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용량·높은 구매단가에 기업들 '관망세'
기업의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이행수단으로 한국전력공사(한전)로부터 웃돈을 주고 전력을 구입하는 '녹색프리미엄' 참여기업이 크게 늘었지만, 실질적으로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직거래'는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가 3월초 발표한 '2022년 상반기 녹색프리미엄 입찰 결과'에 따르면 녹색프리미엄 참여 기업·기관은 총 77곳으로 전년동기대비 약 2.2배 증가했고, 낙찰 물량은 4.67테라와트시(TWh)로 전년동기대비 약 3.8배 증가했다. 산업부는 이번 입찰결과가 지난해 전체 RE100 이행실적을 초과하고 있어 올해 기업들의 RE100 참여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녹색프리미엄은 RE100 이행수단 가운데 하나다. RE100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들이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자 하는 자발적 캠페인이다. 국내 RE100 이행수단으로는 △녹색프리미엄 납부 △전력공급계약(PPA) 체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지분참여를 통한 전력 및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계약 체결 △자가소비용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녹색프리미엄은 전기소비자가 전기요금 외에 자발적으로 프리미엄을 추가 부담하는 것으로, 녹색프리미엄에 참여한 전기소비자에게 분기별로 '재생에너지 사용확인서'가 발급되어 RE100 이행실적 및 ESG경영의 일환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업들이 납부한 녹색프리미엄 재원은 산업부·한전의 재생에너지 재투자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문제는 녹색프리미엄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뚜렷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전의 일반전력을 웃돈을 주고 사면 재생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RE100 이행에 필요한 재생에너지 조달 실적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신·재생에너지로의 투자가 약속되긴 했지만, 당장은 재생에너지가 생산된 것도 사용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해외의 경우 '추가성'(Additionality)을 갖춘 'PPA 체결' 방식이 가장 실효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추가성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규모가 실질적으로 확대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국제 RE100 이니셔티브의 지난해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RE100 가입 기업들의 이행수단 비중을 놓고 봤을 때 2016년 13%에 불과했던 PPA 비중은 2020년 28%로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2016년 이후 누적 PPA 체결 용량은 연평균 60%씩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한전 중개를 거쳐 RE100 이행 기업에 전력을 판매하는 계약방식인 '제3자 PPA'가 지난해 6월,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전기를 전기사용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직접 PPA'가 지난해 10월 시행됐음에도 지금껏 체결 건수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PPA 체결을 위한 '수단의 용이성'과 '비용의 적절성'이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2020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공급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7.4%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국내 탄소배출량 2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RE100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 그린피스 추산에 따르면 2020년 삼성전자의 국내 전력 소비량은 17TWh다. 같은 기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37.8TWh다. 즉 삼성전자가 국내 사업장의 사용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45%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게다가 가장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큰 부담을 안고 있는 6대 제조업의 2020년 평균 수익률은 5.4%로, 같은 업종의 해외기업 영업이익률(9.4%)의 반토막 수준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해당업체들이 제3자 PPA를 체결할 경우 전기요금 구매단가가 최대 191%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기유통을 독점한 한전이 송배전망 사용료와 함께 전력손실반영금액, 부가정산금, 거래수수료, 복지 및 특례할인 금액, 전력산업기반기금 등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한 '통행세'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 중개를 거치지 않는 직접 PPA를 체결하더라도 여전히 한전의 송배전망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망사용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제도상의 허점이 있어 망사용료가 중복돼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는 문제도 있다. 이미 기존 산업용 전기요금을 통해 한전의 송배전망에 대한 사용료를 내고 있지만, 직접 PPA를 체결하게 되면 PPA에 포함된 망 사용료를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단가가 떨어지는 데다 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참여유인이 떨어지면서 섣불리 진입하지 못하고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직접 PPA의 경우 아직까지 구체적인 시행규칙이 정해지지 않았다. 산업부는 직접 PPA의 계약 주체와 방식, 형태,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초과 또는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에 대한 행정처리 방안 등을 담아 이달말까지 직접 PPA의 세부지침을 확정해 고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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