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 풍향계] '정치역풍' 맞은 ESG의 앞날은?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4-02-20 10:48:45
  • -
  • +
  • 인쇄

기업 경영의 큰 물줄기로 순항하는 듯하던 ESG. 최근들어 역풍을 맞고 있다. 주로 미국에서이다. 화석연료가 비즈니스 모델인 석유기업 등이 중요한 돈줄인 공화당이 ESG에 제동을 걸고 있다.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인 텍사스와 플로리다 등 주 정부들은 지난 1년 반동안 'ESG 렌즈'로 투자 결정을 하는 블랙록 등 자산운용사들을 대상으로 마치 '문화전쟁'을 벌이듯 각을 세웠다. 이들 기업과의 거래중단 등 제재에도 나섰다. 올해 초에 뉴햄프셔주에서는 ESG를 잣대로 삼아 주 연금을 운용하는 것을 '중죄'로 간주하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되기까지 했다.

맞바람이 심해지자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일단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공화당의 표적이 된 ESG 전도사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ESG란 용어가 너무 정치화됐다며 이 말을 그만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상장사들이 실적 발표 때 ESG를 언급하는 비율도 2022년 1분기의 35%에서 지난해 4분기에는 10%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학계에서는 용어 자체를 바꾸자는 주장도 나왔다. ESG 관련 유명 저서인 'ESG 파이코노믹스'를 낸 알렉스 에드먼스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지난해와 올 연초에 걸쳐 'ESG의 종언'과 '합리적 지속가능성'이란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에드먼스 교수는 ESG가 기업에 장기적 수익을 가져다주는 기업문화나 혁신 역량 같은 다른 무형 자산과 다를 게 없다며 ESG를 특별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 논문에서는 ESG를 '합리적 지속가능성'으로 바꿔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ESG가 장기적 가치 창출인 지속가능성을 지향하고 증거와 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ESG의 향후 진로는 어떻게 될까? 중요한 변수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 대선 결과다. 만약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면 공화당의 반(反) ESG 공세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가 ESG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까? 진행 속도가 다소 늦춰질 가능성은 있다. 그동안 ESG가 빠르게 확산해온 것은 미국과 EU(유럽연합)의 공조 덕분이었는데 여기에 균열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의 영역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시장의 반응이다. 시장의 풍향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 중 하나는 블랙록이 운용하는 ESG 투자상품의 동향이다. 래리 핑크가 ESG란 말을 안하겠다고 했지만, 이 기업의 ESG 펀드는 2022년과 2023년에 50%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개인투자자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모건스탠리가 지난해 10월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의 투자자 28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77%의 응답자가 ESG 투자에 계속 관심이 있다고 밝혔으며, 54%는 올해 지속가능 투자를 더 늘릴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캡제미니의 조사 결과, 지속가능 투자를 늘리겠다는 의향을 나타낸 기업의 비율은 지난해의 33%에서 올해는 50% 이상으로 크게 상승했다. 특히 기업인 61%는 ESG 경영이 부진하면 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정치적 공간에서 ESG를 놓고 부분적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시장은 별다른 동요없이 ESG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ESG와 관련해 눈여겨볼 또 하나의 흐름은 제도의 가속화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에 재무적 부담을 지우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비롯해 지속가능 및 생물다양성 공시, 공급망에 대한 환경 및 인권 실사,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플라스틱 규제협약 등 제도들이 이미 공표됐거나 가시화를 앞두고 있다. 기업들이 ESG 경영을 하지 않으면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돼가고 있다.

결국 ESG는 정치적 기세탓에 주춤주춤할 수는 있겠지만 견고한 흐름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순환경제, 인권, 안전, 다양성과 포용성, 이해관계자 중시,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 등 ESG가 포괄하고 있는 이슈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의 중대한 개혁 이슈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최근 타임지가 '기업은 왜 ESG를 무시하면 안되는가'라는 글에서 내린 결론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ESG는 오르내림을 거듭할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 더이상 ESG로 불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ESG를 무시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다"라고.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최남수서정대 교수 nschoi@seojeong.ac.kr  다른기사보기
  • 현 서정대 교수/SK증권 ESG위원장/전 YTN 대표/ 전 MTN 대표

핫이슈

+

Video

+

ESG

+

KB국민은행, 서울숲에서 어린이 꿀벌 체험 프로그램 진행

KB국민은행은 생태계 다양성 보전에 앞장서고자 서울숲 꿀벌정원에서 어린이 꿀벌체험 '안녕, 꿀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22일 밝혔다.이번 프로그램

22일 지구의 날...뷰티·식품업계 '기후감수성' 살리는 캠페인 전개

뷰티·식품 등 유통업계가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기후감수성'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친환경 캠페인을 전개한다.동원F&B는 제주 해안

'친환경 소비촉진'...현대이지웰, 국내 첫 '온라인 그린카드' 도입

현대이지웰이 국내 최초로 '온라인 그린카드'를 도입해 친환경 소비촉진에 나선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토탈 복지솔루션기업 현대이지웰은 21일 한국

경기도, 사회적경제조직·사회복지기관에 'ESG경영' 지원한다

경기도가 오는 5월 16일까지 'ESG 경영지원 사업'에 참여할 도내 사회적경제조직 및 사회복지기관을 모집한다고 21일 밝혔다.사회적경제조직과 사회복지

BP, 기후전환 실패에 '주주 반발'...주주 24.3%가 회장 연임 반대

BP의 친환경 전환 전략이 실패하면서 투자자들의 반발에 직면했다.가디언, CNBC 등 외신들은 17일(현지시간) 열린 BP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약 4분의 1

포스코 '그린워싱'으로 공정위 제재...허위·과장 광고

객관적인 근거없이 철강 자재를 '친환경 제품'이라고 홍보하는 등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 환경주의)'을 한 포스코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기후/환경

+

산불 트라우마 '의사결정' 능력에도 영향..."적절한 결정 못해"

산불 등 기후재해를 겪은 생존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적절한 의사결정을 잘 내리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랜시간 기다리면 더 큰

"한국 2035년까지 온실가스 61% 감축 가능"...어떻게?

우리나라는 국제감축 활용 없이도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61% 감축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다.21일 기후솔루션과 미국 메릴랜드대학 글로벌

한여름엔 어쩌라고?...4월 중순인데 벌써 49℃ '살인폭염'

몬순 우기를 앞둔 인도와 파키스탄이 벌써부터 살인폭염에 시달리고 있다.보통 5~6월에 폭염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인데 이 지역은 4월에 벌써부터 연일

전세계 농경지 15% '중금속 범벅'...14억명이 위험지역 거주

전세계 농경지의 약 15%가 중금속에 오염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금속 위험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14억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다.17일(현지

[영상] 홍수로 물바다 됐는데...'나홀로' 멀쩡한 집

미국의 한 마을 전체가 홍수로 물에 잠겼는데 나홀로 멀쩡한 집 한채가 화제다. 이 집은 마치 호수에 떠있는 듯했다.미국 남부와 중서부 지역에 지난 2

끝없이 떠밀려오는 '미역 더미'...제주 해수욕장 '날벼락'

제주시 유명 해수욕장인 이호해수욕장이 미역 쓰나미가 덮쳤다.최근 이호해수욕장 해변으로 엄청난 양의 미역더미가 떠밀려오면서 이를 치우는데 고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