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스테이블코인 솎아내는 과정일뿐"
스테이블코인 테라와 이에 연동되는 암호화폐 루나가 며칠 사이에 급락하면서 '코인판 리먼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거품이 걷히면서 자연스러운 시장보정 수순을 밟고 있을 뿐 암호화폐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16일 비트코인은 1개당 3만1000달러를 기록하며 하락세가 진정되는 모습이다. 지난 12일 루나·테라의 대폭락 이후 나흘만의 회복이다. 지난주 암호화폐 시장은 루나와 테라의 영향으로 전체 시가총액이 3000억달러(약 385조원)가량 증발했다. 1달러로 가치가 유지되도록 설계된 테라의 알고리즘이 깨지면서 루나 가격은 99% 넘게 폭락했고, 이 여파로 한때 비트코인은 2만5000달러선까지 떨어졌다.
테라는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의 일종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안정성을 높인 암호화폐로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뉜다. 중앙화된 발행 주체가 달러나 유로 등 법정화폐 비율을 1:1로 유지하는 '중앙화형',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계약에 예치된 자산을 담보로 하는 '자산담보형', 자매토큰을 발행하거나 소각해 가격을 유지하는 '알고리즘 기반'이 그것이다.
테라는 이 가운데 가격이 1달러 이하일 때 자매코인 루나가 테라를 사들이고, 반대의 경우 테라가 루나를 사들이는 알고리즘이 적용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해당한다. 테라폼랩스는 수요를 올리기 위해 '앵커프로토콜'(Anchor Protocol)이라는 고금리 상품을 제공해 테라를 예치하면 약 20%의 연이자를 지급했다. 하지만 예치 이자를 받으려는 수요가 대출하려는 수요보다 많았고, 이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테라는 지원재단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를 조성해 준비금을 마련했다.
그런데 지난 8일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겹치면서 루나를 빨리 받아 팔려는 투자자들이 몰렸고,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은행예금은 이같은 문제를 예금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테라는 민간 블록체인 기업이 이를 보증하고, 준비금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결국 테라 가격은 1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1대1 페깅(연동)이 불가능한 암호화폐는 스테이블코인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테라 투매에 나서면서 가상화폐 시장에 큰 충격이 가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충격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시가총액이 832억달러(약 106조원)인 스테이블코인 업계 1위 테더와 487억달러(약 63조원)로 2위인 USD코인(USDC)에 비해 테라는 186억달러(약 24조원) 규모로 상대적으로 작아 충격이 빠르게 확산돼 시장 전체에 연쇄작용을 낳는 '금융전염' 효과가 낮기 때문이다.
또 '알고리즘 기반'의 테라 스테이블코인은 다른 스테이블코인과 비교했을 때 결이 다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달러 등 실물자산이 뒷받침하고 있는 테더나 USDC와 달리 자체 프로토콜 토큰의 발행량 증감과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들은 특히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샘 뱅크먼프리드 FTX 최고경영자(CEO)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씨가 된 구조화 상품과 비슷하다"며 "이름과 달리 안정적이지 않다. 법정통화의 뒷받침을 받는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별개의 명칭으로 불려야 한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청문회에서 "테라의 뱅크런 사태를 알고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현재 규모로 봤을 때 이번 사태가 기존 금융시장에 영향을 끼칠 만큼 크지 않다"고 밝혔다.
테더의 공동창립자 리브 콜린스는 테라의 폭락에 대해 "상승장이 있어야 대유행을 이끌어내면서 돈과 똑똑한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는 것이고, 하락장이 있어야 인파를 걷어내고 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들 수 있는 것"이라며 암호화폐 시장의 붕괴가 아닌 무엇이 진정한 '스테이블코인'인지 솎아내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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