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코드 사태의 디지털판?...'가이아-엑스'에 대한 3가지 우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1-05-18 18:55:03
  • -
  • +
  • 인쇄
아마존·구글 등 美기업 시장독점 막기 위해 출발한 프로젝트
'유럽의 가치' 지나치게 강조...美기업 대적하기엔 자금도 부족

아마존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플랫폼 기업의 클라우드 시장독점을 막기 위해 추진된 '가이아-엑스'(GAIA-X) 프로젝트가 데이터 주권이 보장되는 '데이터 생태계'(ecosystem)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을까.

2019년 10월 독일과 프랑스가 발표한 '가이아-엑스' 프로젝트는 블록체인과 엣지컴퓨팅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미 세계 내로라하는 IT기업들이 한발씩 걸치고 있다. 그러나 2021년 상반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가이아-엑스를 두고 '제2의 콩코드 사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 근거를 하나씩 짚어봤다.



 '가이아-엑스'란 무엇인가?


가이아-엑스의 개념은 '데이터 주권'에서 출발한다. '데이터 주권'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교환, 저장, 분석하는 권한이 데이터를 만든 당사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데이터를 만든 당사자가 자신이 만든 데이터를 돈을 주고 팔던 교환하던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클라우드 플랫폼에서는 데이터를 만든 당사자가 이 권한을 갖기 힘들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가이아-엑스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기존 클라우드 플랫폼과 달리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에서는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 종속돼 있지 않고 모두에게 공유된다.

블록체인 기반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데이터 제공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므로, 개인정보 등 정보유출을 방지할 수도 있다. 참여자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가는 연방제 형태이기 때문에 특정 플랫폼 기업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자유롭고 공정하게 협업하고 경쟁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

▲ 가이아-엑스 프레임워크 (출처=BMWi & BMBF 2019)


◇ 美기업도 참여하는데···데이터 주권확보 가능? 


가이아-엑스 플랫폼의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미 항공우주국과 랙스페이스가 개발한 오픈소스 플랫폼 '오픈스택'과 구글이 개발한 오픈소스 플랫폼 '쿠버네티스'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아마존 웹서비스, MS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 미국 플랫폼 기업은 이미 가이아-엑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상태다. 유럽에서 가장 큰 클라우드 호스팅 업체인 프랑스의 OVH 클라우드는 구글 클라우드와 전략적 통합을 선언해 한몸이나 마찬가지다. 가이아-엑스 CEO로 내정돼 있는 후베 타듀(Hubert Tardieu)는 구글과 전략적 파트너를 맺은 IT서비스 기업 아토스(Atos) 출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이아-엑스 프로젝트를 이끄는 멤버들이 얼마나 유럽의 '데이터 주권'을 실현할지 미지수다.

후베 타듀는 얼마전 열린 범유럽 가이아-엑스 정상회의에서 'SWIPO 행동강령'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SWIPO 행동강령은 프랑스 대기업∙공기관 컴퓨터 클럽(CIGREF)이 유럽위원회에 제안한 자체규제안이다. 미국 플랫폼 기업들이 자유공정경쟁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 제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하지만 플랫폼 제공자마다 보유한 기술과 자원 그리고 목표 등이 달라 통일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웠다. 또 CIGREF가 유럽위원회에 여러 번 개정안을 건의했지만 미국 기업들의 로비에 막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CIGREF는 유럽 내 플랫폼 기업의 자가규제 실패를 인정했다.

가이아-엑스가 등장하기 10년전,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안드로메다 프로젝트'. 당시 4개 회사가 참여했는데, 그 중 아토스, 탈레스, 오렌지는 현재 가이아-엑스 창단 멤버다. 그런데 이 기업들은 프랑스 오픈소스 가상화 소프트웨어 'Qemu'를 기반으로 고가용성 솔루션, 멀티 데이터센터, IaaS를 제공할 수 있는 프랑스 중소기업들을 무시하고 미국의 '오픈스택'에 1.5억유로의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이 돈으로 오픈스택은 간디닷넷(Gandi.net)과 같은 프랑스 유망 클라우드 기업들의 핵심 인재들을 빼갔다.

◇ 쥐꼬리 자금으로 거대 플랫폼기업에 대적?

아마존 웹서비스는 올 3분기에만 35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유로로 환산하면 약 29억유로쯤 된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EU)이 가이아-엑스 프로젝트에 배정한 예산은 연간 150만유로에 불과하다. 미국의 거대 플랫폼에 대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금이다. 2020년 1월 기준 독일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평균 연봉은 5만8624달러였다. 반면 미국은 10만7000달러다. 유럽의 실력있는 기술자들은 대부분 미국에 가 있는 상황. 자금이나 인력, 성능 등 모든 면에서 가이아-엑스가 미국 플랫폼을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가이아-엑스가 내세우는 디지털 주권, 자기결정권은 유럽국가들의 정부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디지털 주권은 시장에서 우선순위로 다뤄지지 않는다.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 1차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은 결국 성능과 비용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입맛에 부합하는 성능과 비용은 자본력에 달렸다.

◇ 과거에 폭삭 망한 유럽 '콩코드' 재현될까 우려

거대한 철학을 품고 출발한 '가이아-엑스'가 과거에 유럽에서 시도했다가 실패로 돌아간 '콩코드' 프로젝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콩코드'는 1962년 영국과 프랑스가 조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조약의 내용은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한다는 것. 미국 보잉사의 민간 항공기 시장 독식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콩코드는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기술과 서비스의 집약체였다. 런던에서 뉴욕까지 운항시간은 세 시간 반에 불과했고, 전 좌석에 일등석 전용 서비스와 최고급 식사가 제공됐다. 콩코드는 1976년 상업 운행을 시작하면서 미국에 대적할 수 있다는 유럽의 자부심과 함께 날아올랐다.

하지만 이 여객기를 운항한 영국항공과 에어프랑스는 꿈에 부푼 나머지 현실을 등한시하는 우를 저질렀다. 콩고드는 높은 운임, 운영관리비용, 연료비 등 수익성 문제로 만성 적자에 허덕였다. 또 소닉붐 소음과 오존파괴 등 각종 환경문제를 일으켰다. 심지어 설계 결함으로 탑승자 113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까지 발생했다.

국가적 자존심 그리고 개발비 1조6000억원을 회수하기 위해 실패를 인정하지 않던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2003년에 이르러서야 콩코드 운항을 중단했다. 결국 콩코드는 박물관에 전시된 콩코드 비행기 몇 기와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뜻의 '콩코드 오류'를 경제학 사전에 남긴 채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콩코드 여객기 (출처=뉴욕 인트레피드 해양항공우주박물관)


가이아-엑스도 유럽 관료들이 상업성이나 기술적 실용성에 대한 고려없이 '유럽의 위대함'을 재현하기 위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진행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이아-엑스는 '콩코드 사태의 디지털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가이아-엑스는 초창기에 '유럽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창간이사회 멤버를 유럽인으로 제한했던 일은 시장에 안좋은 인식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유럽의 '울타리 의식'이 아닌, 오로지 기술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가치가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면서 '데이터 주권'과 같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실질적 이슈를 조명해 유럽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비유럽권 하이퍼 스케일러들은 플랫폼에서 빠르게 진화하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새로운 기능들을 줄기차게 내놓고 있다. 반면 가이아-엑스는 플랫폼은커녕 그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할 현행 서비스도 아직 없다. 가이아-엑스는 내년 2분기에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가이아-엑스는 하루빨리 서비스를 시작해 에러를 수정한뒤 시장에서 안정성부터 검증받아야 할 것이다. 완성도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플랫폼으로서 제역할을 할 수 있다.


이재은 기자 jelly@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ESG

Video

+

ESG

+

기부하고 봉사하고...연말 '따뜻한 이웃사랑' 실천하는 기업들

연말을 맞아 기업들의 기부와 봉사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LG는 12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LG의 연말 기부는 올해로 26년째로, 누적 성금

'K-택소노미' 항목 100개로 확대..히트펌프·SAF도 추가

'K-택소노미'로 불리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항목이 내년 1월 1일부터 84개에서 100개로 늘어난다. K-택소노미는 정부가 정한 친환경 경제활동을 말한다

'자발적 탄소시장' 보조수단?..."내년에 주요수단으로 부상"

2026년을 기점으로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거래량 중심에서 신뢰와 품질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26일(현지시간) 탄소시장 전문매체 카본

두나무, 올해 ESG 캠페인으로 탄소배출 2톤 줄였다

디지털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올 한해 임직원들이 펼친 ESG 활동으로 약 2톤의 탄소배출을 저감했다고 30일 밝혔다. 두나무 임직원들

올해 국내 발행된 녹색채권 42조원 웃돌듯...역대 최대규모

국내에서 올해 발행된 녹색채권 규모는 약 42조원으로 추산된다.30일 환경책임투자 종합플랫폼에 따르면 2025년 10월말 기준 국내 녹색채권 누적 발행액

"속도가 성패 좌우"...내년 기후에너지 시장 '관전포인트'

글로벌 기후리더쉽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기후정책에 성공하려면 속도감있게 재생에너지로 전력시장이 재편되는 것과 동시에 산업전환을

기후/환경

+

[아듀! 2025] 끊이지 않았던 지진...'불의 고리' 1년 내내 '흔들'

환태평양 지진대 '불의 고리'에 위치한 국가들은 2025년 내내 지진이 끊이지 않아 전세계가 불안에 떨었다.지진은 연초부터 시작됐다. 지난 1월 7일 중국

30년 가동한 태안석탄화력 1호기 발전종료…"탈탄소 본격화"

태안석탄화력발전소 1호기가 12월 31일 오전 11시 30분에 가동을 멈췄다. 발전을 시작한지 30년만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31일 충남 태안 서부발전 태안

탄녹위→기후위로 명칭변경..."기후위기 대응 범국가 콘트롤타워"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내년 1월 1일부터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기후위)로 명칭이 변경된다. 이번 명칭 변경은 지난 10월 26일 '

EU '플라스틱 수입' 문턱 높인다...재활용 여부 입증해야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한 합의가 수차례 불발되자, 참다못한 유럽연합(EU)이 자체적으로 플라스틱 수입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재활용 의무화되는 품목은?...내년 달라지는 '기후·환경 제도'

내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들은 기후공시가 의무화되고, 수도권 지역에서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된다. 또 일회용컵이 유료화되고, 전기&mid

2026년 '붉은 말의 해' 첫날…지역별 일출 시간은?

2026년 1월 1일 오전 7시 26분, 새해 첫 해가 독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다.31일 기상청 따르면 새해 첫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을 전망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