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의도없이 여론 반영됐다 할 수 있나?
바야흐로 여론조사의 계절이 왔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자의 지지율을 비교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일 공개되고 있다. 각 정당이나 선거 캠프는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시민들 역시 적잖은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여론조사는 '숫자'라는 명시적 데이터로 표기되어 마치 수학적 엄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사내용이 물리적 데이터를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심리와 기호를 표본조사해 여론을 추론적으로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들은 여론조사 리터러시 역량을 지니고 비판적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 조사 주체에 따라 결과가 '들쭉날쭉'
사람들은 숫자에 예민하다. 그래서 언론의 헤드라인을 통해 강조되는 통계 숫자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숫자보다 조사(Research) 기관이 어디며, 누가 조사를 의뢰했는지를 살피는 것이 지혜롭다. 여론조사 의뢰의 주체가 특정 정당이거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밀접한 단체나 언론사인 경우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당과 언론사와 조사기관의 유착관계는 뿌리 깊다. 조사기관 역시 거액의 의뢰금을 제공하는 고객의 입장을 고려하여 조사를 실행할 가능성이 늘상 존재한다. 조사기관은 하나의 비즈니스 사업체란 점을 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전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조사기관이 아직 없으며, 비영리적인 리서치 기관들도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 표본숫자와 조사방법에 따라 '오락가락'
여론조사는 통계 방법을 활용한다. 하지만 전 국민의 의견을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으므로 무작위로 표본(sample)을 설정해 조사를 실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모집단(母集團) 즉 국민전체의 여론을 반영한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추출한 표본의 숫자가 적을 경우 그리 신뢰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표본수가 최소 1000명 이상이 되어야 약간 신뢰할만하다고 보고, 2000명 혹은 3000명 이상이면 그만큼 오차 범위가 적어진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언론의 여론조사결과 보도에는 이를 명시하지만 시민들은 이를 잘 해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개 확률수준이 95%이면 조사결과가 전체의 여론을 반영할 확률이 95%이므로 최소한 5%의 오차가 있는 셈이다.
특히 대개의 여론조사가 무작위 전화조사로 진행된다. 문제는 방문조사를 하느냐와 전화조사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자동응답(ARS)으로 하느냐와 조사원의 구두 대화로 하느냐에 따라 통계가 들쑥날쑥하기도 한다. 특히 가정용 전화로 연락하느냐 아니면 휴대폰으로 연락하느냐에 따라서도 큰 폭의 응답 차이가 발생한다. 설문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무응답자의 비율 역시 중요하다. 무응답률이 높으면 조사의 신뢰도가 그만큼 낮아진다. 이처럼 오차 가능성을 높이는 변수가 많을수록 왜곡의 가능성도 커진다.
◇ 질문내용에 따라 조사결과 '천차만별'
여론조사는 대개 질문 형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방식으로 질문 문장을 만드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진다. 최근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기관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차별금지법 찬성 의견이 65%라는 통계가 나왔다. 그런데 한 종교단체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차별금지법 반대가 77%로 나왔다. 질문 내용에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남성이 여성화장실이나 목욕탕에 들어간다면'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었다. 어떤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찬반을 물었던 것이다.
개방형 질문을 하느냐, 폐쇄형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가 다르게 도출된다. 질문 항목의 내용, 질문 방식 미세한 표현 하나, 문체나 작은 조사 하나만 바꾸어도 답변의 흐름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여론조사의 질문 문항은 엄밀한 논리학의 영역이어야 하지만 대개 수사학적 기법이 사용된다. 즉 질문자의 입맛과 의도가 상당히 개입되는 언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 '여론조작' 도구로 전락하는 여론조사
이처럼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과 조사방법, 질문내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각 정당들이나 정부기관이나 정치인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결과가 언론에 발표되는 순간, 그것이 여론의 추이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 신뢰하지 않더라도 무시할 수 없다. 당사자로서의 부담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차범위가 크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여론을 반영한다고 간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여론조사에는 여론의 흐름을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할 개연성이 크다. 특히 여론조사 내용을 특정인이나 특정 이슈에 집중하는 경우 그 조사 자체가 이슈화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여론조사는 순수한 학문적인 조사나 과학적인 조사방법론에 의한 데이터의 종합이라고 보기 곤란하다. 특히 여론 유도를 기획할 경우 그것이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론조사가 실제 민심에 대한 적확한 보고서가 될 수 있을까? 여론조사 주체들은 과연 진실하며 그들의 조사결과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시민들은 회의적이고, 전문가들조차 오류(error) 가능성이 많으며 타당성이 결핍되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론조사라는 거대한 정치적 비즈니스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여론조사 주체들의 공생관계는 여전할 것이다. 다만 두 가지 노력이 여론조사 생태계를 건강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첫째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모니터 하는 시민들의 역량이다. 둘째는 진실에의 용기를 지니고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조사방법론에 충실한 비영리적 여론조사 기관의 출현이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신뢰도는 최하위 수준이다. 이에 비례해 여론조사의 신뢰도 역시 높지 않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고 심리적 환호 혹은 거부 사이를 오간다면 시민들은 단지 정치적 조작 대상으로 전락하고야 말 것이다. 여론은 민심을 반영하는가? 어느 정도 반영한다. 그렇다면 정확히 반영하는가? 모두가 '아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론 통계는 진실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모든 여론조사 기관이 가장 우선적으로 조사해야 할 근원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면, 그 질문은 이것이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결과를 신뢰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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