는 금융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게 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한전의 자금위기는 채권시장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장은 "2022년부터 2년여간 이어진 한전의 위기는 다른 산업, 국가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한전은 올해 또다시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어 정책 당국의 감독 강화가 요구된다"고 촉구했다.
이진선 기후솔루션 전력시장계통팀장은 "한국전력의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도 필요하지만,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하면서 "화석연료 중심 발전을 우대해주는 현재 전력시장 구조하에서 한전 발전자회사들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출 동기가 없다"고 짚었다.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화석연료 중심으로 설계된 전력시장의 거버넌스를 재생에너지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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