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의 출발점은 '나다운 삶, 나만의 삶 찾기'
7월 21일 서울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코트(KOTE)에서 주목할 만한 행사가 열렸다. 5060세대 22명이 모여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패션쇼도 진행했다. 행사명은 '인생책 런웨이 마이마이‑나의책, 나의길, 나의인생'이다.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사람들이었다. 직장을 은퇴했거나 가정주부들이었다. 행사는 자신의 재능과 관심에 따라 노래와 춤, 글낭독과 시낭송, 힙합댄스와 탱고, 뮤지컬 등 너무 다채로웠다. 피날레로 스카프와 꽃사지를 단 옷을 입고 런웨이에서 패션쇼를 한 후 모두 함께 합창하는 것으로 이날의 행사는 마무리됐다.
아마추어들이 만들어낸 문화잔치였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공연과 문화행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연의 수준은 높았다. 특이한 흥과 재미 그리고 감동이 있었다. 객석의 끊이지 않는 박수 갈채와 환호가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모두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호응했다.
도대체 무엇이 참석자들로 하여금 내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환호하게 만들었을까. 이 감동의 출처가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다. 그 순간 섬광처럼 그 비밀을 발견했다. 그것은 '나'를 찾고 '나'를 발견하고 '나'를 표현하는 기쁨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을 맘껏 표현하는 시니어들의 몸짓과 그들의 기쁨에 전염된 환희라는 것을. 진정한 웰빙이 있다면, 아니 함께 누리는 진정한 기쁨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 5060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공연'
공연 참가자 22명은 지난 5월부터 매주 두 번씩 모여 춤과 노래, 연기와 모델 워킹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배웠다. 뮤지컬 배우 송효진, 무용가 조주연, 패션모델 윤세민 씨가 강사로 이들을 도왔다. 코사지 작가 류보형과 보석아티스트 한지혜 작가도 힘을 보탰다.
이 프로그램은 문화체육부가 후원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시니어문화프로그램 사업의 하나로 50~60대 시니어들이 참여해 문화향유 기회를 갖고 생활의 활력을 찾도록 돕고자 하는 의도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더조이플러스 이주연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5060 시니어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세대거든요. 두 달 간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참가자들에게 신박한 변화가 생겼어요. 자신감이 생기고, 기다리는 즐거움을 느꼈죠. 그간 아내이자 엄마이자 딸이자 며느리로서,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남편으로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셨어요. 그간 늘 가족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가족들이 이들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이분들이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서로가 힘을 북돋아준 점이 가장 의미가 깊어요."
낭독 첫 순서로 이혜경씨는 '참 나에 대한 선언'을 낭독했다. '참 나'를 찾고 참살이를 하겠다는 뜻이 울려 퍼졌다. '사랑하는 아들딸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낭송한 70세 여성 장성민 씨가 편지를 읽을 때 여기저기서 관람객들이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미안하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결혼할 때 혼수를 많이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지 못해서 ……."
백우인 시인은 <조르바, 그의 춤>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시의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이다. "조르바, 그가 손짓한다. 춤출래요? 춤춥시다!" 젊은이들이 주로 하는 힙합 댄스를 공연한 섬유예술작가 이상미씨와 도예작가 이재숙씨는 이렇게 말한다. "마이마이(My My)는 함께 만나는 일이지요. 낯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공간이지요. 앞으로도 우린 삶이라는 춤을 출 거예요."
이 발표회의 테마곡 'My life is wonderful'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더 찬란하다!" 양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이동언씨는 이렇게 마무리 인사를 했다. "나는 농부입니다. 이제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모델 농부입니다!" 모두 웃으며 환호했다. 진심으로 이분들이 자신의 춤을 추며 살아가길 응원했다.
◇ 웰빙보다 아름다운 '함께 누리는 기쁨'
웰빙(well being)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웰빙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는 그 누구도 명쾌하게 말하지 못한다. 보통 웰빙은 도시의 분주한 일상과 온갖 스트레스와 인스턴트 식품과 관계적 고립을 벗어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행복한 삶을 뜻한다.
그래서 웰빙은 경제적 웰빙, 신체적 웰빙, 심리적 웰빙, 문화적 웰빙, 사회적 웰빙 등으로 분류한다. 이를 위해 경제적 안정, 건강과 의료와 피트니스, 심리상담과 명상과 종교, 문화예술 소비나 참가, 친밀한 관계 및 공동체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된다. 얼핏 세련된 분류이고 그럴 듯한 제안들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웰빙 상품들이 무성하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웰빙 철학과 프로그램은 팍스 아메리카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식 행복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보통 웰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키워드로 사용되고 있다. 웰빙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고 웰빙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나 웰빙을 누릴 수 없다. 적어도 대도시 생활을 하는 서구의 중산층 이상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돈이 없이는 누구든 가정이 불안정해진다. 피트네스 센터나 치유 상담사를 찾아갈 수 없다. 음악회 티켓을 구입하기도 힘들다. 즉 저소득층이나 이주자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고비용의 웰빙 퍼레이드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웰빙은 상업적일 뿐 아니라 배타적이고 차별적일 수 있다. 웰빙은 자본주의식 행복론의 미국식 버전을 대표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니어 22명이 참가한 '보통사람들의 공연'은 자본주의식 웰빙과 차별화돼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보여주기식 공연이 아니라 스스로 향유하고 함께 즐기는 공연을 펼치다보니 공연을 보는 관람객까지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 아닌가 싶다.
◇ 스토리리빙···자기 자신으로 살기
그리스 철학을 재조명한 근대철학의 관심은 '네 자신을 알라'였다. 현대철학의 화두는 '네 자신이 되라'이다. 앞으로 이어질 모토는 명확하다. 그것은 '네 자신으로 살라!'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유희> 등의 소설만이 아니라 심오한 잠언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소설들은 다분히 구도자적이고 글은 사색적이다. 1954년 77살의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작품들은 모두 개성과 개인의 옹호, 또는 절규라고. 그가 말하는 '개성'이란 타인과 구별되는 의미에서의 개성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의미에서의 개성이다. 헤세의 길은 자기 삶의 길을 런웨이(run way)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우리 모두는 책을 쓰고 있다. 출판할 책 말고 삶이라는 책을 쓰고 있다. 우리는 'My Book'이라는 인생책을 쓰고 있는 작가이자 연출자인 셈이다. 이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그것은 나 자신의 삶을 살아냄으로써 써진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구성되는 하나의 작품이다. 지금까지 써진 스토리들 역시 하나의 텍스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는 책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 이 책은 가족이나 집단이나 국가 등의 역사로 채워질 필요가 없다. 그것은 하나의 배경이자 무대일 뿐이다.
내 책 쓰기의 원칙이 하나 있다. 어떻게 잘 꾸며 남에게 보여줄까,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할까 하는 관심에 앞서는 근본 출발점, 그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나다운 삶,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다. '나'라는 책은 스토리리빙(Story Living)을 통해 써진다. 그런 면에서 '마이마이(MY MY)‑나의책, 나의길, 나의인생'이라는 테마는 시니어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슬로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당신을 흥분하게 만들고 심장을 뛰게 합니까? 이제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여러분의 의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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