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모두가 익숙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변이 바이러스들이 출현함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방역 당국과 언론은 주로 코로나19가 미치는 경제적 국제적 사회적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소홀히 다뤄지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의 관계와 감정과 관련된 영역이다.
◇ 코로나가 변형시킨 미시적 일상
먼저, 인간관계가 축소되고 변형되고 있다. 당장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인간관계가 달라지고 있다. 접촉과 만남의 방식이 주로 온라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만남을 경험하는 방식 또한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는 사람에 따라서 감정적 단절과 정서적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문화의 확산은 '디지털 초개인주의사회'로 전환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고 예측한다. 물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애가 두터워지기도 하지만, 빈번한 접촉으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둘째, 공동체 경험이 단절되고 있다. 문화공연이나 체육활동, 축제를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참여하기도 어렵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이후 저녁에는 2명 이상 만날 수 없다.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제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하는 유아들의 경우는 비대면으로 언어습득이 크게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집에만 머물고 있으니 어휘 습득과 소통 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친인척과 이웃관계, 지역 사회나 학교 등 전사회적으로 공동체 유대관계가 느슨해지고 있다.
셋째, 비대면은 우리의 성격이나 감정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에다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겹쳐 불안이 만성화되고 있다. 실존적 불안을 넘어 생존의 불안이 불안사회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익숙해진 비대면 문화는 우리의 정서와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보도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 사이에 디지털 접촉에 익숙한 18세에서 25세의 청년들의 공감능력이 48%나 감소했다는 미시간대학의 연구결과도 있다. 이 조사통계는 비대면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공감능력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사람들은 비대면에 익숙해져 사뭇 다른 성격과 감정 스타일을 지니게 될 것이다.
넷째, 예고없이 닥쳐온 코로나19 사태는 디지털 소외라는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장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적잖은 '불편함'을 느끼고 뒤처지기도 한다. 비단 중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나이가 어려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거나 집중력이 떨어져 스스로 온라인 학습을 하기 어려운 아동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경제적 빈곤이나 맞벌이로 부모가 자녀를 섬세하게 돌보기 힘든 저소득층 및 다문화 가정의 아동들은 정규교육에서조차 심각한 소외를 겪고 있다. 이런 디지털 격차로 인한 소외현상의 적신호들이 여러 조사통계를 통해 보고되고 있다.
◇ 비대면일수록 자기 배려에 힘써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됐다. 코로나 조기종식을 마냥 바라고 있을 수만은 없다. 과연 해답이 있는 것일까? 없다. 하지만 대안적 노력은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배려'라는 가치일 것이다.
우선 자기 자신을 배려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 불평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환경의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문화활동이나 운동이나 학습 등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유쾌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힘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비대면이 관계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공동체적 경험의 축소가 공동체의 사라짐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친밀한 우정들을 지속하고 소동아리 등 유대감 있는 작은 공동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이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여 원하는 작업을 실행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고 소통하는 능력을 말한다.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이에 능숙할수록 앞으로 비대면 사회에서 보다 잘 적응하고 활동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 타인에 대한 배려도 필요해
사회적 양극화와 소외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나 공공의 영역에서 개입해 제거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문제들은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해 보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이 경험하는 고통이나 비명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인프라를 마련하고 복지제도를 촘촘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어딘가 빈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국가가 돈을 줄 수 있지만 사랑은 줄 수 없다. 여러 돌봄제도를 통해 소외계층을 돌보고 있지만 일일이 그 마음을 매만지기는 어렵다. 사회적 돌봄과 함께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누가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가? 그와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을 배려할 뿐 아니라 자신이 만나는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은 배려를 하는 이가 코로나 위기를 가장 잘 뚫고 나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그것이 대화든 경청이든 친철이든 작은 나눔이든. 언제나 가장 위대한 실천은 작은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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