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가치' 지나치게 강조...美기업 대적하기엔 자금도 부족
아마존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플랫폼 기업의 클라우드 시장독점을 막기 위해 추진된 '가이아-엑스'(GAIA-X) 프로젝트가 데이터 주권이 보장되는 '데이터 생태계'(ecosystem)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을까.
2019년 10월 독일과 프랑스가 발표한 '가이아-엑스' 프로젝트는 블록체인과 엣지컴퓨팅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미 세계 내로라하는 IT기업들이 한발씩 걸치고 있다. 그러나 2021년 상반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가이아-엑스를 두고 '제2의 콩코드 사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 근거를 하나씩 짚어봤다.
'가이아-엑스'란 무엇인가?
가이아-엑스의 개념은 '데이터 주권'에서 출발한다. '데이터 주권'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교환, 저장, 분석하는 권한이 데이터를 만든 당사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데이터를 만든 당사자가 자신이 만든 데이터를 돈을 주고 팔던 교환하던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클라우드 플랫폼에서는 데이터를 만든 당사자가 이 권한을 갖기 힘들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가이아-엑스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기존 클라우드 플랫폼과 달리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에서는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 종속돼 있지 않고 모두에게 공유된다.
블록체인 기반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데이터 제공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므로, 개인정보 등 정보유출을 방지할 수도 있다. 참여자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가는 연방제 형태이기 때문에 특정 플랫폼 기업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자유롭고 공정하게 협업하고 경쟁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
◇ 美기업도 참여하는데···데이터 주권확보 가능?
가이아-엑스 플랫폼의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미 항공우주국과 랙스페이스가 개발한 오픈소스 플랫폼 '오픈스택'과 구글이 개발한 오픈소스 플랫폼 '쿠버네티스'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아마존 웹서비스, MS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 미국 플랫폼 기업은 이미 가이아-엑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상태다. 유럽에서 가장 큰 클라우드 호스팅 업체인 프랑스의 OVH 클라우드는 구글 클라우드와 전략적 통합을 선언해 한몸이나 마찬가지다. 가이아-엑스 CEO로 내정돼 있는 후베 타듀(Hubert Tardieu)는 구글과 전략적 파트너를 맺은 IT서비스 기업 아토스(Atos) 출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이아-엑스 프로젝트를 이끄는 멤버들이 얼마나 유럽의 '데이터 주권'을 실현할지 미지수다.
후베 타듀는 얼마전 열린 범유럽 가이아-엑스 정상회의에서 'SWIPO 행동강령'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SWIPO 행동강령은 프랑스 대기업∙공기관 컴퓨터 클럽(CIGREF)이 유럽위원회에 제안한 자체규제안이다. 미국 플랫폼 기업들이 자유공정경쟁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 제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하지만 플랫폼 제공자마다 보유한 기술과 자원 그리고 목표 등이 달라 통일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웠다. 또 CIGREF가 유럽위원회에 여러 번 개정안을 건의했지만 미국 기업들의 로비에 막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CIGREF는 유럽 내 플랫폼 기업의 자가규제 실패를 인정했다.
가이아-엑스가 등장하기 10년전,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안드로메다 프로젝트'. 당시 4개 회사가 참여했는데, 그 중 아토스, 탈레스, 오렌지는 현재 가이아-엑스 창단 멤버다. 그런데 이 기업들은 프랑스 오픈소스 가상화 소프트웨어 'Qemu'를 기반으로 고가용성 솔루션, 멀티 데이터센터, IaaS를 제공할 수 있는 프랑스 중소기업들을 무시하고 미국의 '오픈스택'에 1.5억유로의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이 돈으로 오픈스택은 간디닷넷(Gandi.net)과 같은 프랑스 유망 클라우드 기업들의 핵심 인재들을 빼갔다.
◇ 쥐꼬리 자금으로 거대 플랫폼기업에 대적?
아마존 웹서비스는 올 3분기에만 35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유로로 환산하면 약 29억유로쯤 된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EU)이 가이아-엑스 프로젝트에 배정한 예산은 연간 150만유로에 불과하다. 미국의 거대 플랫폼에 대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금이다. 2020년 1월 기준 독일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평균 연봉은 5만8624달러였다. 반면 미국은 10만7000달러다. 유럽의 실력있는 기술자들은 대부분 미국에 가 있는 상황. 자금이나 인력, 성능 등 모든 면에서 가이아-엑스가 미국 플랫폼을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가이아-엑스가 내세우는 디지털 주권, 자기결정권은 유럽국가들의 정부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디지털 주권은 시장에서 우선순위로 다뤄지지 않는다.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 1차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은 결국 성능과 비용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입맛에 부합하는 성능과 비용은 자본력에 달렸다.
◇ 과거에 폭삭 망한 유럽 '콩코드' 재현될까 우려
거대한 철학을 품고 출발한 '가이아-엑스'가 과거에 유럽에서 시도했다가 실패로 돌아간 '콩코드' 프로젝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콩코드'는 1962년 영국과 프랑스가 조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조약의 내용은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한다는 것. 미국 보잉사의 민간 항공기 시장 독식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콩코드는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기술과 서비스의 집약체였다. 런던에서 뉴욕까지 운항시간은 세 시간 반에 불과했고, 전 좌석에 일등석 전용 서비스와 최고급 식사가 제공됐다. 콩코드는 1976년 상업 운행을 시작하면서 미국에 대적할 수 있다는 유럽의 자부심과 함께 날아올랐다.
하지만 이 여객기를 운항한 영국항공과 에어프랑스는 꿈에 부푼 나머지 현실을 등한시하는 우를 저질렀다. 콩고드는 높은 운임, 운영관리비용, 연료비 등 수익성 문제로 만성 적자에 허덕였다. 또 소닉붐 소음과 오존파괴 등 각종 환경문제를 일으켰다. 심지어 설계 결함으로 탑승자 113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까지 발생했다.
국가적 자존심 그리고 개발비 1조6000억원을 회수하기 위해 실패를 인정하지 않던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2003년에 이르러서야 콩코드 운항을 중단했다. 결국 콩코드는 박물관에 전시된 콩코드 비행기 몇 기와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뜻의 '콩코드 오류'를 경제학 사전에 남긴 채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가이아-엑스도 유럽 관료들이 상업성이나 기술적 실용성에 대한 고려없이 '유럽의 위대함'을 재현하기 위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진행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이아-엑스는 '콩코드 사태의 디지털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가이아-엑스는 초창기에 '유럽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창간이사회 멤버를 유럽인으로 제한했던 일은 시장에 안좋은 인식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유럽의 '울타리 의식'이 아닌, 오로지 기술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가치가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면서 '데이터 주권'과 같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실질적 이슈를 조명해 유럽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비유럽권 하이퍼 스케일러들은 플랫폼에서 빠르게 진화하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새로운 기능들을 줄기차게 내놓고 있다. 반면 가이아-엑스는 플랫폼은커녕 그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할 현행 서비스도 아직 없다. 가이아-엑스는 내년 2분기에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가이아-엑스는 하루빨리 서비스를 시작해 에러를 수정한뒤 시장에서 안정성부터 검증받아야 할 것이다. 완성도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플랫폼으로서 제역할을 할 수 있다.
이재은 기자 j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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