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제대로 공부해야…친일잔재" 반격
'점령군'이라는 단어를 놓고 난데없는 말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냐"고 발언한데서 촉발됐다. 이재명 지사의 발언 가운데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놓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단편만을 부각한다"며 문제삼았다. 여기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까지 가세하면서 색깔론으로 몰고가려는 분위기다.
윤 전 총장의 주장대로 이재명 지사는 과연 '미국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한 것일까. 또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일까. 우선 이재명 지사는 "나는 소련을 해방군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으니, 이 발언을 제외하고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문제인지 아닌지 여부를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해방을 맞았다. 자의에 의한 해방이 아니라, 일본의 패망으로 인한 해방이었기에 사실상 우리나라는 자주적 통치에 대한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곧바로 미군정 치하에 들어갔다. 그때가 광복된지 한달도 안된 1945년 9월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군은 일본에 사령부를 설치한 다음, 소련을 의식해 곧바로 한반도로 입성한다. 당시 미군의 극동아시아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한반도를 직접 통치하겠다는 포고령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38선의 이남을 통치하고, 소련은 38선 이북을 통치하게 된다.
그렇다면 해방 직후 한반도를 통치했던 미군정은 '점령군'이 아닌 것일까. 사전에는 '군정'이라는 의미를 '점령한 지역의 군사령관이 행하는 임시행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서 보면 '미군정'은 포고령을 통해 미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이 점령지역인 한반도를 한시적으로 직접 통치하겠다고 선포했다.
포고령에는 'occupying forces'라고 기술돼 있다. 여기서 'occupy'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다. 사전에는 이 단어를 '△(공간·지역·시간을) 차지하다 △(방·주택·건물을) 사용하다 △점령(점거)하다'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점령군'을 마치 '침략군’ 정도의 부정적인 뉘앙스로 해석해버리면 occupy가 갖는 본질적 의미를 되레 왜곡해버리는 것이 된다.
당시 미군정도 스스로를 '점령군'이라고 표현했다. 포고령에는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 조항을 발표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스스로 '점령군'임을 수차례 밝혔다.
사실 역사적 쟁점은 미군정이 '점령군이냐 주둔군이냐'가 아니다. 미군정의 포고령 때문에 우리나라는 친일청산의 기회가 사라졌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맥아더 포고령 제2조는 '정부의 전 공공 및 명예직원과 사용인 및 공공복지와 공공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의 유급 혹은 무급 직원 및 사용인과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기타의 모든 사람은 추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기능 및 의무 수행을 계속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앞세워 미군정은 일제에 부역했던 관료와 경찰, 군인 등을 그대로 고용했다.
이 때문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1949년 창설 1년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친일행위를 한 사람은 단 1명도 처벌된 사람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에 부역한 사람 3만8000명을 시효없이 모두 색출해 처벌한 프랑스나, 9만2000명에 달하는 민족반역자들을 심판한 노르웨이 등과 사뭇 다른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유럽의 나라들은 나치에 단순노역한 사람들도 모두 처벌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비춰봤을 때, 이재명 지사의 "대한민국은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품으로 탄생했다"는 발언은 윤 전 총장의 주장처럼 역사를 왜곡한 황당무계한 망언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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