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KC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금지시킨데 대해 소비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온라인커머스를 통해 구입한 제품들의 유해성 논란이 일자, 정부가 이를 원천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저가에 제품을 구매해왔던 소비자들은 정부의 갑작스런 직구금지에 '중간 유통업자만 배불리는 꼴'이라고 비판하며, 규제반대 청원까지 올라온 상태다.
정부가 지난 16일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서 직구금지를 결정한 품목은 소비자 안전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유아·어린이용 유아차, 장난감, 물놀이 기수 등 34개 품목과 화재·감전 등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큰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 등이다. 모두 합치면 80개 품목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에 들어가는 부품용 배터리를 비롯해 아동용 물품, 가습기, 전자 케이블 등이 모두 포함된다.
실제로 알리와 테무 등을 통해 직구로 국내 들어오는 초저가 제품들 가운데 유아와 어린이용품 등에서 카드뮴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물질이 검출된 바 있다. 최근 어린이용 머리띠에서도 유해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의 저가 직구제품 가운데 상당수는 중금속이나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함유돼 있는 등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칼을 빼든 것이다.
국내 수입절차를 제대로 거친 제품은 안전성을 입증하는 국가통합인증마크(KC마크)를 받고 국내 유통되고 있다. 이 인증마크를 획득하려면 최소 1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알리와 테무를 통해 직구로 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의 대부분은 이 마크가 없다. 그만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안전인증을 받았더라도 유해성분이 포함된 제품이 국내로 반입되지 않도록 하는 조처도 함께 시행된다. 피부에 직접 닿는 화장품·위생용품은 1050종의 사용금지 원료를 포함했는지 검사해 유해성이 확인된 제품은 국내 반입을 금지한다. 장신구와 생활화학제품 등도 모니터링과 실태 조사 등을 통해 유해 물질 기준치를 초과하는 제품은 국내 반입을 차단한다. 이같은 조치는 올 6월중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의 직구금지 규제가 발표되자, 소비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PC, 전자기기 등을 주로 구매하는 테크관련 취미를 가진 이들이나 에어소프트건(모형 총), 레고, 피규어 등의 취미를 즐기는 '키덜트'(키즈+어덜트) 소비자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완구와 전기, 전자 제품 및 부품 전체가 규제대상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통마진없이 조금 더 싸게 제품을 구입하려던 소비자들은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내 정식 수입된 물품은 동일한 물품인데도 해외보다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중간유통을 거치면서 그만큼 마진이 더 붙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10배 가까이 가격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이에 국내 소비자들은 직구로 몰려들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직구가 값싸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직구를 선호하면서 국내 유통사들도 판매가를 낮추려는 경향도 보였다. 그런데 정부가 직구를 원천봉쇄하면 유통업체들이 '가격담합'을 해도 소비자들이 이를 견제할 수단이 사라진다.
KC인증의 신뢰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 안전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정작 KC인증을 받은 제품들에서도 유해물질이 나오거나 폭발 사고가 일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에 17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원인이 된 건 KC인증을 받은 제품이었고,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폭발 사고, 천궁 파워서플라이 폭발 사고 등을 일으킨 제품들도 모두 KC인증 제품이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직구금지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온 상태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도 "중국산 유해물질 막으랬더니 싹 다 막아버렸다", "소비자가 아니라 유통업자만 보호하고 있네", "이정도면 진짜 갈라파고스 아닌가" 등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들은 이번 조처가 중국 플랫폼에 어질러진 유통질서가 바로잡하길 기대하면서도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을 표하고 있다. 해외 판매자에게 KC인증을 강제할 수단도 없을 뿐더러 국내통관 과정에서 KC인증이 없는 물품을 걸러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한 관계자는 "정부 발표대로 통관시스템을 개선하고 인력을 대폭 늘려도 사전에 위해물품을 다 잡아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규제 실효성을 높일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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